“아침부터 달려갔는데 케이크는 품절… 인증 사진만 건졌다.”
대학생 김유민씨는 새해 첫 인스타그램 게시물로 대형 토끼 조형물과 찍은 사진을 올렸다. 디저트 브랜드 누데이크가 걸그룹 뉴진스와 함께 출시한 한정판 케이크를 사러 갔으나, 실패했다는 글도 덧붙였다. 김씨는 “요즘 인스타 피드(Feed)에 많이 보이길래 다녀왔다”며 “팝업스토어가 끝나기 전에 뉴진스 케이크를 사러 다시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임시 소매점을 일컫는 팝업스토어가 핫플레이스(명소)로 부상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주춤했던 야외 활동이 폭증하면서 몰입도가 높은 팝업스토어가 새로운 놀이터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짧게는 하루, 길게는 1년 이상 운영되는 팝업스토어는 최근 유통기업들에 빼놓을 수 없는 마케팅 전략이 됐다. 명품, 패션, 뷰티, 식품 기업은 물론 백화점과 편의점 등 전통 유통 채널도 팝업스토어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더현대서울은 올해 팝업스토어 입점 스케줄이 거의 찼을 정도다.
◇침대 회사도 백화점도… 팝업스토어 전성시대
팝업스토어란 짧은 기간 운영되는 오프라인 소매점을 뜻한다. 미국 대형할인점 타겟(TARGET)이 2002년 진행한 임시매장이 성공한 후 다른 기업들이 벤치마킹하면서 번졌다. 국내에서는 2009년 무렵부터 확산되기 시작해 유통업계를 중심으로 도입하는 사례가 늘었다.
코로나19로 주춤했던 팝업스토어는 지난해 엔데믹(풍토병화)을 기점으로 더 진화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과거 팝업스토어가 ‘특정 기간 제품을 판매하는 임시 매장’이라는 개념으로 통용됐다면, 최근엔 ‘한정된 기간 특별한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의미가 확장됐다.
시몬스의 그로서리스토어가 대표적이다. ‘침대 없는 침대 광고’로 유명한 시몬스가 지난해 2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개장한 팝업스토어로, 디지털 전시장과 식료품점을 모방한 기념품(굿즈) 판매점, 햄버거 가게 등을 들였다. 침대를 전시하거나 팔지는 않지만 문을 연 지 두 달 만에 2만5000여명이 찾았다. 인스타그램에는 2만5000건이 넘는 게시물이 쌓였다.
김성준 시몬스 브랜드전략기획부문장(부사장)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980~2004년생)가 브랜드를 경험하는 공간으로 그로서리스토어를 만들었다”며 “고객 접점을 늘리고 팬덤을 구축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49년 역사를 지닌 가나초콜릿이 지난해 4월 서울 성수동에 문을 연 ‘가나초콜릿 하우스’는 한 달여의 운영기간 1만명 이상이 방문했다. 사전 예약제로 운영한 ‘나만의 초콜릿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은 대기자가 200명이 넘을 만큼 인기를 끌었다.
백화점도 팝업스토어 모객에 한창이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더현대서울은 지하 2층 공간에 팝업스토어 3곳을 운영한다. 지난해에만 200여개 브랜드의 팝업스토어가 열렸다. 디스이즈네버댓, 쿠어 등 패션 브랜드부터 걸그룹 뉴진스, 트와이스의 팝업스토어도 진행됐다. 지난해 8월 운영한 뉴진스 팝업스토어의 경우 20일 동안 1만7000여명이 방문했다. 매장 입장을 위해 6시간을 기다린 팬도 있었다.
이외에도 명품 브랜드 디올은 서울 성수동에 유리 온실 모양의 팝업스토어를, 샤넬은 바다 건너 제주에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젠틀몬스터, 원소주, 메타, 펭수 등도 개성 있는 팝업 매장으로 고객들을 줄 세웠다.
