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전시공간 가이드 2022
https://www.theartro.kr/kor/features/features_view.asp?idx=4681&b_code=10e
더아트로는 한국이 가진 풍부한 문화적 인프라를 소개하고, 최근 변화하고 있는 한국의 미술 현장을 조명해보고자 이번 특집을 기획하였다. 미술관, 갤러리 외에도 도시 곳곳에 매력적인 공간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미술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새로 문을 연 전시공간이나 예술 프로젝트들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미술 현장에 대한 콘텐츠 또한 대규모의 국공립 또는 사립미술관, 국제 미술행사에 치중되어 있는 편이다. 이에 더아트로는 다양한 미술 현장들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주제로 ‘공공미술’, ‘공간’, ‘작품’이라는 키워드를 선정하여 3개의 연재 특집기사를 준비했다. 첫 번째 기사 ‘도시 속 공공미술’에서는 국내 여러 지역의 공공미술을 소개한다. 도시 내 문화공간 조성을 목표로 진행되어온 공공미술 프로젝트, 그리고 시민들이 삶 속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공공미술을 알아보고, 한국 공공미술의 현주소를 들여다본다. 두 번째 ‘새로운 공간들’ 에서는 최근 새로 생겨났거나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 곳곳의 공간들을 중점적으로 다루어보고자 한국의 대표 미술 도시인 서울, 부산, 대구, 광주의 미술현장을 조명하는 기사를 기획하였다. 마지막으로 ‘미술 작품 속 도시’에서는 도시를 주제로 작업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도시의 다양한 모습을 조명한다. 이번 특집기사를 통해 한국의 새로운 면모를 알리고, 한국 미술의 국제적 위상을 제고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글이 한국을 찾는 많은 해외의 미술 애호가들과 시각 예술 관계자들에게 한국 문화현장 안내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번 특집의 두 번째 기사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 도시 곳곳의 공간들을 소개한다. 이미 잘 알려져 있는 국·공·사립미술관 이외에도 다양한 전시공간이 생겨나며 새로운 미술 지구가 형성되고 있다. 이번 특집에서 다루는 서울, 부산, 대구, 광주는 비엔날레, 아트페어 등 다양한 국제 미술행사들이 끊이지 않고 진행되고 있어 다양한 볼거리가 제공되는 도시이다. 각 도시마다 도시만의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러한 문화를 반영하는 여러 공간들이 존재하고, 그 공간들에는 이들이 위치하고 있는 지역의 역사적 맥락과 성격이 녹아들어 있다. 지역 곳곳 역사·문화적 성격을 담은 공간들과 그곳에서 펼쳐지는 전시 및 행사들을 통해서 도시 내 지역들의 특색과 고유한 특성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대구 전시공간 가이드 : 최신 패치 버전
대구미술관 외부 전경. ⓒ대구미술관
도시는 꿈틀댄다. 그 속에는 사람들의 다양한 관계가 장소에 맞물려 돌아간다. 우리는 커다란 도시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알 수도 없다. 대도시는 빈틈없이 고안된 기계 구조로 비유할 수 있고, 유기체들이 함께 생존하며 진화하는 생태계에 비유할 수도 있다. 새로 생기는 계획도시는 기계의 은유로, 역사가 오래된 도시는 자연 생태를 이해하는 식이다. 물론 현실 속에서 모든 시가지는 그 둘 사이의 어디쯤 해당한다. 대구는 후자에 좀 더 가깝다. 영남 내륙 중앙에 있는 대구는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덩치와 힘을 불려왔다. 대구는 형성과 변화 과정이 일관된 계획에 따라 발전해 온 곳이 아니며, 이곳의 예술 또한 그렇다.
대구미술관 내부 전경. ⓒ대구미술관
사람들이 대구를 생각하면 무엇부터 떠올릴까? 한반도에서 가장 더운 지역, 현대사 속에 얽힌 정치와 경제적인 맥락, 전국으로 퍼진 몇몇 음식일지도 모르겠다. 동성로를 비롯한 몇몇 장소도 유명하고,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구를 연고지로 삼은 구단들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스포츠팬이 아니라 미술애호가라면? 아마 이인성과 같은 대구 출신의 미술인을 떠올릴 수도 있고, 대구에서 벌어지는 미술 행사나 전시공간이 될 수도 있다. 대구는 다른 대도시보다 비교적 늦게 개관한 대구미술관을 중심으로, 봉산문화거리와 대봉동 일대의 화랑들이 유명하다. 대구미술관이 지어지기 전에, 대규모 전시를 도맡았던 대구문화예술회관은 지금도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대구 사람들이 강북이라고 부르는 금호강 북편 대구보건대학의 부설공간인 인당뮤지엄도 굵직한 기획전으로 전국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대구미술관에서는 이인성상을 제정해 시상과 전시를 매해 벌이고 있다. 예로부터 미술시장이 탄탄히 자리 잡은 대구는 대구아트페어도 연중행사 가운데 하나이다. 격년마다 돌아오는대구사진비엔날레는 대구문화예술회관을 중심으로 도시 곳곳에서 벌어진다.
