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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수 대표 인터뷰

by dig it 2022. 8. 3.

'육식'과 '스타일’이 한 문장 안에 있는 게 온당한가? 자르고, 썰고, 가르고, 씹고, 뜯는 야만적 행위와 미적이고, 예술적이고, 우아하고, '격조'와 '형식' 같은 단어들을 떠오르게 하는 명사가 함께 있는 것이?

'동물의 왕국'에서 본 육식의 광경을 떠올린다. 톰슨가젤 사냥에 성공해 입 주위에 뻘겋게 피를 묻히고 살점을 우적우적 씹는 치타의 얼굴. 황금빛 털과 검은 눈물자국을 가진 치타가 밝은 갈색과 흰색이 섞인 톰슨가젤의 몸통에 이빨을 박았을 때 흐르는 붉은 피. 컬러의 조화와 대비로는 스타일리쉬할 수 있겠지.

한국의 육식 문화는 어떤가? 가운데 뚫린 원탁에 둘러앉아, 흉기와 다름없는 숯불 통을 옮기는 고깃집 직원의 위협을 피해 가며, 고기를 불판에 올린 지 5초 만에 '내가 고기인지 먹고 있는 게 고기인지' 모를 만큼 냄새 가득 배인 옷을 입고, 검게 그을린 불판을 응시하며 소주잔 부딪히는 고깃집의 광경. 이게 스타일리쉬해 보이나?

전쟁 같았던 국내 육식 문화에 르 코르뷔지에와 같은 혁신과 명확한 지향점으로 새로운 발상을 불어넣은 사람이 있다. 육식 문화에 스타일을 입힌 '한육감'의 이준수 대표를 광화문 디타워에 있는 한육감에서 만났다.

한육감 내부 전경 ⓒ위클리서울 /한육감 '소고기 사업 방정식' 벗어난 파격 행보로 광화문 터줏대감 된 한육감



블랙과 골드가 적절히 배합된 그야말로 격조 있는 한육감의 룸. 왕이라도 된 듯한 기분으로 광화문이 훤히 보이는 통유리창을 내다보고 있는 사이, 청년이라기보다 동그란 소년 같은 이준수 대표가 들어왔다. "그 가방 멋있네요. '마르니', 제가 제일 좋아하는 브랜드에요." 화려한 프린트의 하와이안 셔츠와 흰 안경태. 그는 음식점 사장이 아니라 초감각적인 편집 디자이너 같았다. 

"코로나 때문에...이 장사 하는 사람들이 정말 힘들죠 뭐." 그의 입에서 '장사'라는 단어가 나오고 나서야 외식사업가의 번뇌가 느껴졌다. 평일 점심시간, 한육감은 빈 테이블이 거의 없었다.

”점심 매출로는 임대료 내기도 힘들거든요. 작년 5인 이상 집합 금지 이후 직장가에 저녁 회식이 막히면서 타격이 커졌어요. 거리 두기 4단계로 3명도 모일 수 없으니 더 힘들어졌죠. 코로나가 언제까지 갈지 모른다는 점이 가장 힘들지만. 한육감을 2014년에 오픈하면서 '10년 동안 이어갈 수 있을까?' 스스로 질문을 던져봤는데 이렇게 어려울지는 몰랐네요. 제대로 싸워볼 수도 없는 코로나라는 상대 앞에서."

외식업자들이 꺼내고 싶지 않은 단어 1순위인 '코로나'라는 단어를 뱉으며 그는 거의 초월적으로 웃는 듯 보였다. 광화문과 서울로에 대형 평수의 레스토랑을 연, 작년 여름 디타워 4층에 또 하나의 대형 레스토랑을 낸 성공한 사업가가.

"좋은 고기를 싸게 팔면 된다. 소고기 사업의 방정식이에요. 우리가 그 방정식을 따라갔냐고요? 2014년 1월, 그랑서울에 한육감을 오픈했을 때 주위에서 걱정 섞인 얘기들이 많았어요. 큰 한우전문점을 운영하는 사장님도 한육감을 보고 '너 이렇게 하면 망한다'고 하셨죠. 사업 방정식을 따라가지 않는 게 모험적으로 보였겠지요." 
 

광화문 디타워 5층에서 바라본 한육감 외부 전경 ⓒ위클리서울 /우정호 기자

 

‘한육감’은 한식과 양식의 경계를 허물고 한우에 대한 전문성을 살린 스타일리시한 레스토랑으로, 지난 2014년 오픈 이후 GS건설, 교보생명, KT, SK그룹 등 광화문 직장인들의 불길 같은 입소문을 탔다. 코스요리로 회식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에 '광화문 회식장소 1순위’로가 더해져 본 적 없는 유명세를 떨쳤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7’에도 선정된 한육감은 현재 서울로의 지점과 광화문 본점이 있다.