◇팝업스토어+핫플레이스=팝플레이스
현대차그룹 마케팅전략연구소인 이노션인사이트의 김나연 그룹장은 팝업스토어를 일상에서 즐기는 일종의 ‘놀이’로 봤다. 그는 저서 ‘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2023′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일상이 회복되면서 팝업스토어가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부상하고 있다”며 팝업스토어를 ‘팝플레이스(팝업스토어+핫플레이스)’라고 명명했다.
팝업스토어에 열광하는 이들은 10~20대에 집중된다. 이노션인사이트그룹에 따르면 2021~2022년 사이 팝업스토어에 대한 연령대별 검색량은 20~24세, 25~29세, 13~19세, 30~34세 순으로 증가했다. 성별은 여성이 69%, 남성이 31%로 2배 이상 많았다.
이들은 팝업스토어와 함께 사진, 공간, 카페, 경험, 전시, 포토존 등의 단어를 언급했다. 실제 사진 인증 소셜미디어(SNS) 플랫폼인 인스타그램에서 팝업스토어 관련 게시물은 38만 개에 달한다. 취향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SNS에서 팝업스토어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것은, 팝업스토어가 ‘나’를 표현하는 매력적인 수단으로 젊은이들에게 인식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일부 팝업스토어는 미리 예약하거나 긴 시간을 대기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 이에 인스타그램에는 팝업스토어 소식을 공유하는 계정도 등장했다. ‘팝업스토어가자 팝가(@popupstorego)’의 경우 구독자 수가 1만2000명이다.
◇‘리테일 미디어’로 진화한 팝업스토어… 발신자가 된 소비자
빅데이터 전문가인 송길영 바이브컴퍼니 부사장은 팝업스토어가 부상하는 추세를 ‘리테일 미디어’의 등장으로 진단했다. 매체가 다양해지고 구매 행위가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오프라인 매장이 판매 창구에 머무르지 않고 브랜드의 정신과 경험을 알리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팝업스토어를 단순히 제품 판매의 창구가 아니라 ‘브랜드(기업) 정신의 발신지’로 봐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송 부사장은 “매장을 방문한 사람은 자신이 느낀 감정을 본인의 매체를 통해서 전달한다”며 “따라서 기업들은 매장 방문객 수가 몇 명인가 보다 그들이 SNS에서 가진 영향력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조합하면 팝업스토어는 경험 경제를 구현한 공간으로 볼 수 있다. 경험 경제를 설파한 제임스 길모어와 조지프 파인은 “재화와 서비스의 홍수 속에서 비즈니스를 차별화하는 힘은 경험을 연출하는 것”이라고 했다. 경험 경제에서 판매자는 연출가로서 기능이나 혜택을 뛰어넘는 놀라운 경험을 줘야 한다.
하지만 팝업스토어가 범람하는 시대, 팝업스토어를 만드는 것만으로 고객을 끌어모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팝업스토어 컨설팅을 전문으로 하는 플랫폼도 성행한다.
송 부사장은 “처음엔 시도만으로 가치가 있었지만, 시도가 반복되면 밀도 싸움으로 가야 한다”며 “발신자가 된 소비자들은 브랜드 정신을 어떻게 담고, 어떤 작가와 협업하고, 어떤 카페를 들이느냐 까지 살펴본다”고 했다. 더 깊은 고객 경험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온라인이나 가상공간으로 팝업스토어를 확장해 시너지를 꾀하는 방법도 주목된다. 젠틀몬스터는 지난해 3월 팝업스토어 ‘젠틀 가든’을 열기 한 달 전 모바일에서 동명의 게임을 선보여 이목을 끌었다.
