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을 즐기는 사람의 속사정

[심영섭의 심리학 교실] 혼자라는 것에 대하여

<외로움의 심리학> - 몸이 보내는 ‘경고등’ 고독(孤獨) 탈출법

 

외로움은 최선이 아닌 차선,

고독한 사람의 내향성은 사회성의 거절이 아닌 적극적인 구애의 방증

… 모든 인간은 인간의 손길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은 명심하라. 인간이란 고독에 대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문둥병 환자이건 죄수이건 악한 사람이건 병자 건 간에 사람의 머리속에 무엇보다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자기의 운명에 대한 공감자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 생명 자체와 같은 충동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인간은 모든 삶의 에너지를 소비한다.”

–발자크(Balzac), <발명가의 고통(The Inventor’s Suffering)> 중에서

개미 새끼 한 마리 없는 호텔 방 침대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여인이나 거대한 주유소 야경을 홀로 껴안고 주유기 앞에 달라 붙어있는 남자. 사실주의 미술가 에드워드 호퍼의 회화 속 인물들은 정적의 동선을 남긴다. 호퍼가 일찍이 예언했듯이 대도시의 침묵과 적막함, 텅 빈 거리와 검은 유리창 속에는 현대인의 고독이 짙게 깔려 있다.

미국에서 시행된 종합사회조사 ‘GSS(General Social Survey)’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미국인의 경우 더 사회적으로 고립됐으며 코어 네트워크는 더 작아지고 덜 다양해졌다. 인간은 수십만 년 동안 외로움을 피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현대는 외로움의 시대라 할 만하다.

 

존 카치오포 시카고대 교수는 자신의 저서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에서

20개의 질문을 통해 외로운 사람들과 사회적인 사람들을 나누고 이들의 신체 상태를 비교한 내용을 담았다.

놀랍게도 외로운 사람은 사회적인 사람에 비해 사고 능력 30%, 신진대사율 37%, 염증 억제력 13%, 소득 수준 8%가 저하돼 있었다. 이어 외로운 사람은 사회적인 사람에 비해 스트레스 수치 50%, 고혈압 발병률 37%, 심장마비를 일으킬 확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약 41%나 더 높게 나타났다.

즉 외로움은 감정에 해를 끼치는 것을 넘어 신체 건강이나 뇌의 인지, 판단력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이다.

 

 

고독을 즐기는 사람의 속사정

카치오포 교수는 더 나아가 ‘외로움과 식습관의 상관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시카고 지역의 성인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외로움을 적게 느끼는 사람은 지방에서 얻는 열량 비율이 29%에 머물렀으나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사람은 그보다 약 10%나 더 높은 39%에 달했다. 외로운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당분과 지방에 더 의존한다는 것이다.

외로움이라는 이 지독한 심리적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본능적으로 달콤한 위로를 찾는다.

그렇다. 외로움은 ‘사회적 유대가 끊어졌으니 이를 회복하라’며 몸이 보내는 일종의 경고등이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외로움과 우울증은 사실상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경험이라는 것이다.

대인관계라는 변수에 따라 우울증과 외로움이 나눠진다. 쉽게 말해 외로움은 자신이 대인관계에서 갖는 느낌을 반영한다. 반면 우울증은 자신의 느낌 그 자체만을 반영할 뿐이다. 때문에 외로움은 배고픔과 마찬가지로 불편한 조건, 어쩌면 위험한 상황을 바꾸려고 무엇인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경고의 메시지다.

외로움이 우리를 분발하게 만드는 반면 우울증은 우리 자신을 냉담하거나 무감각하게 만든다.

이를테면 의욕을 꺾어 놓는 것이다.

외로움과 우울증에도 자기조절 능력 감소라는 교집합이 있다.

물론 앤서니 스토 정신과 박사처럼

고독을 내적 위로, 치유, 영감과 회복의 한 방편으로 권장하는 이도 있다.

때문에 심리학에서는 외로움을 두 가지 종류로 구분한다.

즉 내가 타인을 필요로 함에도 불구하고 ‘거절당한 소외’라는 이름의 외로움과 타인이 나를 필요로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자발적인 자기 격리’의 고독으로 나누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겠다.

정말 사람들은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할까?

시카고 대학에서 이루어진 사회심리학 실험에서 한 집단에는 지하철에서 만난 옆 사람에게 다가가 말을 걸라고 지시했으나 다른 집단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참여자 대부분은 모르는 옆 사람과 말을 하지 않고 혼자 갈 때 더 기분이 좋을 거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실제 연구 결과는 정반대였다. 대부분의 참가자가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을 때 더 긍정적인 기분을 갖게 됐다.

