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당신은 자신의 가해자성을 인정하는가?

by dig it 2021. 11. 29.
<문요한의 마음편지> 당신은 자신의 가해자성을 인정하는가?
[퀴즈] "나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은 많은 데 정작 주었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는 누구일까요?"
인간관계를 주제로 강의나 워크숍을 할 때면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진다. “지금까지 당신에게 크게 상처를 준 사람은 누구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대답한다. 가장 많이 나오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렇다. 부모와 배우자가 압도적이다. 그리고 친구, 애인, 형제자매, 직장 상사 등이 그 뒤를 잇는다. 하나같이 가까운 이들이다. 잠시 후에 또 다른 질문 하나를 던져본다. “지금까지 당신때문에 크게 상처를 받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사람들은 좀처럼 대답이 없다. 단지 옆 사람들의 눈길이 신경 쓰여서만은 아니다. 종이에 써 보라고 해도 잘 떠올리지 못한다. 작은 실망이나 상처는 준적이 있겠지만 누군가에게 그렇게 큰 상처를 준 일 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우스갯 소리로 도박판과 비슷하다. 돈을 잃었다는 사람만 있지, 땄다는 사람이 없다! 세상에는 대단해 보이는 사람들이 참 많지만 하나하나 속을 들 여다보면 인간은 참 약한 존재다. 정신과 의사를 하면서 느낀 것은 인간은 인간 에게 너무나 쉽게 상처받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누군가의 스쳐 지나 가는 말 한마디와 의미 없는 행동 하나에도 우리의 마음은 깊게 베이거나 구겨지곤 한다. 눈길 한 번 부딪히는 것만으로 사랑에 빠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눈길 한 번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것 또한 인간이다. 왜 그럴까? 인간은 뼛속까지 사회적 존재라서 관계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상처받기 쉽다는 것은 역으로 상처주기 쉬운 존재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우리는 ‘피해자성’과 ‘가해자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피해자성을 인정할 뿐, 가해자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이 받은 상처만을 잊지 않고 기억할 뿐, 자신이 누군가에게 입힌 상처는 기억하지 않는다. 아니, 상대에게 상처 주었다는 사실조차 알지도 못하거나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 번 생각해보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당신으로 인해 상처받았던 사람들의 일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가?
​특히, 가족간의 상처는 그렇다. 서로 상처주려는 어떤 의도가 없었더라도 상처를 주고 받는 게 가족이다. '나는 상처 줄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너는 상처받을 수 없다'는 전제는 있을 수 없다. 이는 마치 만원버스에서 주위 사람을 불편하게 하려는 의도가 없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불편을 끼치는 것과 유사하다. 가까운 관계란 그런 것이다.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상대방을 힘들게 하려는 의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힘들게 만들 수 있다. 심지어는 상대방을 위하려는 의도로 했던 말과 행동이었는데도 상대는 오히려 괴로움을 겪거나 상처받을 수도 있다. 의도없이 상처를 주고 받을 수 있거니와 의도와 결과가 엇나가는 경우가 셀 수 없이 많은 것이 가까운 인간관계이다.
​상대가 당신과의 관계에서 입은 상처는 상대가 연약하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과의 이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상처 줄 의도가 없더라도 상대는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을 때 갈등은 풀리기 시작한다. 당신은 자신의 가해자성을 인정하는가!
그리고 오늘 글은 도서 <관계를 읽는 시간>을 참고하였습니다.

※오늘 작품은 루치오 폰타나의 1965~1966년도 작품인 탈리Tagli('베어서 낸 자국'이란 뜻의 이탈리아 어) 연작 중 입니다.

댓글

최신글 전체

이미지
제목
글쓴이
등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