2021 대구아트페어 전시 전경. 이미지 대구화랑협회 제공.
2021 대구사진비엔날레 청라언덕 일대, 동대구역 전시 전경.
대구에서 누릴 수 있는 시각예술의 모든 현주소를 공개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나는 한 발 뺐다. 이 글은 질과 양적인 면 모두에서 풍부한 현지 미술의 환경 가운데에서 새로 등장한 전시장소에 초점을 맞춘 보고서이다. 이 리포팅은 제법 실용적일 수도 있다. 갈 곳과 안 가도 될 곳을 가려내는 안내문이 될 수도 있겠다. 왜, 우리가 사전 정보를 갖고 기대감에서 간 식당이나 카페의 실상이 너무나 시시한 나머지 누군가를 원망해 본 일이 있지 않나? 난 종종 그렇다. 그때마다 나는 실속 없는 쏠림 현상으로 사람들을 낚는 매체나 플랫폼을 탓한다. 그래봤자 허공에 휘두르는 주먹질이다. 결국은 얇은 귀와 안목을 가진 스스로를 책망한다. 이미 알려진 명소는 인지도와 호불호가 어느 정도 굳었다. 하지만 지금 막 떠올라 뜨거운 장소는 사정이 다르다. 평가가 굳지 않고, 심지어 정체도 알쏭달쏭한 그곳들은 그저 신생공간이라는 사실만을 후광으로 두르고 있다. 본 모습을 알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하기 나름이긴 한데, 시간이 좀 더 흘러 공간의 면모가 드러나서 좋은 공간은 남고, 나쁜 공간은 정리되었다고 치자. 그 형편없던 곳도 작가와 관객이 가서 판단한 결과를 따랐을 것이다. 좋고 나쁨의 판단은 각자 알아서 할 부분이다. 방금 앞서 언급했던 신생공간의 후광, 그곳이 밥집이든 찻집이든 새로 문을 연 곳에는 쾌적함이 있다. 조만간 좌표에서 사라질 장소라면, 누군가에게는 그 사실만으로 가봐야 할 가치가 있다. 다만, 정해진 시간과 비용에 맞춰 만족도는 높이고 실망은 줄이는 관람 나들이를 위해서 어떤 식의 참고가 있으면 좋다. 정전(canon)이라는 미적 판단 기준이 필요한 이유를 우리는 안다.
대구 신세계백화점 갤러리. ⓒ대구 신세계백화점
본격적인 투어에 앞서
이제는 절반은 외지인의 입장이 된 나로서, 오랫동안 사랑해 온 도시와 그 안의 미술을 낯설게 들여다보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대구로 오는 길은 여러 갈래다. 분지 지형이지만 동서남북으로 뚫린 길에 자가용과 기차, 버스, 그리고 비행기까지 교통편은 다양하다. 개인 운전을 뺀다면, 아마도 대구로 발을 딛는 첫 번째 장소는 동구일 확률이 높다. 몇 년 사이에 세 개의 버스 터미널을 통합한 시설이 동대구역과 뭉쳤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비행장과 대구를 가로지르는 지하철 1호선까지 묶는다면, 동대구역사는 일종의 관문과 같은 지점이다. 이곳에 지어진 대구 신세계백화점은 여행객들과 시민들을 끌어들였다. 여기에는 백화점 개관부터 함께 운영된 신세계갤러리가 있다. 사실 백화점 부설 화랑은 갤러리라는 이름이 붙었음에도, 보통 화랑들과 다르게 운영되는 곳들이 많다. 미술품 거래가 활발한 일본의 백화점 화랑들과 달리, 한국은 대형 소매점포 내 편의시설이란 정체성이 어느 정도 있다.