혼자 있는 것은 그저 익숙한 것일 뿐 오히려 먼저 말을 걸어 잠깐이라도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더 큰 행복감이 따른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류는 수렵 시대부터 오랜 세월 공동체의 역사를 걸어왔다.

심지어 봉쇄 수도원의 수도사들조차 함께 명상하고 노동하고 같은 방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중세에 혼자만의 비밀은 죄악이었으며 남들에게 떨어져 자기만의 세계에 빠지는 것은 규칙에 위배되는 금기였다. 18세기에 이르러서야 자기 성찰과 반성의 한 방법으로 고독이 인정받기 시작했다. 고독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역사는 인간의 역사 중 그리 길지 않은 셈이다.

외로움은 전염된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교수 제임즈 포울러(James H. Fowler) 박사는 5124명을 대상으로 2년 내지 4년에 걸쳐 실험 대상자들의 친구관계 패턴을 추적한 결과 외로움은 전염된다는 내용을 밝혀냈다.

평균적으로 인간이 1년에 약 48일 외로움을 느끼는 데 비해 외로운 사람은 항상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외로운 사람의 경우 수년에 걸쳐 친구를 잃을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배구공이라도 친구 삼는 게 낫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캐스트 어웨이>는 인간의 무의식을 잘 드러내는 장면을 포함하고 있다. 특송업체 페덱스사의 직원으로서 언제나 시간에 맞추어 전 세계를 돌아다니던 남자 척 놀랜드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여자친구와의 데이트 대신 회사의 전용 비행기를 타고 일을 하러 고향을 떠난다. 그러나 태평양 상공을 날던 비행기는 무인도로 추락한다. 이후 척 놀랜드는 망망대해의 이 무인도에서 무려 4년간이나 로빈슨 크루소처럼 혼자 생활한다.

어느 날 척은 파도에 떠밀려온 비행기 운송물 쓰레기를 뒤지며 생필품을 구하던 과정에서 작은 배구공 하나를 발견한다. 그는 배구공에게 윌슨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는 공 표면에 자신의 핏방울로 눈과 코와 입을 그려 넣는다. 물체에 불과한 이 공에 심리적인 의미를 부여해 자신의 친구로 삼은 것이다.

이후 배구공 윌슨과 함께 외로운 무인도 생활을 이겨내는 와중 척은 용기를 내 무인도를 벗어나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작은 배를 만들어 광활한 바다로 나가던 과정에서 척은 그만 윌슨을 놓쳐버린다. 그때 척은 목놓아 울면서 “윌슨! 윌슨! 팔이 안 닿아. 제발 돌아와! 미안해 윌슨!”이라며 크게 슬퍼한다. 마치 진짜 인간 친구를 잃은 것처럼.

이 영화에 영감을 받은 미국 심리학자 니콜라스 에플리(Nicholas Epley)는

하버드 대학의 연구팀과 공동으로 배구공을 친구로 삼는 일이 외로움을 더는데 실제 효과가 있는지 확인하기로 했다.

외로움과 사물 의인화 경향과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몇 가지 실험을 한 것이다.

첫 번째 실험에서 심리학자들은 오랜 기간 동안 외로움을 느낀 사람들과 사회적 관계를 잘 맺는 사람들을 나누었다. 이 두 그룹 모두에게 몇 가지 기계 장치를 갖고 놀게 했다. 일례로 ‘클락키’라는 이름을 붙인 톱니바퀴가 달린 시계는 사람들이 알람을 끄려면 방안을 쫓아다녀야 했다. 그리고 ‘베개친구’라는 이름의 사람 몸통 모양의 베게는 스스로 사람을 껴안을 수 있도록 작동하게 했다.

이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각각의 기계장치로부터 “마음을 가지는가?” “자유의지를 행사하는가?” “감정을 표현하는가?”와 같은 사람의 특성들을 얼마나 느꼈는지에 대해 점수를 매겼다.

결과는 어땠을까? 예상했던 대로 고독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베개가 감정을 가지며 시계가 어떤 의도나 책략을 가진다’고 느꼈다. 연구팀은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은 배구공은 물론 애완동물이나 배구공과 같은 사물을 인간인양 취급하며 친구로 만들고 심지어 신과 같은 초자연적인 것을 더 잘 믿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사이버 고독은 사회성 부족 때문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인간의 본능을 ‘의인화(Anthropomorphism)’ 현상이라 부른다.

