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함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솔직성’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으나,
‘맥락을 고려한 솔직성’은 사람을 살린다. 
여기서 말하는 맥락이란 상대방이 나와 진심으로 소통할 준비가 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이상의 행동들은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솔직성이다. 
상대방의 의도와 마음을 무시하고 고려(배려)하지 않은 솔직성,
다른 말로 하면 상대를 위한 솔직성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마음에 품고 있기 어렵기 때문에 말해 버리는
이기적 솔직성이다.

 

집단상담에서 솔직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직접적으로 다른 집단원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라고 하면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다.

“저 사람이 상처받을까봐 솔직하기가 어려워요.”

이는 기우가 아니다. 실제로 많은 경우 사람들은 상대방으로부터 솔직한 피드백을 들으면 이렇게 말한다.

“저 사람이 저를 공격해서, 제가 상처 받았어요.”

사실 어린 시절부터 가족 이외의 사람들을 경계하고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살 것을 요구받았고, 그렇게 살아왔던 많은 이들에게 솔직성은 그 자체로 위협적이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냈을 때 상대방이 싫어하는 경험, 또한 상대방으로부터 솔직성을 가장한 비난을 들은 경험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솔직성이 공격적이며,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것일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솔직성’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으나, ‘맥락을 고려한 솔직성’은 사람을 살린다. 여기서 말하는 맥락이란 대표적으로 상대방이 나와 진심으로 소통할 준비가 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친구에게 불만이 있다거나 기분이 나쁘다고 해서 친구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솔직하게 말하면 친구는 상처를 받을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너무 힘들고 화가 난다고 해서 잘 놀고 있는 아이에게 솔직하게 분노를 표출하는 부모는 분명 잘못됐다. 가게에서 일하는 점원이 손님에게 진열된 물건을 살펴본 후 제자리에 놓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도 이상하다. 자신을 만나기 위해 한껏 꾸미고 나온 애인에게 왜 이상하게 입고 나왔냐고 하는 것도 틀렸다. 친구가 블로그에 올린 글을 읽고 그 친구의 마음을 헤아려 주기는커녕, 오탈자나 지적하는 것도 상식 밖이다.

이상의 행동들은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솔직성이다. 상대방의 의도와 마음을 무시하고 고려(배려)하지 않은 솔직성, 다른 말로 하면 상대를 위한 솔직성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마음에 품고 있기 어렵기 때문에 말해 버리는 이기적 솔직성이다.

그러나 계속 같은 문제를 반복적으로 틀리는 학생에게 선생님이 솔직하게 학생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것이나 중요한 면접을 앞 둔 친구에게 이상한 옷매무새를 알려주는 것, 코치가 운동선수에게 틀린 동작을 이야기해 주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고 필요하다. 지금 당장에는 쓴 소리일지 몰라도, 결국에는 솔직성이 도움이 되고 고마워하기까지 한다. 오히려 선생님이 학생의 반복적 실수를 솔직하게 말하지 않거나, 친구가 민망할까봐 이 사이에 끼어 있는 고춧가루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코치가 운동선수에게 무조건 잘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문제다.

결국 솔직성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상대에게 공격적이어서 상처를 주는 것은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솔직성이다. 오히려 맥락을 고려한 솔직성은 상대방이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 역할을 한다.

사람은 본래 솔직하게 태어난다.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을 감추는 법이 없다. 어린 아기들을 보라. 속상하면 울고 좋으면 웃는다. 이것이 본래 사람의 모습이다. 아무 때나 부모에게 자신의 욕구를 솔직하게 드러낸다. 특히 타인의 시선을 많이 신경쓰는 우리나라에서는 집이 아닌 바깥에서 아이들이 이렇게 하면 부모들은 엄청난 분노에 휩싸인다. 부모는 왜 그렇게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하냐면서 질책과 비난을 하게 된다.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면 아이는 솔직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게 된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아이들이 보이는 솔직성은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솔직성이다. 아직 인지적 발달이 충분하지 않아 맥락을 고려할 수 없다.

만약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사람은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좋아한다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해, 상대가 떠날 때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 자신에게 해를 가하려는 사람에게도 아무 말 못하게 되어서,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솔직성 그 자체로 무조건 좋다 나쁘다를 가려서는 안 된다.

이런 면에서 솔직성은 ‘불’과 같다. 불은 때로 사람을 죽이는 화마(火魔)가 되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따뜻함과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어린 시절 화재를 경험했다고 해서 불 자체를 멀리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솔직성도 그렇다.

개인상담이나 집단상담은 그 자체로 솔직성을 장려하는 맥락이다. 상담자 뿐 아니라, 집단에 참여하는 구성원들 역시도 솔직성에 대한 기대를 하고 올 수 있다. 만약 솔직성에 대한 준비가 안 되어 있다면, 상담자는 내담자나 집단원들을 준비시켜 주어야 한다.

물론 준비가 되었다고 해도 솔직성을 발휘하는 사람이 공격적인 태도로 하면,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당황스럽다. 또한 과거의 상처가 건드려져서 마음이 아플 수도 있다. 그래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상대에게 공격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 보통 사회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면 사이가 멀어지고 틀어진다. 그러나 집단상담의 경우 상담자(리더)가 존재한다. 이럴 경우 리더가 개입하므로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등을 돌리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서로 마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와 다르다.

불에 손을 데었다고 해서 불을 멀리할 필요는 없다. 계속 연습하다보면 나중에는 적재적소에서 필요할 때 불을 사용할 수 있다. 솔직성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집단이라는 장소에서 서로 같은 마음을 가지고 계속 연습하다보면 맥락을 고려한 솔직성을 알 수 있다.

어떤 집단원들은 솔직성에 대한 경험이 너무 좋다고, 집단상담 밖의 상황에서도 솔직성을 발휘하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맥락을 고려하는 솔직성에 대한 통찰이 충분하지 않다면 이는 위험한 시도다. 맥락을 고려하지 않으면 솔직성은 득이 아니라 독이 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보고 자신의 겉모습을 단정히 하듯, 우리의 마음은 사람을 통해서만 비춰질 수 있다. 주로 어린 시절 부모가 자녀들에게 이 역할을 해주게 되는데, 부모들 역시 솔직성에 대한 훈련이나 교육, 경험이 없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아이가 들을 준비가 안 되어 있고, 들을 상황이 아닐 때 솔직성을 발휘하기도 한다. 아니면 솔직성을 가장한 비난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아이는 상처만 받게 되고,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된다. 깨진 거울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좋은 부모는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를 준비시켜 놓고 솔직성을 발휘한다. 이렇게 하면 아이는 자신과 타인에게 균형잡힌 시각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좋은 부모란 좋은 거울 역할을 하는 셈이다. 정말 친한 친구란, 좋은 배우자란, 좋은 형제자매란 좋은 거울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