대구시에는 오랫동안 미술계 저변을 지켜온 대백프라자갤러리가 존재하고, 같은 중구의 현대백화점과 롯데백화점도 갤러리를 의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비교하면, 대구 신세계갤러리는 전국 각 지점과 네트워크를 이루어 전국 단위 순회전과 지역성을 염두에 둔 자체기획전의 균형을 지킨다는 점이 있다. 만약 기차나 고속버스를 이용해 대구를 들른 미술애호가가 있다면, 목적지를 짜는 게 고심이 될 수도 있다. 수성구 외곽의 대구미술관으로 택하든 중앙 도심으로 잡든 간에, 처음이나 마지막 관람지를 신세계갤러리로 잡는 것은 무난한 선택이 될 수 있다.
대구미술 1번지
이제 본격적인 미술 투어다. 대구에서 미술 전시공간이 가장 밀집한 곳은 봉산문화거리이다. 서울로 치자면 인사동 거리와 비슷한 이곳은 대구 소비상권의 중심지인 동성로 건너편에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다. 1980년대부터 자연스럽게 터를 잡은 봉산문화거리에는 크고 작은 화랑들과 공방과 표구사가 상권을 이루고 있다. 대구 중구가 운영하는 봉산문화회관은 전국의 다른 구립 문화회관보다 미술에 특화된 공간이다. 기억공작소와 유리상자라는 두 개의 전시 프로그램에 한국을 대표하는 기성작가와 신진작가들이 거쳐가고 있다. 40년 가깝게 많은 전시공간이 생겼다가 사라지길 반복한 이 길에 관해서는 지금도 미술계 안팎으로 ‘대구미술 하면 봉산거리’라는 인식이 여전하다.
[왼쪽] 우손갤러리 외부 전경. [오른쪽] 우손갤러리 《이배 Lee Bae 개인전 전시 전경. 사진 : 박명래. 이미지 우손갤러리 제공.
2000년 즈음부터 인근의 대봉동에 대형 갤러리들이 들어서면서 봉산문화거리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낮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우손갤러리가 들어서서 세계적인 작가들의 전시를 잇달아 유치하면서 전국의 미술애호가들을 다시 이 거리로 끌어들였다. 여기에 최근에는 새로운 감성의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점포 수를 늘리면서 거리의 모습을 바꾸고 있다. 하나의 장소가 아니라 집합체로서 봉산문화거리의 부활은봉산문화회관이나 우손갤러리 같은 몇몇 장소의 운영에 기댄 게 아니라 이곳에서 오랜 시간 동안 다져온 상업 갤러리들의 저력이 다른 도시의 어떤 미술 상권보다 큰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단지 미술이 좋아서 그곳을 찾는 많은 이들이 그런 분석까지 할 필요는 없다. 바로 옆에 있는 한국 단일 도심 상권으로는 가장 큰 동성로와 하나의 묶음으로, 전시 공간과 핫플레이스를 탐방할 수 있는 봉산문화거리에서는 가벼운 마음으로 미술을 즐기면 된다.
콘템포러리 아트 클러스터
이제 조금 더 난이도를 높여 보자. 난이도가 작품 수준에 맞춰 이해하기 쉽거나 어렵단 뜻이 아니다. 큰 건물이나 문화거리와 달리, 전시 공간들이 퍼져있어서 찾아가기 힘든 경우가 많다. 도시의 장소성을 드러내는 모습이 항상 클러스터 현상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밀집 구조를 뚫고 다른 장소로 퍼져나가는 일이 허다하다. 여기서는 공간돌파라고 부르겠다. 공간돌파 현상은 특정한 곳들이 모인 장소가 장점도 많지만 그만큼 비례하는 단점을 피하고자 벌어진다. 이를테면 높은 땅값이나 편의시설 부족, 또 그곳의 터줏대감들 텃세를 벗어나기 위함도 있다. 이유야 어쨌든 내게 좋은 곳은 남들에게도 좋은 법이다. 어디에서 벗어나서 찾아간 곳에 또 동종업이 몰리는 일은 흔하다. 일찍이 부도심과 위성도시를 끼고 있으며 주상복합아파트와 수성못으로 상징되는 수성구에 전시 공간이 늘어난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초고층 아파트 상가에 자리 잡은 021갤러리는 그들 신생 화랑의 상징성을 띤다.