“그랑서울에는 이미 2개의 잘나가는 소고기 전문점이 있었어요. 좋은 고기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파는 '투뿔등심'이 있고, 고급화 전략을 펼치는 '벽제갈비'. 돌파구가 필요했어요. '코스 메뉴를 만들자'고 생각했죠. 한우 구이를 코스 요리로 만들고, 거기에 양식의 모양새를 덧씌우고, 토마호크 스테이크 같은 메뉴를 보여주자. 그랬더니 반응이 빠르게 왔어요. '고기 먹고 나면 냉면 아니었어?'하던 사람들이 고기를 먹는데 수프도 나오고, 디저트까지 이어지는 코스요리를 접하니까 새로웠죠. 자리가 스무 석이었는데 전화가 하루에 120통이 오는 거에요."

이준수 대표는 고깃집 테이블의 혁명을 일으켰다. 한우고깃집에서 고기를 자르기 위해 쓰는 가위를 테이블에서 치우고, 고기를 굽는 수고와 '몇 인분 시켜야 할까?'와 같은 고민들을 고객들에게서 떼어냈다. 코스 요리를 주문하면 식사 예산 설정이 쉽다는 점은 직장인들에게 매력적으로 작용했다.

“우리는 다른 방식을 택했어요. 고기를 파는 걸 형식의 변화와 스타일링으로 풀어내자. 한국에서 처음으로 소고기와 와사비를 같이 낸 건 한육감이에요. 나고야에 가서 와규 초밥을 맛봤을 때, 다른 소고기에 비해 풍미가 떨어지는 안심에 와사비를 얹는다는 아이디어가 괜찮았어요. '소고기와 와사비. 이거 잘 어울리는데?'하면서 국내에 도입했죠. '손님들에게 안심은 와사비와, 등심은 씨겨자와, 소금은 골고를 찍어 드시면 됩니다'하면서 설명하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일반화돼서 웬만한 고기집에서는 와사비를 함께 내오죠.” 

“이럴 줄 알았으면 고추냉이 장사를 할걸”하며 웃는 이 대표는 식문화에 변혁을 주고 육식의 스타일을 만드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 이 사업에 뛰어들었을 때 '비싼 고기를 비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건 무슨 의미가 있나? 그게 장사인가?' 의구심이 들었어요. 적어도 싼 고기를 비싸게 만들거나 비싼 고기를 싸게 만들어야 의미가 있지. 고기의 등급이라는 것, 어느 지역의 고기라는 건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지인들에게 농담 삼아 이렇게 얘기해요. '서울대 들어가면 그냥 서울대생이지 전라도에서 왔든 경상도에서 왔든 그게 중요하냐? 횡성한우가 맛있다고? 횡성한우도 미제 사료 먹어'".

라틴아메리카를 다녀온 사람들, 특히 유학하고 온 사람들은 '아르헨티나 고기가 세계 최고'라고 입을 모아 말하곤 했다. 근데 우리나라에선 '난 한우 아니면 안 먹어'할 만큼 한우가 최고 아닌가? 미국인들은 미국산 소고기가 최고라고 하지 않나? 호주 사람들은 호주가 최고라고 하고? 그렇다면 리히텐슈타인 사람들도 자기네 소고기가 최고라고 하는 거 아닐까.

"'소고기 장사하면 아르헨티나 고기를 먹어봐야 한다'는 얘긴 저도 많이 들었어요. 직접 가서 먹어보니 잘 숙성된 한우 2등급 고기 같았죠. 한우 맛있죠. 근데 일본 소는 한국보다 마블링이 뛰어난 점도 있고 갈비는 미국산도 나쁘지 않고. 방목 환경이 좋은 아르헨티나 소는 또 다른 특성을 가졌죠. 브라질 소고기도 맛있다고 하고. 누군 이탈리아 비스떼까가 최고라고 하죠. 물론 맛있어야 할 수 있겠죠. 그 먼데 비행기 타고 갔으니까. 진부한 얘기지만 어디에서 누구랑 먹느냐가 가장 중요한 거 아닐까요." 

스타일로 승부한 한육감은 직장인들, 특히 금융맨들에게 소문이 빠르게 버지면서 1년 반 만에 '거의 바로 옆' 건물인 디타워에 2호점을 냈다. 