김 교수는 “유통기업들은 오프라인에서 제공했던 고객 경험을 가상공간이나 메타버스에서 새롭게 각색해 고객에게 보여줘야 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며 “향후 기업들은 가상경제와 이어지는 메타커머스를 완성해 고객의 경험 몰입도를 극대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금 보시는 클래식 카는 1991년에 제작됐습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차주가 특별히 대여해 주셨죠. 1963년부터 제조된 포르쉐 차량의 70% 이상이 아직도 도로 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9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건물, 오후 4시가 되자 도슨트(안내인)의 설명이 시작됐다. 그는 전시 중인 짙은 남색의 포르쉐 964 카레라2와 전기 스포츠카 타이칸 투리스모를 소개했다.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포르쉐의 원칙에 따라 전시장 집기를 재활용 가능한 종이로 제작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곳은 포르쉐코리아의 공식 판매사인 세영모빌리티가 지난해 11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포르쉐 나우 성수’ 팝업스토어(임시 매장)다. 538㎡(163평) 규모의 폐건물에 클래식 자동차와 전기차를 전시해 포르쉐의 과거와 미래를 선보인다. 그래픽 아티스트 샘바이펜의 그래피티 작품을 전시하고, 연남동 비건 카페 펠른의 음료와 디저트도 들였다. 전시장에 있는 6개의 QR코드를 모두 찍으면 여행용 가방과 포르쉐 열쇠고리 등 경품을 증정한다.
딸기 우유를 연상케 하는 프로즌베리 색상의 타이칸을 직접 타볼 수도 있다. 함께 설명을 듣던 여성 두 명은 도슨트의 설명이 끝나자 차량에 번갈아 탑승하며 사진을 찍어줬다. 이들은 “인스타그램을 보고 찾아왔다”며 “일반 수입차 전시장에는 선뜻 들어가기 어려운데, 여기서는 부담 없이 타보고 이벤트도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팝업 성지’로 부상한 성수… 디올부터 신라면까지
‘한국의 브루클린’이라 불리는 성수동이 팝업스토어 성지로 부상하고 있다. 지하철 2호선 성수역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팝업스토어 10여 개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리고 있다. 기자는 구글 지도 애플리케이션(앱)에 위치를 표시해 놓고 미션을 수행하듯 골목을 탐험했다. 명품, 패션, 화장품부터 자동차, 식품, 인테리어까지 장르도 다양했다.
포르쉐 팝업스토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는 이날부터 신라면 팝업스토어가 열렸다.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서 선보인 식당을 재현한 것으로, 신라면 봉지를 연상시키는 빨간 대형 파사드(외벽)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기존 신라면보다 3배 매운 ‘신라면 제페토 큰사발’을 비롯해 라면을 취향대로 조리해 먹을 수 있다. 신라면 봉지 모양의 무릎 담요와 컵라면 모양의 그립톡 등 기념품(굿즈)도 판매한다.
시식은 총 6회, 회당 20명으로 인원을 제한했다. 한 방문객은 “사실 제페토 라면을 이미 집에서 맛봤지만, 이런 곳에서 경험하는 건 또 다른 묘미”라며 방문 이유를 설명했다.
카페거리로 자리를 옮기자 더 많은 팝업스토어를 만날 수 있었다. 이곳의 터줏대감은 프랑스 명품 디올이다. 디올은 작년 5월부터 ‘디올 성수’라는 팝업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다. 파리 몽테뉴가 30번지에 있는 매장을 그대로 재현한 외관으로, 성수동의 빼놓을 수 없는 포토 스팟(사진 찍기 좋은 곳)이 됐다.
예약해야만 들어갈 수 있던 초기와 달리 이제는 예약 없이도 매장을 방문할 수 있다. 그러나 카페의 경우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한다. 아메리카노 1만9000원, 카페라떼 2만원으로 꽤 높은 가격이지만, 예약 경쟁이 치열하다. 디올 측은 원래 작년 11월까지 팝업스토어를 운영할 예정이었지만, 반응이 좋아 운영 기한을 연장했다.
