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실패한다.

우리는 늘 실패한다. 
우리가 배웠던 것, 세상의 큰 목소리들이 확신에 차서 말하는 것들과 우리의 사소한 경험이 잘 맞아떨어지지 않고 엇나갈 때 우리는 실패한다. 우리들 개인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가 저 큰 목소리들 앞에서는 항상 ‘당신의 사정’이다. 소작농이 수확의 7할을 지대로 내놓아야 했던 것도 당신의 사정이고, 없던 도로가 뚫려 한 마을이 두 마을로 나뉘어 살아야 하는 것도 당신의 사정이며, 그 끔찍했던 입시 공부를 자식에게 강요해야 하는 것도 당신의 사정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실패의 순간마다 변화한다. 
사람들마다 하나씩 안고 있는 이 사소한 당신의 사정들이 실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 사정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어딘가에는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되는 것이 바로 그 변화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있다. 우리를 하나로 묶어줄 것 같은 큰 목소리에서 우리는 소외되어 있지만, 외따로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당신의 사정으로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글쓰기가 독창성과 사실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바로 당신의 사정을 이해하기 위해 나의 '사소한' 사정을 말한다는 것이다.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175-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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