"디타워에 2호점은 2015년 8월에 오픈했으니 굉장히 짧은 시간에, 그것도 바로 근처에 내 버린 거죠. 그랬더니 또 말들이 많았어요. '바로 옆에다 내면 어떡하냐',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 하면서. 물론 생각보다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갔죠. 여기서 뛰어 내리는 줄 알았다니까요."

그가 농담으로 맺었지만, 그랑서울에서 200미터가 채 되지 않는 디타워에 2호점을 오픈했다는 건 파격적으로 들렸다. 하지만 그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실패라는 게 두렵지 않거나 그런 단어가 사전에 없는 사람처럼.

"한육감은 고기를 파는 게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파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여기서 파는 요리가 한식인지 양식인지 일식인지 구분하기보단 이 공간을 즐겼으면 하는 게 저의 가장 큰 목적이에요. "한육감의 1대 셰프로 모셔왔던 분은 국내 몇 없는 프랑스 르 꼬르동 블루를 졸업하셨고, 가나아트센터의 '빌'이라는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계셨어요. 그분의 요리도 훌륭했지만 큐레이터들이 선정한 그림들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그 공기가 저를 크게 만족시켰어요. 그러면서 '아 이게 바로 외식업의 본질이 아닐까? 공간을 판매하는 것이?'하는 생각이 확신으로 발전했죠." 


'역사와 전통’은 어떤 집단, 브랜드, 국가 너머의 문화적 근간일 것이다. 무엇보다 우선하는 가치로서. 하지만 ‘역사’와 ‘전통’이라는 가치조차 ‘새로운 물결’ 또는 혁신과 상충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한반도를 걸어 잠근 흥성대원군에게도, 누벨바그의 아이콘 장 뤽 고다르에게도 저마다의 전통은 존재했겠지만.

“‘브랜드’를 선택할 것이냐 ‘히스토리’를 선택할 것이냐. 제가 선택한 건 브랜드였어요. 히스토리만으로 안정적인 사업을 이어나가는 레스토랑이나 음식점도 많죠.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참누렁소‘의 분점 형태로 처음 시작했다면, 브랜드가 몇 십 년에 걸쳐 쌓은 인지도와 확보된 고객층을 토대로 더 용이하게 해나갈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뻔히 보이는 그 길. 재미 없잖아요.” 

이준수는 한쪽 눈을 감고도 건널 만큼 익숙한 강의 항해보단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미지의 바다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마젤란이 미지로의 항해를 앞두고 주변에서 ‘미쳤다’고 했듯 한육감 창업을 두고 걱정이 넘쳤다. 허영만의 ’식객‘에도 등장할 만큼 내력 있는 한우 전문 브랜드 ‘참누렁소’를 운영하는 부모님조차도.  

“독립선언을 했더니 부모님과 크게 마찰이 있었죠. ‘참누렁소’의 이름을 걸지도 않은 데다 부모님이 해왔던 사업 방향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가니까. 아버님께선 ‘한우등급제’ 도입에도 적극 관여 하시고 농림수산부 표창도 받으셨을 정도로 굉장한 한우 전문가셔요. 허영만 선생님 식객촌 취재를 도와주시는 아버님을 보면서도 다시 한번 전문성과 지식에 놀랐어요. 아버님이 한우에 관한 ‘학자’에 가까우시다면 어머니는 기업인으로서 갖춰야 할 것들을 갖추신 분이세요. 내가 사업가로 크는 데는 어머니가 굉장히 큰 역할을 하셨죠.”  

“어렸을 땐, 식사 시간에도 장사 얘기하시는 부모님이 이해가 안 갔어요. ‘가족끼리 모였는데 우리 얘기 좀 하면 안 되나’하는 마음도 들고. 반찬 도시락으로 소고기 싸가지고 다니면서 ‘다른 애들처럼 비엔나 소시지 싸 달라’고 투정 부렸을 만큼 철이 없기도 했지만. 지금은 부모님이 존경스럽고 감사하죠. 사업가가 되어 보니 특히. 아직 현업에서 일하시는 두 분이 여전히 귀감이 되고 많이 배우고 있어요.”

 

'조선기술' 내부 ⓒ위클리서울 /조선기술 ‘한육감’에 이은 새 브랜드 ‘조선기술’



이준수 대표는 ‘사업가는 확장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말을 그야말로 돌에 새기고 있었다. 작년 11월, 한육감이 있는 광화문 디타워 4층에 새로운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이름은 ‘조선기술’. 거제도나 울산의 조선업 지구에나 나올 법한 상호가 등장한 것이다.
 