◇놀이터가 된 팝업… 신발 꾸미기 워크숍에 2만 명 몰려
기업들이 팝업스토어 장소로 성수동을 선호하는 이유는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출생)가 모이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가 적당히 공존해 특별한 목적이 없이도 부유(浮遊)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실제 팝업스토어에서 만난 이들 대부분은 20~30대였다. 특히 놀거리와 먹을거리 등 체험 요소가 많을수록 사람이 몰렸다. 소셜미디어(SNS)에 자랑할 만한 사진이 찍히는, 이른바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공간이면 관심은 배가됐다. 하긴, 돈이 없어도 실컷 놀고 인증샷까지 남길 수 있으니 이보다 매력적인 장소가 있을까.
프레피 룩(Preppy look·미국 고등학교 학생들의 교복을 본뜬 패션)의 대명사인 폴로 랄프로렌은 졸업식을 주제로 팝업스토어를 운영 중이다. 마치 미국 고등학교의 졸업식장처럼 꾸민 공간에서 준비된 가운과 학사모를 착용하고 졸업 사진을 남길 수 있다. 한 방문객은 “졸업한 지 꽤 됐는데 외국 학교를 졸업하는 기분을 낼 수 있어 색다르다”라고 말했다.
지난 주말(6~8일) 패션 브랜드 아더에러와 컨버스가 협업 상품 출시를 기념해 연 팝업스토어도 체험 콘텐츠로 젊은이들을 끌어모았다. 예술 작품과 협업 상품 전시, 워크숍, 공연 등을 진행했는데, 3일간 총 4100여 명이 방문했다. 특히 컨버스의 ‘척 70 하이’를 커스터마이징(맞춤 제작)하는 워크숍에는 200명 모집에 2만 명 이상이 응모했다.
임수진 아더에러 브랜드팀장은 “팝업스토어는 단순히 제품을 파는 곳이 아니라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보여주는 일종의 프레젠테이션”이라며 “우리가 추구하는 것들을 미술과 음악, 공간과 함께 보여줄 때 사람들은 더 재미있는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신상도 B2B 기업도 ‘팝업’으로 만나요
기업 간 거래(B2B) 기업도 팝업스토어를 소비자 접점을 높이는 툴로 활용하고 있다. 인테리어 기업 LX하우시스는 무신사 테라스 성수점에서 올해의 인테리어 트렌드를 제안하는 팝업스토어를 선보였다. 이 회사는 최근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확대를 위해 소비자 접점을 넓히고 있다.
이탈리아 화장품 브랜드 토일렛페이퍼뷰티도 팝업스토어를 통해 한국 고객들과 첫 만남을 가졌다. 지난 4일부터 복합문화공간 LCDC서울에서 화장품과 리빙 제품을 전시 중이다. 토일렛페이퍼의 유머러스한 삽화가 들어간 거울과 소파 등을 배경으로 제품을 착용하고 사진을 찍어볼 수 있다.
팝업스토어가 성행하다 보니 전용 공간을 운영하는 곳도 생겨났다. 프로젝트렌트, 대림창고, 에스팩토리, 퓨처소사이어티 등이 대표적이다. 온라인 쇼핑몰 무신사의 무신사 테라스와 29cm 이구성수, 편의점 GS25가 만든 도어투성수 등도 매장 일부 공간을 팝업 공간으로 활용한다.
대관료는 규모와 장소에 따라 다르지만, 목 좋은 공간의 경우 하루 대관비가 500만원에서 3000만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도 업계 관계자들은 강남보다 성수가 저렴하고 효율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성수동 중대형 임대료는 1㎡당 4만3700원으로 강남대로(10만6500원), 압구정(4만7500원), 도산대로(4만6300원)보다 저렴했다.
팝업 플랫폼 프로젝트렌트를 운영하는 최원석 필라멘트앤코 대표는 “강남이 차가 몰리는 거리라면, 성수동은 사람이 걷는 거리”라며 “성수동은 작고 재미있는 콘텐츠가 들어왔을 때 이를 수용하고 즐길 수 있는 소비자들이 많다. 기업 입장에선 브랜드를 홍보하거나 신사업을 시험하기에 제격”이라고 말했다.
