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교환이 마음을 얻는 비결

시선 교환이 마음을 얻는 비결, 벼락같은 사랑은 상대의 큰 동공에서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사랑에 빠진 연인들에게 물어보면, 한결같이 ‘첫 만남의 인상’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첫인상이 안 좋았다가 나중에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첫눈에 반하진 않더라도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은 연인으로 발전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초두효과(primacy effect)로 설명한다. 우리가 무언가에 대해 판단할 때, 먼저 제시된 정보가 나중에 들어온 정보보다 더욱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어떤 사람에 대해 첫인상이 좋으면 나중에 다소 부정적인 행동을 하더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눈 맞출수록 높은 애정 지수

그렇다면 첫 만남에서 어떻게 상대방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첫눈에 상대를 반하게 만드는 강력한 무기가 사실은 우리 코 위에 있다. 사랑이 어디에서 오냐고? 사랑은 심장이나 생식기가 아니라 바로 눈에서 시작된다. 눈과 눈의 만남을 통해 사랑은 마음을 얻는다.

사람들 사이에서 정서관계가 만들어질 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시각기관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헤어질 때 “다음에 또 봐요”라고 인사하지, “다음에 또 냄새를 맡아요”라고 하지 않는다. 영국의 한 과학자가 몰래카메라를 이용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사람들은 대화를 하는 동안 평균 30%에서 60%에 해당하는 시간만 상대방을 쳐다본다. 그러나 첫 만남에서 사랑의 엔진을 힘차게 돌리려면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심리학자 자크 루빈은 말한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자크 루빈 교수는 미시간대학교 재학 시절부터 사랑을 측정하는 연구에 몰두했다. 무모할 정도로 낭만적이었던 이 젊은 연구자는 나중에 하버드대학교로 옮기면서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에 애정 정도를 측정하는, 이른바 ‘루빈의 저울’이라는 것을 최초로 만들었다. ‘낭만적 사랑의 측정’이라는 논문에서 그가 제안한 방법은 간단하다. 대화를 하는 동안 얼마나 오랫동안 서로의 눈을 쳐다보는가를 재보면, 사랑하는 정도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루빈 교수는 연인들을 모집해 그들의 애정 정도를 묻는 일련의 긴 설문을 했다. 대기실에는 몰래카메라를 설치해놓고 연인들이 설문을 하기 전 기다리는 동안 서로 대화를 하면서 얼마나 오랫동안 눈을 맞추고 있는지를 측정했더니, 오랫동안 눈을 쳐다보는 커플일수록 애정 설문에서 높은 수치가 나왔다. 상대방의 혈관에서 ‘사랑의 호르몬’ 페닐에틸아민이 솟구치길 원한다면, 대화 시간의 75% 이상 눈을 맞추라고 심리학자들은 권한다.

‘술은 입에서 오고 사랑은 눈에서 온다’고 예이츠는 자신의 시에서 노래했던가? 시인이 시를 쓴 지 100년이 지난 지금, 과학자들은 그것이 사실임을 과학으로 증명하고 있다. 1989년 미국의 심리학자 캘러먼과 루이스 박사는 생면부지의 남녀 48명을 큰 실험실에 들어오게 한 뒤 그중 한 그룹에게는 상대방의 눈을 2분 동안 보도록 지시하고, 다른 한 그룹에게는 특별한 지시를 하지 않았다. 이 연구에 따르면, 2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낯선 상대를 쳐다봐야만 했던 남녀는 ‘실험 후 서로에 대해 호감이 늘었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시선 교환이 왜 이처럼 뜨거운 결과를 가져오는 걸까? 인류학자 헬렌 피셔는 그것을 ‘인간의 원시적 본능’으로 설명한다. 즉 눈과 눈이 마주치면 인간의 두뇌 가운데 원시적인 영역이 자극을 받아 두 가지 기본 감정, 접근하느냐 후퇴하느냐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헬렌 피셔의 주장이 맞다면, 첫 만남에서 상대방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사냥감(?)과 거의 위협에 가까울 만큼 강렬한 눈빛을 교환하시라. 느끼해서 여자가 도망갈 것 같다고? 한번 해보시라. 의외로 반응 좋다.

