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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전시 서문이 어려운 이유

by dig it 2023.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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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전시 서문이 어려운 이유 : 현대미술 뉴스

종종 경멸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복잡하거나, 가식적인 미술 용어를 말하는 단어 'Artspeak' © Abbeville Press호기롭게 도착한 미술관에서 어려운 전시 서문에 머리가 하얘진 경험, 다들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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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경멸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복잡하거나, 가식적인 미술 용어를 말하는 단어 'Artspeak' © Abbeville Press

호기롭게 도착한 미술관에서 어려운 전시 서문에 머리가 하얘진 경험, 다들 있을 겁니다. 번역기를 돌린 듯 어려운 문장들의 향연.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쓴 글이 오히려 관객의 경험을 헤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죠. 오죽하면 이런 어려운 미술용어나 미술 텍스트를 비판하는 'Artspeak'이라는 단어가 나올 정도입니다. 

미술계도 이를 아주 잘 인지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여전히 어려운 미술 평론은 넘치고, 전시 서문은 친절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미술 관련 글은 모두 복잡하고 어렵게 쓰이는 걸까요? 



01 관객이 ‘을'이 될 수밖에 없는 감상 구조


크로스드레서이자 도예가, 그레이슨 페리 Grayson Perry  © The Telegraph


우선, 미술 장르의 감상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술은 다른 예술 장르와 달리, 전문가의 권위가 관객에게 크게 작용하는 분야예요. 음악이나 영화, 드라마 같은 다른 장르는 관객이 직접 적극적으로 찾아서 소비할 수 있지만, 미술은 그렇지 않습니다. 작품을 보려면 전시장에 가야 하고, 전시장에 있는 작품들은 전문가가 그들만의 관점으로 선별한 것이죠. 관객은 전문가의 큐레이션을 따라 작품을 소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작품 감상 환경을 소수의 전문가가 장악하게 되면, 장벽을 세우기가 매우 쉽습니다. 미술에서의 진입장벽은 전시 서문을 들 수 있어요. 번역기를 돌린 듯 어려운 말로 쓰여, 전시장 입장 전부터 관객을 위축시키죠. 예술 사조 등 전문용어에 대한 설명도 없습니다. 문장도 매우 깁니다. 작품을 보러 간 미술관에서 관객은 작품이 아닌, 전시 서문에 위축되는 경험부터 하게 되죠. 이에 대해 현대미술계 최고 권위 있는 상으로 꼽히는 터너상을 수상한 작가, 그레이슨 페리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02 진입장벽을 단단하게 만드는 ‘국제 예술 언어'


Untitled Art, Miami Beach, 2022 © Artsy


위의 전시 서문, 이해하셨나요? 한국어로 번역한 것을 감안하더라도, 매우 어렵습니다. 이런 내용을 한 번에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관객은 아주 소수일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전시회에는 어려운 서문이 쓰고 있죠. 어려운 전시 서문에 대한 분석도 나왔습니다. 사회학자 알릭스 룰 Alix Rule과 예술가 데이비드 리바인 David Levine의 전시 서문 연구죠. 그들은 서문에 사용된 어려운 표현을 ‘국제 예술 언어'라 아울러 명명하고,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국제 예술 언어가 어렵게 느껴지는 건, 불필요한 명사가 많기 때문이라 주장했죠. 일례로 ‘잠재적인'은 잠재성, ‘시각적인'은 시각성, ‘경험'은 ‘경험 가능성' 등으로 이야기하는 식입니다. 

한 문장 안에 명사 수가 많아지게 되면, 가독성이 떨어집니다. 문장이 명사 단위로 쪼개져 글을 읽는 속도도 느려지고요. 이윽고 독자들은 글 자체에 부담감을 느끼고 읽는 것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쓰인 글이, 오히려 독자가 이해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죠. 하지만 예술에 있어서는 이런 글이 사랑받고 있습니다. 어려운 글이 그 예술을 이해하는 진입장벽이 되어 주면, 예술을 이해하는 사람이 똑똑하고 있어 보이는 사람처럼 보이니까요. 국제 예술 언어는 곧, 본인들의 우월함과 권위를 잘 드러내 줄 수 있는 언어인 셈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언어를 통해 그들은 예술을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닌, 소수만 향유할 수 있는 고고한 것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오늘날에는 이 언어가 미술관의 전시뿐만 아니라 갤러리의 작가 소개, 미술 분야 논문, 교양서 등 다양한 분야에 고루 사용됩니다. 미술계는 모두 이 세계적인 엘리트 언어가 가진 힘을 인지했고, 이것이 그들만의 리그를 굳건히 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미술계 외부의 관객이 어렵게 느끼는 것은 아무래도 큰 상관이 없었습니다. 이런 어려운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미술계 내부 사람들은 그 권력을 더 굳건히 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관객은 당황스러움을 느낍니다. 미술이라는 분야가 주는 특유의 장벽감, 왠지 충분한 교육을 받아야지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부담감, 그리고 실제로 많은 교육을 거친 전문가들의 쓴 어려운 글.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황 속, 관객은 '표면적으로는 도움을 주기 위해 쓰였지만 실상은 진입장벽을 단단하게 만드는 글'을 보게 되는 것이죠. 

