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사그마이스터

변화에 대한 두려움에 맞서라 “take it on”

 

 

1. 변화에 대한 두려움에 맞서라 – take it on

얼마 전 뉴욕 지하철에 SVA(School of Visual Arts)를 광고하는 새 포스터가 붙었다.

SVA의 교수이기도 한 스테판 사그마이스터(Stefan Sagmeister)의 작품이다. SVA는 지난 60여 년 동안 뉴욕 지하철에 학교 교수진이 만든 멋진 포스터를 사람들에게 선보여 왔다. 이번 포스터는 역시나 사그마이스터 답게 강렬한 시각적 충격을 준다. 문어를 머리에 얹은 남자 얼굴이 압권이다. 이 남자는 사그마이스터 자신이다. 부릅뜬 눈 사이로 문어 다리가 쏟아져 내려와 글자를 만들고 있다. 이마에 take, 오른쪽 뺨에 it, 왼쪽 빰에 on, 그리고 턱에 sva.

“take it on”은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맞서 싸울 것이고, 또 해낼 수 있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고 한다.

사그마이스터가 잡은 이번 포스터의 주제는 ‘변화’다. 이 세 사람의 얼굴에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에 맞서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 메시지가 그저 타이핑된 서체로 take it on이라 쓰여 있었다면, 인물의 표정에만 의지하는 평범한 포스터가 됐을 것이다. 문어발과 머리털, 그리고 피부를 박차고 나올 것 같은 블록 글자는 펄떡펄떡 뛰는 날 것의 메시지를 보여준다. 인물 내면의 의지를 이런 식으로도 표출할 수 있다! 그러니 얼굴 모델을 따로 쓸 필요도 없었다. 나머지 두 사람도 사그마이스터의 사업 파트너다. 머리털로 얼굴에 메시지를 얹은 여자는 2012년부터 동업을 시작한 제시카 월시(Jessica Walsh)다.

 

 

2. “Can Design Touch Someone’s Heart?”

“디자인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가?”가 사그마이스터가 SVA에서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주제이다. ‘좋은 디자인’이란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고 도움이 되는 디자인이라며 학생들에게 그렇게 디자인하라고 가르친다고 한다. 사그마이스터는 실질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디자인을 하고 싶어 한다. 사그마이스터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도록 디자인에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타이포그래피다. 사그마이스터는 디자인에 문자로 된 메시지를 즐겨 삽입한다. 문자는 대체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글자체다. 손작업과 그래픽 툴로 가공한 이미지로 전혀 새로운 타이포그래피를 창조한다. 때때로 마리안 반트예스(Marian Bantjes) 같은 뛰어난 타이포그래퍼와 작업하기도 한다. 아마도 전혀 새로운 타이포그래피의 가장 극단적인 예는 조수를 시켜 자신의 몸에 커터 칼로 글자를 새겨 만든 그래픽 디자인 협회(AIGA) 포스터일 것이다. 이 포스터는 디자이너의 고뇌를 표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기행에 가까운 작업 때문에 거부감을 표시하거나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많다. 이목을 끌기 위해 일부러 거칠고 난해한 작업을 시도한다는 의견에 대해 사그마이스터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대중의 이목을 끄는 것이 디자이너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거칠고 난해한 작업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내 디자인의 목적이다.”

(월간디자인, 2012년 11월호)

 

 

3. 크리에이티브의 원천은?

2012년 제시카 월시와 동업 계약을 맺고 ‘사그마이스터 & 월시’로 새롭게 스튜디오를 오픈하면서 두 사람은 누드로 나란히 선 채 찍은 사진을 사람들에게 보냈다. 오픈 소식을 알리는 이벤트였다(사그마이스터는 자신의 스튜디오를 처음 열었을 때도 누드 사진으로 스튜디오 오픈 사실을 알린 바 있다). 당연히 한동안 화제가 됐다. 나중에 여러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 말했는데 그 가운데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있다. 대략 기억을 떠올려 보면 ‘사람들이 두 사람의 누드 자체에 대한 반응보다는 자신의 포경 수술하지 않은 성기에 대해 뜨거운 반응을 보여서 놀랐다’는 사그마이스터의 농담 섞인 대답이었다. 금기 따위는 아무것도 없는 듯한 이런 태도가 어쩌면 사그마이스터가 가진 크리에이티브의 원천인지도 모르겠다.

 

* 스테판 사그마이스터는 1962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다. 비엔나 응용미술대학을 나왔고 프랫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다. 잡지 “컬러스(Colors)”를 만든 티보 칼맨의 스튜디오에서 일했고 1993년 자신의 스튜디오를 열었다. 루 리드, 롤링 스톤즈 등 뮤지션들의 앨범 재킷을 디자인했으며 토킹헤즈 데이비드 번, 브라이언 이노의 앨범 디자인과 아트 디렉팅으로 그래미상을 두 번 받았다. 2012년에 세종문화회관 전시관에서 ‘스테판 사그마이스터전’이 열렸고 한국에서도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서채홍

 

 

https://andwalsh.com

 

&Walsh

 

andwalsh.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