 

이탈리아의 특별한 안약

그렇다면 빤히 쳐다보기만 해도 상대방이 내게 호감을 가질까?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에겐 상대방이 호감가는 상대인지, 충분히 믿을 만한지를 알아내는 신호가 따로 있다. 잘 드러나진 않지만 바로 ‘동공의 크기’다. 호감이 가는 상대방을 만나면 눈동자의 동공이 팽창된다. 강한 자극을 느꼈다는 얘기다. 반면 동공이 수축했다면 두 사람 사이에는 긴장이 풀렸다는 뜻이다.

여성들은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아기 사진을 보면 동공이 커진다. 그러나 남자들은 자식이 있는 경우에만 이같은 특징을 보인다. 따라서 싱글맘을 꼬이려는 선수들이 공원을 배회하다가 유모차에서 버둥대며 우는 아기를 보며 자지러지곤 하는 모습을 본다면(미국에선 종종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아기의 엄마를 어떻게 한번 꼬여볼까’ 하는 생각이 있다고 보면 된다.

영국에선 아주 재미있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점잖은 신사들에게 신인 여배우의 사진과 영국 화가 휘슬러가 그린 ‘어머니의 초상’을 보여주며 비교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신사들은 위엄 있는 노부인의 모습에 온갖 찬사를 쏟아냈지만, 막상 동공의 변화를 관찰해보니 이런 찬사가 무색할 정도로 신인 여배우 사진에서 동공이 훨씬 더 팽창했다.

‘동공의 팽창’이 나타내는 신호의 의미를 알아내기 위해 동공계측학(pupillometrics)라는 엽기적인 분야를 창시한 에크하르트 헤스 박사가 했던 독창적인 실험의 결과는 신기하기까지 하다. 똑같이 인쇄한 두 장의 매혹적인 젊은 영국 여성의 사진을 남자들에게 보여주되, 한쪽 사진만 연필로 눈동자가 좀더 커 보이도록 조작했다. ‘이 두 장의 여자 사진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냐’는 질문에, 남성들의 답변은 한결같이 동공이 크게 팽창된 여자의 사진이었다. 벼락같은 사랑은 평소보다 몇mm 늘어난 동공에서 시작된다. 섹시하면서도 도발적인 눈빛을 보내고 싶다면, 당신의 동공을 넓혀라.

그러나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냐고? 연필로 사진의 동공을 크게 그리듯 마음대로 조작할 순 없지만, 동공의 크기도 어느 정도는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이탈리아에선 르네상스 시절 이미 동공이 크면 더 섹시해 보인다는 사실을 알고 아가씨들이 동공을 확대하기 위해 특별한 안약을 넣었다. 당시엔 몰랐지만, 이 안약은 아트로핀 제제를 주성분으로 했는데, 아트로핀은 원래 동공을 키울 뿐만 아니라 심장박동을 가속화하고 입술을 바짝 마르게 하며 가볍게 손을 떨게 만들기도 한다. 한마디로 말해, 사랑에 빠졌을 때와 유사한 증상이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약의 이름도 의미심장하다.

벨라 도나(Bella Donna), 이탈리아어로 ‘아름다운 부인’이란 뜻이다.

 

명대사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좀 느끼하지만, 과학자들이 권하는 ‘눈빛으로 유혹하는 기술’은 끈적끈적한 눈빛을 보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화할 때 문장이 끝나거나 침묵이 흐르면 어색해서 잠시 시선을 딴 데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대화 사이사이 짧은 침묵이 이어지는 동안 상대방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말고 쳐다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방은 마치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짜릿함을 느낄 것이다.

소설에서 흔히 상대방에게 마음을 뺏겼을 때

‘그는 그 여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고 표현하지만,

눈을 떼지 않는다면 마음을 뺏기는 쪽은 상대방이라고 과학자들을 지적한다.

 

2차 세계대전 중 모로코를 무대로, 사랑하지만 서로를 위해 헤어져야만 했던 연인의 가슴 아픈 러브스토리를 그린 <카사블랑카>의 명대사를 기억하는가? 주인공 험프리 보가트가 한 손에 와인잔을 들고 잉그리드 버그먼을 응시하며 했던 한마디, “당신의 눈동자를 위해 건배”(Here’s looking at you, kid). 이 명대사가 얼마나 명번역인지, 과학자는 지난 30년간의 연구를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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