“‘대항해시대’. 제가 만든 브랜드들이 속해있는 테마예요. 한육감 1호점은 기사도로 대표되는 서양의 기사 문화. 여기 2호점은 ’왕‘이 컨셉트예요. 3호점은 육지의 왕이 바다로 눈을 돌려 항해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어요. 바다로 나가려면 배를 만들기 위한 ‘조선기술’이 필요하겠죠? 이 왕은 대항해시대처럼 물리적, 식민적 지배가 아니고, 문화 지배를 꿈꾸고 있어요. 

대항해시대라. 학교 전공 책에서 나왔던 바스쿠 다 가마, 신항로 개척, 토르데시야스 조약 같은 단어들이 스쳤다. 90년대, 3040 세대들을 밤잠 설치게 한 코에이사의 동명 게임 이름도. 그와 동시에 이준수 대표의 바다 빛 하와이안 셔츠와 손목의 롤렉스 딥씨는 강철같은 은유로 보였다. 깊은 바다로 언제든 들어갈 준비가 돼 있을 것이라는.
 
“한 건물 안에 컨셉을 공유하는 브랜드가 여럿 있으면 하나의 거대한 브랜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몇 년 전 싱가포르에 갔을 때, ‘푸드 리퍼블릭’이라는 푸드 코트를 보고 인상적이라고 생각했는데, 2년 전에 다시 가보니 싱가포르 전역으로 진출했더라고요. 이 푸드 코트 안에 있는 70퍼센트의 가게가 푸드 리퍼블릭의 자체 브랜드였어요. 공간 임대를 하는 사업을 플랫폼 비즈니스라고 하는데 거기서 영향을 받기도 했죠.”

“한국 사람들이 생선을 많이 먹고 생선구이도 참 좋아하지만 정작 생선구이 집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생선구이 백반 집은 좀 있어도. 왜 쉽게 먹지 못할까 생각해 봤죠. 가시 바르는 걸 싫어하는 사람도 많고, 집에서 생선구이를 해먹기도 하지만 냄새 때문에 많이 불편해하죠. 그럼, 가시를 바른 생선구이를 냄새 안 나는 데서 깔끔하게 즐기면 어떨까? 생선구이는 스테이크처럼 포크, 나이프로 먹으면 안 되나? 하는 생각들이 ‘조선기술’ 창업으로 이어졌죠.” 

광화문 한복판이 내려다보이는 조선기술의 테라스 공간에선 최근 디스커버리 채널의 ‘싱투게더2’ 촬영이 진행되기도 했다. 지난 8월 3일 방영된 ‘싱투게더2’는 린, 임정희, 이영현, KCM, 김태우가 테라스에 마련된 무대에서 공연함으로써 종로 통인시장의 소상공인들에게 뜻밖의 감탄과 감동을 선사했다. 이준수 대표는 “감동적인 무대였어요. 무엇보다 이 공간이 제 역할을 한 것 같아서 기뻤어요”라고 말했다.

2일 방영된 디스커버리 채널의 ’싱투게더2‘ ⓒ위클리서울 /고스타바스타 유튜브 채널 캡처 ’생각의 가시화‘가 비전



이준수 대표가 가진 다채로운 문화적 소양, 외양에서 풍겼던 미적 감각은 단순한 외식경영자와는 차원이 달랐다. 실제로 그는 경영학을 전공하면서도 포스터 디자인과 인쇄를 하는 그래픽 아르바이트를 경험하고, 외식사업 이전에는 인테리어업에 종사하기도 했다. 일본 잡지 ‘브루투스(Brutus)’를 즐겨본다는 이 대표는 “문화적인 팀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했다. 

“국내 남성 패션잡지 중 GQ를 보고 거의 충격을 받은 적이 있어요. 이충걸 편집장의 유려함과 위트가 돋보이는 ’에디터스 레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 세련된 잡지에서 편집, 구성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보게 된 거죠. 그러고 나니 ‘음식이나, 외식업도 일종의 편집 작업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에디터, 편집장의 의도대로 잡지의 스타일이 완성되듯 음식도 편집을 적용해 플레이팅을 ‘편집’한다면? 음식은 양식인데 한식과 또 다른 형식을 취해서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함박스테이크는 서양에선 메인 요리지만 한국사람들 에겐 밥 반찬일 수 있죠. 거기다 된장찌개 곁들이면 어떨까? 맛있지 않을까? 같은 생각들이.”