팝업스토어 기획 전문 플랫폼 프로젝트렌트(Project Rent)를 이끄는 최원석 대표는 팝업스토어의 인기 비결을 ‘재미’에서 찾았다.
브랜드 컨설팅 기업 필라멘트앤코가 운영하는 프로젝트렌트는 2018년부터 서울 성동구 성수동 등을 중심으로 8곳의 팝업스토어 전용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자사 공간을 주 단위로 브랜드에 빌려주고, 함께 팝업스토어를 기획한다.
지금까지 현대자동차, 오비맥주, CJ제일제당, 배달의민족, 롯데월드 등 200여 개의 브랜드 팝업스토어를 선보였다. 최근에는 롯데제과와 ‘가나초콜릿하우스’, 매일유업과 ‘어메이징 오트 카페’를 기획해 각각 1만 명이 넘는 방문객을 끌어모았다.
최 대표는 LG전자(123,500원 ▼ 1,900 -1.52%)에서 모바일 디자인을, 현대카드에서 브랜드 관련 디자인 기획업무를 하다가 2014년 회사를 창업했다. 프로젝트렌트는 임대료가 비싸 오프라인 매장을 낼 여력이 안 되는 괜찮은 신규 브랜드를 비어 있는 상가를 활용해 소비자들과 만나게 한다는 구상으로 시작했다.
지난 11일 조선비즈와 만난 최 대표는 “아무리 좋은 매장도 3개월이면 ‘오픈발’이 사라진다”면서 “팝업스토어는 그걸 넘어서는 강력한 콘텐츠를 지닌 수단”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프라인 매장은 즐거움의 장소, 발견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며 “우리가 추구하는 건 오프라인 매거진(잡지)”이라고 소개했다. 다음은 최 대표와 일문일답.
어떻게 이 사업을 하게 됐나.
“서울 어느 곳에나 공실이 존재한다. 비싸고 좋은 공간도 비어 있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 그래서 임대료가 비싸 매장을 내기 어려운 브랜드들에 공간을 빌려주는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린 건 2018년 초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의 공사 예정지를 발견하면서다. 그 공간을 빌려 22일간 북 카페를 운영했다. 특별한 인테리어 없이 공사장 자재들을 활용해 매장을 꾸몄는데, 1만8000여 명이 방문했다.
여기서 힌트를 얻어 적절한 공간을 찾아 임차한 뒤 일정 기간 브랜드에 임대하고 함께 팝업스토어를 운영하는 프로젝트렌트를 운영하게 됐다. 현재 서울 시내에 공간 8곳을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 시국에도 인기가 상당했다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절정이던 2020년 6월부터 점포 방문자가 급증했다. 성수동 프로젝트 렌트 2호점의 경우 하루 평균 유동 인구가 2019년 1567명에서 이듬해 2620명으로 증가했다. 2020년 3·4분기만 보면 하루 평균 4000명 이상의 유동 인구가 발생했다.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으로 유통업계가 ‘오프라인의 종말’을 외치던 시기였는데도 말이다.
이유가 뭔가 하니 ‘재미’였다. 당시 무속인과 점집 ‘성수당’을 열고 점을 봐주는 팝업스토어를 열었는데, 신점 예약이 한 시간도 안 돼 마감됐다. 코로나19라는 불안한 시기, 음지에 있던 무속 신앙을 꺼내 재해석했더니 소셜미디어(SNS)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것이다. 콘텐츠가 재미있으면 위험을 감수하고도 찾아오더라. 양(Quantity)보다 질(Quality)이 중요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기억에 남는 팝업스토어를 꼽는다면?
“노출 면에선 앞서 소개한 ‘성수당’을, 품질 면에선 ‘평양슈퍼마케트’ 팝업스토어를 꼽을 수 있다. 2018년 5월 2주간 진행한 평양슈퍼마케트는 ‘평양에서 잡화점을 낸다면 어떨까?’라는 상상력으로 만든 팝업스토어다.