이에 따르면 과학자들이 인간을 닮은 로봇을 만들려고 끊임없이 시도하고 반려 동물이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인간의 마음에 외로움은 치명적일 수 있다. 행동과학자 니콜라스 에플리(Nicholas Epley) 박사는 “외로움이 담배를 피우는 것보다 실제로 질병과 수명에 더 치명적”이라면서 “나쁜 친구라도 없는 것보다 낫다”는 색다른 주장을 펼쳤다.

매일 같이 혼자 밥을 먹다 지친 사람은 집에 인형이라도 옆에 두면 훨씬 밥맛이 살아날 수 있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전 세계 12억 명이 사용하고 있는 소셜네트워크(SNS)는 인간의 외로움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미국 리서치센터 <더 퓨 인터넷>이 2011년 발간한 보고서 ‘소셜 네트워킹과 우리의 삶’에 따르면

SNS 사용자는 일반인들보다 더 핵심적인 친구를 많이 갖고 있었고

페이스북 사용자는 사회적 지원(감정적 지원, 동료의식, 도구적 지원)의 모든 면에서

비사용자에 비해 미국 평균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 제이넵 투펙치(Zeynep Tufeckci) 교수는

인터넷 시대에는 태어나서 얻게 되는 가족이나 이웃과 같은 귀속관계(ascribed ties)는 약해진다고 주장했다.

반면 서로 같은 공감이나 흥미를 갖는 사람들이나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상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성취 관계(achieved ties)가 더 늘어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결국 우리가 느끼는 사회적 고립감은

대가족의 붕괴, 교외 거주, 긴 통근 시간, 오랜 근무 시간, 커뮤니티나 시민 기관들의 감소 등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이지

온라인 사회성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사람이 소통학의 창시자 도미니크 볼통의

‘인터랙티브(interactive)한 고독’에 공감을 표하는 것일까?

볼통은 소셜미디어 기술 때문에 우리가 더 외로워졌다고 주장해 주목받았다.
볼통은 이러한 현상을 두고 ‘사이버 비사회성(Cyberasociality)’이라 불렀다.

우리가 글을 읽을 때 뇌에서 이를 언어로 변환해 생각하는 기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못하는 난독증 환자가 있듯이

사이버 공간에서의 사회성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온라인 사회성을 실제 생활에서의 사회성으로 잘 전환하는 이도 있지만 이런 기능이 부족한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온라인 사회성이 부족하면 온라인 활동을 아무리 해도 실제 사회성으로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앞에서 말한 면대 면 사회성의 부족함을 채울 수 없다는 게 볼통의 주장이다.

오늘날 홀로 사는 가구 비중이 25.3%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를 따라 다니는 긴 그림자인 외로움을 과연 극복할 수 있을까?

존 카치오포 시카고대 교수는 사회적 유대감을 갖는 간단한 방법으로 ‘EASE’라는 단어를 권유하고 있다.

 

 

“먼저 손 내밀 때 ‘인연’이 시작된다”


‘다른 사람에게 손 내밀기(Extend yourself)’는

“안전한 장소에서 작은 일부터 간소하게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다.

갑자기 천생연분을 찾겠다거나 오늘부터 새사람으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하기 보다는

주변 사람에게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라는 인사로 시작하는 편이 좋다.

‘구체적인 행동 계획(Action plan)’은 진로를 스스로 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자신의 처지, 능력을 인식하고 그에 걸맞은 일로 유대감을 추구해야 한다.

‘선택(Selection)’은 자신의 행동으로 예상되는 관계가 바람직한지 따져보는 것이다. 수줍어하고 몸을 움직이는데 자신이 없는 사람은 살사 동호회보다는 독서 클럽에 가는 편이 좋다.

‘최선을 기대하기(Expect the best)’는 최선을 기대하면 최선을 다하게 된다는 뜻이다.

주변 사람의 시선은 즉시 바뀌지 않지만

그렇다고 다시 두려움과 좌절에 빠지기보다는 사회성 기르기를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독한 사람의 내향성은 무관심, 혐오, 거절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고 있는 행위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

그리고 외로운 이들에게 때로는 먼저 손을 앞으로 내미는 것.

아무리 그래도 우리 인간이 배구공 윌슨보다야 더 나은 친구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심영섭 - 1966년생. 서강대 생명공학과 졸업. 고려대 심리학 석·박사.

현재 대구사이버대학교 전임교수, 심영섭아트테라피&상담센터 사이 소장, 한국사진치료학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영화, 내 영혼의 순례> <대한민국에서 여성평론가로 산다는 것> <영화치료의 이론과 실제> <영화치료를 위한 영화수첩>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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