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해빙 이서윤

'더 해빙' 펴낸 이서윤씨 
김미리 기자 입력 2020.03.14 03:00

대치동 여고생은 수학 과외가 끝나면 운명학 책을 펼쳤다. 유명하다는 전국 도사들이 집으로 와서 ‘운(運)’ 과외를 해줬다. 성적은 전교 상위권. 이해력 뛰어난 소녀는 가르침을 통째 흡수했다. 스승들이 ‘나보다 더 잘 보는 애가 있으니 가보라’고 추천해 고등학교(숙명여고) 때부터 재벌가 회장님이 찾아왔다고 한다.

독특한 이력의 운명 컨설턴트 이서윤(41)이 마음가짐을 주제로 한 책 '더 해빙(The Having, 이서윤·홍주연 공저, 수오서재 刊)'을 출간했다. 1년 전 미국 유명 출판사 펭귄랜덤하우스를 통해 영어로 미국에서 먼저 출간한 책이 역수입된 케이스. 한국 출간 전 해외 21국에 판권을 계약했다. 토종 저자의 해외 선(先)출간은 이례적인 경우라고 한다. 뭐가 그들을 움직였을까.

“미래는 밀가루 반죽이에요. 현재 있는 것에 집중해 미래를 빚어야 해요.” 이서윤씨는 ‘없다’는 감정보다 ‘있다’에 집중하는 태도가 부를 불러온다고 했다.

―왜 해외에서 먼저 책을 냈나.

"처음부터 해외 독자를 타깃으로 했다. 외국에서 점성술을 공부하면서 그곳 사람들을 만났는데 동양 운명학을 신선하게 보더라. 서양 자기계발서의 단골 주제인 성공학에 동양적 마음가짐법을 더했는데 예상보다 반응이 좋았다."

―마음가짐이라니.

"수많은 부자를 상담했다. 50억원이 있어도 온전히 그것을 느끼는 사람과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차이는 마인드세트(마음가짐). '지금 가진 것에 집중하는 태도'였다. 이를 '해빙(Having)'이라고 명명했다."

―가진 것에 집중하라?

"'미래의 불안' 대신 '현재의 긍정'에 맞추는 것이다. 10만원이 있다고 치자. 이걸 쓰고 나면 어떻게 메울까 걱정하기보다 쓸 돈이 10만원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라고 생각하는 식이다. 긍정적인 면에 포커스를 맞추면 좋은 느낌이 생기고, 좋은 느낌이 운을 끌어온다. 여기에 돈이 따라온다." ―운이 뭔가.

"내가 100% 통제할 수 없는 외부 기운.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고 세상이 나를 보살펴준다고 믿고 운의 흐름에 나를 맡겼을 때 좋은 운이 온다."

―가진 것이 없어 희망도 없다는 밀레니얼 세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진 것이 없다고 느끼는 건 '비교'에서 시작된다. 상대와 비교해서 느끼는 박탈감이다. 특히 한국 사람이 심하다. 상담 와서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남들 다 그렇지 않아요?'다. 외국 가서 통역 끼고 상담을 꽤 했는데 그런 사람을 못 봤다. 외부에서 나로 초점을 옮겨야 한다."

―현재에 초점을 맞추라고 했다.

"미래는 밀가루 반죽 같다. 밀가루 반죽으로 여러 가지 빵을 빚을 수 있듯 현재의 내 감정으로 미래를 빚을 수 있다. 거창한 것 같은데 작은 데서 출발하면 된다. 지금 당장 눈앞에 커피 한 잔이 있어 행복하다는 식이다. 작지만 나비효과처럼 긍정적인 느낌을 불러올 수 있다. 내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냐에 따라 내 곁으로 모이는 사람부터 달라진다."

―미래를 보는 직업 아닌가. 그런데 현재에 주목했다.

"일곱 살부터 미래에 반걸음 걸친 채 인생을 사는 훈련을 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게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됐다."

―신기가 있나.

"전혀. 강원도에서 유명한 포목상이었던 할머니가 사주를 잘 보시는데 내가 운 공부를 하면 남들에게 보탬이 되는 운명이라고 믿으셨다. 꼬마 때부터 나한테 투자해 이 공부를 시켰다. 이쪽 공부가 돈이 많이 든다. 학문적으로 연구 많이 한 사람보다 산속에 파묻힌 도사가 더 실력 있을 때가 많았다. 어린 내가 전국을 돌 수 없으니 집으로 그들을 모셔야 했다. 그분들 움직이는 건 결국 돈이더라. 솔직히 중산층이 아니었다면 배우기 어려웠을 것 같다." 전형적인 강남 중산층이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감이었고 아버지는 방송중계 차량 사업을 한다.

―평범치 않은 삶 아닌가.

"손금은 초등학교 4~5학년 때부터 봤다. 중·고등학교 때는 선생님들이 애들 자습시키고 나한테 상담하곤 했다. 고3 때 내 대학 운이 너무 안 좋아 심란했는데 친구들이 사주를 계속 봐달라고 해서 짜증이 났다(웃음)." 재수해 연세대 경영학과에 들어갔다.

―재벌가 창업주들이 많이 찾아왔다는데 어떤 분이 있었나.

"자신들이 밝히길 꺼렸다. 돌아가셨지만 이 직업의 생명은 입은 닫는 것이기에 말할 수 없다. 다만 스타일은 다른데 공통점이 있었다. 내가 운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운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런 유명한 사람이 찾아왔나.

"완벽주의자다. 운명학 가르치던 스승이 부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하면 '부자의 기준이 뭐냐. 50억원이냐 100억원이냐' 꼬치꼬치 캐물었다. 선생님이 귀찮다면서 화를 냈는데 결국 당신들 찾아오는 정·재계 유명 인사들에게 나를 추천했다."

―선거철이다. 정치인도 많이 봤다던데.

"기업인은 때가 아니라고 하면 물러설 줄 안다. 투자를 다음으로 미룬다. 정치인은 아무리 내가 물러설 때라고 말해도 무조건 선거에 나갔다가 떨어진다.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표를 구걸하는 사람. 속된 말로 거지 근성이 있다. 투자 없이 운만 따르길 바란다. '기브(give·주는 것) 없이 테이크(take·받는 것)만 생각한다."

―요즘 세상이 우울하다.

“코로나가 심각한 것은 맞지만 우리 마음마저 잠식돼선 안 된다. 공포에 지나치게 주목하면 더 힘들어진다. 폭풍우 치는 지금에도 나는 살아 있음에 집중해야 한다. 운을 공부하며 내린 결론은 인간은 운명 그 이상 존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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