프로젝트 렌트의 사업을 소개할 겸 꾸민 자체 기획 매장이었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등장할 법한 파스텔 색감의 북한 슈퍼마켓 물건들을 전시하고 판매했다. 실제 북한에서 파는 건 아니고, 탈북자가 직접 만든 수제 과자와 사탕 등을 전시했는데 반응이 뜨거웠다. ‘가나초콜릿하우스’와 ‘어메이징 오트 카페’도 대중적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는 점에서 기억에 남는다.”
‘가나초콜릿하우스’는 신동빈 롯데 회장과 신유열 롯데케미칼 상무가 다녀갈 정도로 그룹 내에서도 화제를 모았다고 들었다. 어떻게 기획했나.
“한국인들은 초콜릿을 언제 먹나 살펴보니 딱 세 번 먹더라.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 누가 사주면 먹는 거지, 내가 사 먹고 즐기는 디저트가 아니었다.
그래서 ‘가나’라는 브랜드보다 ‘초콜릿’을 즐기는 경험을 선사하기로 했다. 유명 파티시에, 바리스타와 함께 다섯 가지 코스의 초콜릿 디저트와 음료를 만들고, 한정판 기념품(굿즈)과 DIY 클래스도 열었다. 그 결과 SNS에서 ‘초콜릿’이라는 키워드를 장악했고, 연장 운영까지 했다. 40여 일간 약 1만 명이 방문했고, 1인당 체류시간은 60~90분에 달했다.”
기업들과 협업할 때 어려운 점은 없었나.
“큰 방향은 함께 협의하고, 이후로는 프로젝트렌트가 주도적으로 진행하는데 대부분 믿고 맡겨주는 편이다. ‘가나초콜릿하우스’도 그랬다. 간혹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는 업체들도 있다. 예컨대 매출이 잘 나오는 매장을 만들어 달라는 식이다. 그럴 땐 정중히 거절한다.”
소비자들이 팝업스토어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 마디로 즐거우니까. 백화점에 가면 피곤해하는 남성들도 팝업스토어에 가면 재밌어한다. 소비의 중심이 온라인으로 넘어갔어도 98%의 오프라인 매장은 팔 궁리만 하지, 고객을 즐겁게 할 궁리를 하지 않는다. 결국 오프라인에서 다른 요소를 찾던 사람들은 콘텐츠와 오락 요소를 지닌 팝업스토어를 낙점했다. 좋은 콘텐츠가 트래픽을 움직이게 하는 본질이 된 셈이다.”
기업 입장에서 팝업스토어의 기능은.
“팝업스토어라는 단기 플랫폼을 통해 적은 비용으로 브랜드의 가능성을 시험해 볼 수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오프라인 매장 하나를 내는 데 많은 돈이 든다. 20평짜리 매장을 낸다고 가정하면 권리금, 보증금, 인테리어비, 직원 채용 등으로 3~4억원은 써야 한다. 어렵게 매장을 열어도 장사가 잘된다는 보장은 없다. 작은 브랜드의 경우 잘못하면 무너질 수도 있다.
오프라인에서 존재감이 생기면, 온라인 트래픽이 더 올라가기도 한다. 실제 한 조사에 따르면 오프라인 팝업스토어를 통해 새로운 브랜드 체험을 한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더 많이 소비한다는 결과도 있었다.
요즘 소비자들에겐 없는 게 없다. 그런데도 즐길 이유, 사야 할 이유를 줘야 하는 게 공급자와 소비자와의 관계다.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형태로 소비자가 즐길 수 있도록 당겨주는(Pull) 역할을 하는 게 팝업스토어의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팝업스토어가 성공하진 못하는 거 같다. 팝업스토어의 성공 요건은 무엇이라고 보나.