“한육감 이전에 집을 짓는 일을 해보면서, 잘 지어놓으니 그렇게 지어달라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런 집들이 모이니 동네 자체가 하나의 스타일이 된다는 걸 알았어요. 그런 경험들이 외식업으로 스타일을 만들고 싶다는 발상으로 이어졌어요. 아이콘이 될 수 있는 경지에 오른다면 좋지만 적어도 어떤 스타일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건축과 도시개발, 디자인 분야의 단어들이 등장하면서 대화 분위기는 열에 들뜨기 시작했다. 흰색 안경 뒤로 도저히 감출 수 없는 재기발랄함과 견고한 비전도.

“학교 다닐 때 ‘하마노 야스히로’에 대한 아티클을 하나 읽었어요. ‘디벨로퍼’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죠. 도쿄의 시부야, 오모테산도 같은 도시 전반에 스타일을 불어넣었고, 롯폰기 힐스, 상하이 신천지도 그 사람 작품이죠. 환경이 가진 특성을 재해석해서 도시 전체를 기획하는데 뛰어났어요. 디자이너 위의 디자이너 같은 개념이랄까요. 오모테산도 힐즈를 그 사람이 기획할 때 ‘뮤지엄 산’, ‘유민미술관’을 건축한 안도 타다오를 기용하기도 했고. 이 사람을 보며 ‘나도 저런 걸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외식업 자체가 어떤 공간의 중요한 컨텐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건물을 자체 브랜드들로 채워 넣으면 컨셉이 확실한 환경을 만들어 낼 수 있죠. 그걸 구성할 수 있는 방법은 저에겐 레스토랑이었어요. 외식업을 통해 공간을 만드는 것. 외식업 외에도 현재 호텔 컨설팅 사업도 맡고 있어요. 서울이나 지방에 있는 호텔들 자문 역할을 하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역을 하고. 공간을 구성하는 일 자체가 재밌었어요. 먹는 걸 좋아해서 레스토랑을 한다기보단 그 공간이 가진 장점을 좋아하는 거죠.”
    
지향점이 분명한 이 사업가에겐 코로나로 인한 지금의 상황조차 여정의 하나로 보인다. 

“얼마 전, 베이커리 ‘성심당’ 사장님께서 해주신 말이 있어요. ‘준수 씨, 때로는 눈을 감고 귀를 닫아야 할 때가 있어요.’ 이 얘길 듣는데 마음이 동하더라고요. 사실 SNS만 봐도 다 잘나고 행복한 사람들만 있고 코로나 와중에도 줄 선다는 음식점 사진만 넘쳐나죠. 작년 새 브랜드 오픈하고 코로나 때문에 힘들어서 와이프에게 “너무 무리였을까?”하고 물어봤더니 “오빠는 그거 못 했으면 또 다른 거 했을 걸?”하더라고요. 그 얘기가 맞아요. 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한 그 말이. 힘든 시기를 같이 버텨주는 와이프에게도 항상 감사하고.” 

“그럼에도 코로나만 완화된다면 다시 도약할 수 있겠다는 확신은 있어요. 힘이 빠졌지만 그래도 전진해야지요. 내 걸 만들려면, 스스로가 차고 넘쳐야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생각의 가시화’는 제 비전이자 회사의 비전이에요. 결국 ‘대항해시대’ 컨셉의 제 스토리라인을 완성하고 싶어요. 조선기술 이후 행보는 향신료와 관련 있어요. 대항해시대는 역시 ‘향신료’니까.”

‘코로나’라는 암초는 생각보다 깊지만, 한국 외식 산업에서 유래 없이 ‘광활한’ 시야를 가진 사업가에게는 타이타닉을 좌초시킨 북대서양 빙산이 될 수 없다. 한강 유람선이 아니고서야 항해라는 건 항상 갖가지 이벤트에서 자유롭기는 힘들 것이고. 그리고 그는 웃었다. “후추가 금값이 돼야 하는데 말이에요.”

‘먹는다’는 것은 단지 위장을 채우는 게 다가 아닌 생명을 이어가는 긴요한 행위다. 그런 먹는 행위에 스타일을 입히면 얼마나 삶이 ‘문화적’일 수 있을까? ‘먹방’이라며 라면 100개씩 끓여 먹는 게 자랑이 된 시대에. 

이 대표의 소년 같은 웃음 뒤로 브랜드들이 모여 하나의 스타일이 된 ‘대항해시대’ 도시가 웅장하게 겹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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