대구미술의 지리학에서 공간돌파를 이룬 사례는 앞서 언급한 지역이다. 이 지역은 봉산문화거리 옆에 대봉동과 이천동 일대이다. 봉산문화거리에서 대백플라자와 방천시장과 김광석길까지, 또 건들바위와 골동품 거리와 미군 캠프헨리까지 가로지르는 반경 안에 공간들이 있다. 이전까지 이 반경은 갤러리신라, 리안갤러리, 갤러리분도가 동시대 미술의 경향을 앞다투어 보여주면서 좀 더 좁은 삼각형이었다. 이 지형 안에 많은 신생공간이 진입했다. 을갤러리, 갤러리CnK 같은 화랑은 아무리 평가를 박하게 하더라도 수도권과 지역의 차이를 알 수 없는, 어떤 면에서는 서울의 화랑가가 길게 뻗어 나온 줄기처럼 보인다. 이들과 더불어 사진 전문 전시 공간인 아트스페이스 루모스의 활동이 눈에 띈다. 사진비엔날레가 벌어지는 대구에서 루모스의 활동은 5년이 되지 않은 기간 동안 많은 주목을 받았다. 루모스는 현장 전시와 함께 아카이브 관리와 공개에 주력한다. 이곳은 사진비엔날레 기간이면 공식적인 행사 거점인 대구문화예술과 함께 가장 분주한 장소가 된다. 굳이 2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비엔날레가 아니더라도 루모스를 찾아가면 사진의 도시 대구를 실감할 수 있다.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굿스페이스 외부 및 내부 전경. 이미지 굿스페이스 제공.
다른 한쪽에서, 10년 전에 재래시장 살리기라는 목적으로 진행했던 방천시장 프로젝트의 자취는 지금도 남아 있다. 오래된 한옥을 고쳐 전시와 미술 독립잡지를 발행하는 방천예가를 비롯하여 문101, 갤러리토마와 같은 많은 전시 공간이 일대에서 활동 중이다. 이 가운데 굿스페이스의 행보는 흥미롭다. 이 지역의 공간들에는 대체로 떠들썩하고 아기자기한 사랑방 같은 분위기가 깔려있는데, 굿스페이스에는 그 모퉁이에서 매우 절제되고 세련된 공기가 흐른다. 이곳은 애당초 상업적인 목적을 염두에 두지 않았으면서도 대안공간의 운영 형태 또한 아니다. 대봉동 미술가를 찾는다면, 아트스페이스 루모스와 굿스페이스, 아주 크고, 작은 두 공간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도시 재생과 미술
행정 체계가 힘을 가하는 도심 재생 정책과 예술 체계 영역인 미술은 통하는 부분이 있다. 도시디자인이라는, 실체가 있으면서도 추상적인 선에서 벌어지는 도시재생 사업은 앞서 밝힌 대로, 기계적 은유로 보면 낡은 부품을 손봐서 다시 가동하는 식이다. 또 생태적 은유에서 본다면 그건 외래 지배종 사이에 낀 군계 요소를 보존하는 일이다. 오래되거나 쓰임새가 사라진 장소를 예술지구로 바꾼 사례가 대구에도 많다. 이 전시 공간들은 클러스터 대신 곳곳에 흩어져 있고, 미술에 관심 없는 시민들은 그 정체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 그래도 단기간에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예가 중구 수창동에 있는 예술발전소와 수창청춘맨숀일 것이다. 담배회사의 공장과 사원 숙소로 각각 썼던 두 장소는 예술공간으로 탈바꿈했지만, 처음 취지처럼 생동감 있는 예술을 그대로 담아내지는 못하고 있다. 이건 실패가 아니라 순리다. 큰 공간을 변용하는 일에는 복잡한 행정적 절차와 많은 돈이 필요한 탓에 관 주도로 진행할 때가 많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은행 건물을 전시 공간으로 바꾼 향촌문화관과 대구근대역사관은 좋은 관광코스다. 서울의 을지로를 닮은 교동, 문래동과 흡사한 북성로에도 현지 사정에 밝은 외지인들이 오는데, 북성로 공구거리의 유산을 담아 콘템포러리 미술 전시와 연계하는 기술예술융합소 모루는 빼놓을 수 없는 전시 공간이다. 앞서 소개한 수성구 021갤러리와 연결되는 지하철 통로를 전시와 레지던시 공간으로 바꾼 아트랩범어도 도심 재생의 한 유형으로 볼 수 있다.
기술예술융합소 모루 외부 및 내부 전경. 이미지 기술예술융합소 모루 제공.
아트스페이스 펄 온라인 아트샵 팝업전시, 2021, 오고가고 프로젝트 설치전 풍경, 2016. 이미지 아트스페이스 펄 제공.
