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문화마다 성취나 결과를 지향하는지, 과정이나 관계를 지향하는지 차이가 있다. 결과 지향의 문화에서는 과정이나 방법보다는 목표나 성과에 무게를 더 둔다. 현대 경영 전략 중의 하나인 ‘목표에 의한 관리(Management by Objectives: MBO)’는 미국식 결과 지향의 문화 아이콘이다. MBO의 근간은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행동 계획을 구체적으로 수립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누구나 자신의 진도와 성과를 객관적으로 측정하게 된다.
결과 지향의 문화에서는 ‘향상하는데(making progress)’ 높은 가치를 두며
이러한 진척도를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위한 평가나 측정 도구에 민감하다. 이러한 측정에 대한 인식을 그들은 대단히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문화에서는 그렇지 않다. 특히 프랑스 사람들은 미국식 통계와 평가 도구를 신뢰하지 않는다. 단지 양(量)적인 평가 외에 사람이 사람에 대해 측정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반문한다.
“당신의 상사에 대해 만족하는가?” 혹은 “당신이 맡고 있는 일의 수행도를 평가 하시오” 등의 문항에 대해
‘아주 못하면 1’, ‘아주 잘하면 5’로 해서 5점 척도로 표시하라고 하면 이 도구가 과연 객관적이냐는 것이다. 이외에 생산성 향상을 위한 전사적 품질 경영인 TQM에서 6시그마 그리고 전 방위 인사고과인 ‘360도 평가’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의 그 어떤 평가 도구도 주관성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철저히 결과 지향의 미국은 업적과 성취 중심이기 때문에 인간적인 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대화 시 상대방을 위해 기다려주지 않으며 자신의 대화 목적에만 충실하게 된다. 사족 없이 바로 본론에 들어가고, 주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싫어하며, 시간당 일당을 생각하며 대화를 하고 비즈니스를 하게 된다.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에서의 효과적인 의사소통에는
‘단도직입적일 것(Be assertive)’과 같은 원칙이 빠지지 않는다.
자신의 의사를 빙빙 돌려 말하지 않고 ‘yes or no’를 시작으로 자신의 의사를 단정적으로 그리고 간략히 표현하는 ‘단도직입(assertiveness)’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주입되고 강화된다.
이들의 대화는 관계 형성보다는 정보 교환으로써의 의미가 더 깊다. 따라서 인간관계가 깊어질 수 없으며 쌍방간에 관계가 깊어지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반면 북미와 서구 유럽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들은 여전히 관계 지향적인 문화가 더 강하다. 이들은 목적의 달성보다 인간관계 형성에 더 중점을 둔다. 아무리 바빠도 사람을 먼저 만나게 되고, 사람을 만나 사전 조정을 하게 되며, 약속을 하지 않고 찾아가기도 하며, 회사 일과 가족 일을 동시에 보기도 한다.
이들 문화권에서는 독립적인 업무 자체의 시간보다는 관계 형성을 위한 시간을 더 필요로 한다. 따라서 관계 형성이 되기 전까지 일정 기간의 인내가 필요하다. 하지만 한번 관계가 형성되면 이전의 금전적, 물리적, 정신적 손실은 충분히 감가상각 되고도 남는 이점이 있다. 전통적인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자신들이 제공한 차를 받을 때 무례하게 왼손으로 받고, 가장 더러운 발바닥을 상대방을 향하게 하는 것이 관계를 단절시키는 데 한몫을 한다. 관계 지향의 문화에서는 인간관계가 최우선임으로 유대나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다 보면 반드시 실패를 맛보게 된다.
중국에서의 비즈니스 1장 1절은 ‘ 시(關系: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중국에서의 그 어떤 사업도 ‘ 시’ 없이는 성사되기 힘들다. 관계 형성을 위한 인맥과 연줄에 통달한 한국의 기업들조차 중국식 전 방위 ‘ 시’를 소홀히 여겨 사업상 곤혹을 겪는다.
사회주의 중국이 권위적이고 수직적이라 최종 의사 결정권자만 로비하면 만사형통일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중국식 ‘ 시’를 윗선 중심으로 전개하다가 중·말단 관료들의 비협조와 수수방관으로 중단된 비즈니스 사례는 허다하다.
전통과 명분의 중국이 권위와 공평의 사회주의와 실리와 기회의 자본주의와 양 깍지 끼면서
‘ 시’는 진화했다. 한국과 같이 윗선만 치면 일사천리로 일이 진척되는 일차원적인 수직 문화가 아니라 일개 말단 직원에게조차 고유한 권한을 부여해 그들과의 관계도 일일이 형성해야만 일이 진척되는, 그렇기 때문에 업무 효율이 떨어지긴 해도 거미줄과도 같은 복잡한 다단계 관계 망(網)을 형성했다.
아무리 고위직 이름을 팔아도 담당 말단 직원의 체면과 권위를 무시하면,
“메이 시(관계없습네다)!”라는 한마디로 그 사업을 덮게 된다. 너나 할 것 없이 다 ‘동지’로 통하던 문화혁명 당시의 살벌한 분위기가 이 한마디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농사를 생활의 근간으로 삼았던 한국은 철저히 과정 지향이고 관계 지향인 역사를 가졌으나
환란과 피지배의 과정을 지나오면서 전통적인 인간 중심의 사회를 잊기 시작했다.
한편 1960년대 이후 한국의 근대화 물결에 역류된
서구식 결과 지향의 사고와 인과응보의 제도가
한국 고유의 과정 지향이고 관계 지향의 문화들을 걷어내고 주인 행세를 하게 됐다.
불과 몇 십 년이 안돼 미국식 성취·결과 지향의 문화가 한국에 톡톡히 뿌리를 내린 데에는 한국 기업들의 공로(?)가 크다.
한국 기업들은 1990년대의 세계화 드라이브와 1990년대 말의 IMF를 거치면서, 생존을 기업 활동의 1순위로 두면서 기존의 관계 중심 기업 문화에서 철저히 결과 중심의 문화로 일탈했다. 동양 기업의 진수였던 기존의 암묵적 종신고용제를 버리고, 실리 위주의 표면적인 임시계약제로 돌아서면서 이전의 ‘OO가족’, ‘충성과 의리’ ‘All for One, One for All(전체를 위한 하나, 하나를 위한 전체)’ 운운하던 인간 본위의 구호들을 내려놓았다.
대신 철저히 성취 지향적이고, 결과 중심적인 미국식 기업 문화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런 한국 기업들의 무차별적인 미국화는 최근 한국 기업을 대표하는
모 그룹이 1990년대 한 물 건너 간, 한국 기업의 문화적 정서에는 걸맞지도 않는 100% 미국식 품질 개선 제도를 사업적 특성에 맞는 일부가 아니라 전사적인 차원에서 밀어붙이는 아이러니를 낳기도 한다.
이미 한국 기업들은 단기 업적과 결과 중심의 본산인 미국 기업의 비인간적인 수준을 훨씬 능가하게 됐다.
결과 지향 문화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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