“팝업스토어의 본질은 소비자와 관계 만들기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Push’ 마케팅은 한계가 있다. 고객이 원하지 않는데 자꾸 DM(다이렉트 메일)을 보내는 건 스토킹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기업들이 수십억 원을 들여 연 팝업스토어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좋은 팝업스토어는 후기를 보면 안다. 매일유업과 4주간 진행한 ‘어메이징 오트 카페’의 경우 약 1만2000명이 방문했는데, 초반 2주간은 기대한 만큼 트래픽이 안 나왔다. 귀리 음료, 비건 디저트에 대해 생소해하는 분들이 많은 데다, 여러 사정으로 인플루언서(인터넷 유명인) 마케팅을 진행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그러나 한 번 다녀간 분들이 만족도 높은 피드백을 내놓으면서 3~4주 차에 방문객이 급증했다. 전체의 70%가 이 시기에 방문했다. ‘가나초콜릿하우스’ 역시 ‘초콜릿에 진심인 곳’이라는 후기가 많았다.”
팝업스토어 전략을 수행하는 데 있어 주의할 점은?
“팝업스토어는 목적이 아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소통이다. 또 새롭기만 해선 안 된다. 이유를 담아야 한다. 팝업스토어를 찾은 방문객들이 SNS에 후기를 쓰려는데 쓸 게 없거나, ‘왜 했지?’라는 말이 나오면 실패한 것이다.
브랜드 이해도를 바탕으로 경험을 복합적으로 설계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침대 회사 시몬스의 그로서리 스토어는 성공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시몬스는 팝업스토어를 운영하며 브랜드 파워를 키우고, 그사이 영업 방식을 바꿔 매출까지 동반 상승시켰다.”
오프라인 매장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팝업스토어의 활성화는 곧 부동산의 유동화를 의미한다. 예전엔 일정 기간 돈을 지불하고 상가를 점유하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이젠 매장이 필요할 때만 돈을 내고 공간을 쓰는 기업들이 늘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상가의 가치는 콘텐츠가 결정하게 될 것이다. 오프라인 매장은 입지가 아니라 얼마나 즐거운 경험을 주느냐가 트래픽을 모으는 관건이 될 것이다.”
향후 계획과 목표는.
“궁극적으로 OMO(Online Merge with Offline·온오프라인 통합)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 목표다. 오프라인 팝업스토어에서 가진 즐거운 경험을 온라인에서도 이어갈 수 있도록 온라인 플랫폼을 준비하고 있다. 소통은 물론 소비까지 하는 플랫폼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또 이달 중 부산에서 팝업스토어를 선보일 예정이다. 해외 지점도 구상 중이다. 한국의 좋은 브랜드를 해외에 알리고, 해외의 좋은 브랜드를 국내에 소개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싶다.”
“가로수길에서 30~40평(99~132m²) 매장을 단기 임대하려면 한 달에 최소 4000만원은 줘야 합니다. 보증금이 없는 대신 철거비가 추가로 300만~500만원 정도 든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이것도 전성기에 비하면 크게 떨어진 거죠. "
지난 1일 만난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공인중개사 대표는 팝업스토어(임시매장)를 열 단기 임대 매물을 찾는다는 기자의 말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세로수길과 같은 뒷골목은 한 달 임대료가 3000만원”이라며 “주 단위로도 계약이 가능하다”고 했다.
최근 성수동과 가로수길 등 소위 핫플레이스(명소)라 불리는 거리에선 ‘팝업 임대’, ‘단기 임대’ 안내문을 붙인 건물을 쉽게 볼 수 있다. 부동산 경기 위축으로 상가 공실이 늘면서 단기 임대차를 대안으로 삼는 건물주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건물주 입장에서 매출 부진 등의 이유로 임차인이 빠져나가면 다음 임차인을 찾아 공실을 메우는 게 상식이지만, 임대 기간을 10년간 보장해야 하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을 생각하면 선뜻 그럴 수 없다. 임대료를 낮춰 임차인을 구하느니 ‘시세’에 맞는 임차인을 찾는 게 더 수지타산에 맞다는 판단에서다.