폐교를 예술공간으로 바꾼 사례는 어디에나 있다. 가창과 달천 레지던시로 알려진 대구권의 창작 스튜디오도 그렇다. 학교 건물은 아니었지만 삼성창조경제단지 속 예술지구도 외지인들이 많이 찾는 장소가 되었다. 지금도 돌아가는 국수 공장의 일부를 갤러리로 바꾼 피앤씨풍국창고는 서대구 고속버스터미널 바로 옆에서 5년째 운영 중이다. 대안공간으로 불리다가 비영리전시공간으로 명칭이 바뀌고 있는 곳들 또한 기존 공간을 개조한 경우가 많다. 앞서 소개한 장소들과 달리 비영리공간은 개인 소유지를 자력으로 탈바꿈한 곳들이 많다. 대구는 상업 갤러리가 많은 대신 비영리전시공간은 드문 편이다. 그래도 스페이스 펄, 대안공간 싹, 독립공간 등이 도심지 주변에서 활동 중이다. 이곳들은 미술에 한 걸음 더 발을 들인 관계자들이라면 꼭 챙겨야 할 행선지이다.
갤러리 프랑 ⓒ갤러리 프랑
비非 본격적인 전시 공간
이제까지 시내 안에서 전시를 감상했다면, 외곽으로 나가볼 만하다. 대구 동남 방향은 가창과 청도로 이어진다. 이곳은 지역 미술인들에게 가창 레지던시와 많은 작가 작업실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지역 특성상 적지 않은 화랑이 있고, 최근에는 갤러리프랑이 문을 열었다. 현재 미술시장에서 고가로 거래되는 추상 단색화가들의 작품을 예약 방문 형태로 공개하는 화랑 운영이 특색있다. 미술품 컬렉터들이라면 한 번쯤 들릴만한 장소다. 가창 레지던시 인근의 아트 도서관은 훨씬 많은 미술애호가를 기다리고 있다. 이곳은 우리나라 유일의 미술전문 도서관으로 자리매김했다. 아트 도서관은 도심에서 운영하다가 화재로 건물과 소장도서 상당 부분이 불에 탔음에도 운영자의 의지로 재기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이 불굴의 장소를 응원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대구 서편 외곽의 다사 지역은 강정보 현대미술제가 매년 벌어지는 지역으로, 멀지 않은 곳에 달천 창작 레지던시가 2021년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봉산문화거리에서 옮겨온 혜원갤러리는 마르텐사이트와 전시를 펼치며 터를 잡았다.
이처럼 갤러리가 카페와 결합하거나, 카페 자체가 전시를 유치하는 복합문화공간은 전국적으로 나타나는 뚜렷한 경향이다. 이런 형태의 장소가 생긴 시점도 대략 4, 5년 전이며, 이들은 서울 성수동의 사례를 따르고 있다. 대구에는 북편 팔공산 일대에만 열 군데 가깝게 등장했으며, 수성못에 위치하며 건축가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받은 텀트리 프로젝트도 사례 초기부터 영업을 해왔다. 다시 도심 안으로 들어오면, 앞서 이야기한 낡은 건물의 개조형태가 많다. 은행 연수원을 매입해서 바꾼 남구 앞산 아래 별을 헤다, 중구 교동의 폐업한 목욕탕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되살린 문화장, 공장과 교회를 바꾼 북구의 빌리 웍스는 그림으로 벽을 장식하고 전시회라고 이름 붙이는 수준은 넘어선 곳들이다. 공간마다 기획의 전문성을 보충하기 위해 대행업체를 끌어들이는 것도 전국적인 현상의 단면이다. 복합문화공간의 유행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예술경영의 진정성이 있는지, 섣부른 판단은 어렵지만, 전시 공간의 다양화에 기여하는 점은 분명하다. 영화 제목을 비틀면, 일단 “먹고 마시고 관람하라.”
아트도서관 ⓒ아트도서관
그들의 앞날에 매겨진 숙제
도시의 모든 부분은 고르게 발전하지 않는다. 우리가 관람하는 미술전시도 그렇다. 때로는 전체 흐름을 따르는 것 같지만, 뜻밖의 곳에 등장하는 신생공간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호기심과 유쾌함을 느낀다. 문제는 그곳이 관객들에게 얼마만큼의 볼거리를 제공할 것인지, 작가들에게 창작과 전시의 기회를 제대로 부여할 것인지, 또 작가와 자신에게 충분한 보상이 되돌아갈 것인가 우려되는 점이 많다. 더 나아가 신생공간들이 미술 담론을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한 도시가 꿈틀대며 활기를 띠는 모습에 기능할 것인지에 관한 과제도 있다. 앞서 명멸했던 모든 공간은 이 숙제 앞에서 고민했고, 새로운 공간들도 여기에 뛰어들었다.
윤규홍
오픈스페이스 배 아트디렉터/예술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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