앞서 미술은 다른 예술과 달리, 감상할 때 전문가의 큐레이션을 거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언급했는데요. 미술계 소위 엘리트의 관점에서 리스트업 된 작품들. 그리고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서문을 읽는 순간, 내가 이해하지 못했다고 느끼게 되는 패배감은 관객으로 하여금 전시를 볼 자신감마저 앗아가 버리게 됩니다. 그렇게 미술은 계속 소수만이 향유하는 고고한 문화로 유지될 수 있었고요.

 

 

03 실제로 현대미술은 어려워졌다


마르셀 뒤샹과 그의 작품 <샘> © Wikipedia


어려운 미술 텍스트는 신규 관객의 진입을 막는 장벽 역할을 합니다. 덕분에 기존 관객은 자신들의 문화를 소수만 향유할 수 있는, 소위 '있어 보이는' 것으로 유지할 수 있죠. 마치 클래식과 오페라 공연처럼요. 하지만 클래식이나 오페라와는 달리, 실제로 현대미술은 그 자체로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 시작은 마르셀 뒤샹의 <샘 Fountain>이었습니다. 현대미술의 시작이라고도 불리는 작품이죠. <샘>을 계기로 뒤샹은 ‘개념미술'이라는 새로운 미술 사조를 만들어냈습니다. 개념미술이란, '새로운 개념을 형성하는 것'이 진정한 예술임을 주창하는 사조인데요. <샘>은 기존에 대량 생산되던 변기를 미술관에 가져다 두고, 서명을 새겨 마치 예술품인 것 같은 맥락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이를 ‘레디 메이드'라 불렀죠.

레디 메이드는 일상적인 기성 용품을 새로운 맥락으로 바라보며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개념인데요. 이 개념이 장르가 된 이후, 어떤 것이든 새로운 맥락을 넣으면 무엇이든 작품이 될 수 있는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그것이 조금이라도 미술적인 느낌이 있다면요. 물론 그 미술적 느낌이라는 것은 매우 주관적이어서, 전문가의 비평이 필요했습니다. 작품이 아닌 것을 작품으로 만들 당위성은 전문가의 신뢰도에서 만들어졌죠.

뒤샹의 <샘>이 등장한 1917년 이후, 평론가들의 관점과 비평이 중요해지고, 그들이 열과 성을 다해 설명하는 작품이 주목받게 됩니다. 개념이 독특하면 독특할수록, 평론가의 설명이 길어질수록, 사람들은 더욱 열광했죠. 이 과정에서 현대미술의 작품 구조는 점점 더 복잡해졌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아카데미즘의 권위를 잔뜩 뿜어내는 평론가들의 말은 일반 대중이 이해하기엔 어려웠습니다. 마치 전시 서문처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계는 이런 국제 예술 언어가 예민하고 복잡한 현대미술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는 아주 디테일한 표현이라 생각했죠. 1960년 이후 본격적으로 '국제 예술 언어'가 평론과 해설에 자주 사용되며, 대중은 미술과 조금씩 더 멀어지게 됩니다. 



04 대중적인 예술은 가능할까


Mitsuko Miwa, installation view of “Full House,” at SCAI THE BATHHOUSE, 2022. ©Mitsuko Miwa


예술은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합니다. 예술가가 인생 동안 경험하고, 사유하고, 느낀 바를 담아낸 것이 예술이기 때문이죠. 우리는 같은 시기를 살고 있는 예술가의 관점을 통해,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현대미술의 진입장벽이 높아진 상황에서, 예술은 아주 소수만을 위한 것이 되었습니다. 예술사학자 캐럴 던컨 Carol Duncan은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죠.

시장이 탄탄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소비자가 필요합니다. 금융상품을 비롯해 와인, 부동산 같은 전문영역을 살펴보면, 전문가가 정보를 독점하고 그 위에 군림하는 구조가 아닌, 많은 이들에게 쉽고 친절한 정보가 제공되었을 때 더 큰 성장세를 보였죠. 많은 사람들이 관련 정보를 무상으로 자유롭게 손에 넣고, 누구나 정보를 비교해 평가할 수 있게 되면서 시장 규모가 확장된 겁니다. 

때문에 미술도 대중화를 통해 그 시장성을 넓힐 필요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미술관에 용기 내 다가간 관객에게만큼이라도요. 현대미술이 어려워지게 된 시작점인 동시에, 누구보다 관객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마르셀 뒤샹의 말로 글을 마무리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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