결국 적절한 임차인을 구할 때까지 주~월 단위로 단기 임대를 해 공실에 따른 손실을 메우는 팝업 임대가 선호되는 양상이다.
단기 임대는 보증금이나 권리금 없이 일정 기간의 월세를 한꺼번에 미리 지불하는 임차 방식으로 진행된다. 시세보다 좀 더 높은 가격에 월세를 계약하고, 철수비 명목으로 일정 금액을 건물주에게 주기도 한다.
과거 ‘눈물의 땡처리’, ‘폐업 정리’ 등의 현수막을 걸고 비어 있는 매장에서 한시적으로 속옷과 잡화 등을 파는 ‘깔세’ 방식과 유사하다.
그러나 단기 임대는 법의 보호 대상이 아니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기간을 정하지 않거나, 기간을 1년 미만으로 정한 임대차는 그 기간을 1년으로 본다. 그러나 일시 사용을 위한 임대차임이 명백한 경우 이 법은 적용되지 않는다.
즉 3개월간 팝업스토어를 운영하려다 건물주가 임차인을 구했다는 이유로 한 달 후 퇴거 요청을 해도 법의 보호를 받기 어렵다.
최근 팝업스토어 운영을 대행하는 업체들이 성행하는 이유도 이런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행 업체들은 건물의 특정 공간을 장기 계약한 후 다시 원하는 업체에 단기간 전대해 수수료 등을 챙긴다.
이창동 밸류맵 리서치센터장은 “팝업스토어를 운영하려면 카드 결제 시스템 등을 구축해야 하는데 일주일 운영을 위해 결제 시스템을 만드는 건 번거롭고 복잡한 일”이라며 “대행 업체들이 결제 시스템 등 점포 운영을 위한 시스템을 모두 갖추고 전대하는 방식이 최근 팝업 시장에선 보편화 되고 있다”고 말했다.
임대인들 역시 안정적인 임차인을 선호하기 때문에 홍대, 성수 등 주요 상권일 수록 대행 운영 방식이 정착됐다는 게 이 센터장의 설명이다.
대기업들의 팝업스토어가 성행하면서 단기 임대료를 터무니없이 높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수동이나 가로수길의 경우 한 달에 몇백만원 수준이던 단기 임대 비용은 최근 들어 수천만원~1억원대로 치솟았다.
실제 지난해 성수동에서 한 달여간 팝업스토어를 운영한 한 식품 대기업의 경우 4억~5억원 정도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에서 장사하다 오프라인 팝업 매장을 통해 고객과 소통하고 성장 기회를 마련하려던 소규모 기업들은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금액이다.
신사동의 한 부동산 사장은 “과거엔 팝업스토어를 운영하면 임대료를 내고 남을 만큼 상품 매출이 좋았는데, 지금은 매출을 보장할 수 없다”며 “대기업들이 임대료를 크게 올려 실거주민이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과 유사한 상황”이라고 했다.
백화점과 복합쇼핑몰 등 유통업체들이 최근 팝업 공간을 늘리는 이유도 입점 업체와 불공정 계약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란 분석이 나온다.
과거 유통 플랫폼들은 상품기획(MD) 개편 등을 이유로 입점 업체들에 매장 위치 이동을 요구하는 일이 빈번했으나, 2016년 공정거래위원회의 ‘백화점과 중소 입점업체 간 거래관행 개선방안’에 따라 인테리어 비용을 지불한 업체는 최소 2년 이상 입점 기간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한 아웃렛 관계자는 “장사가 안되면 새로운 브랜드나 상품으로 바꿔야 하는데, 입점 업체에 이를 요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점포 중간중간 팝업 공간을 구성해 단기 입점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잘 만들어진 팝업스토어의 경우 한 달 매출을 3일간 벌 수도 있어 단기 임대를 선호하는 업체도 많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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