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래리.앤디 워쇼스키 감독의 <매트릭스> 2

by dig it 2018. 10. 30.

래리.앤디 워쇼스키 감독의 <매트릭스> 1

래리.앤디 워쇼스키 감독의 <매트릭스> 2

글 l 김형석(영화 저널리스트)

세기말 영화의 어떤 경향

<매트릭스> 3부작엔 수많은 세계들이 등장한다. 먼저 기계에 의해 프로그램된 매트릭스의 세계(상단 왼쪽). 인간들이 만든 프로그램이며, 일종의 교육용 프로그램인 컨스트럭트의 세계(상단 오른쪽). 인간들의 도시이며 지구상에 유일하게 온기가 남아 있는 곳인 시온(중간단 왼쪽). 네오가 당도하는 기계들의 도시(중간단 오른쪽). 매트릭스와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지하철 역으로 설정된 중간계(하단 왼쪽). 트레인맨이 관장하며, 모빌(Mobil)이라는 역 이름은 림보(Limbo, 연옥)의 철자를 뒤섞은 것이다. <매트릭스 레볼루션>의 맨 마지막 장면을 장식하는 새로운 세계(하단 오른쪽).

1999년에 나온 <매트릭스> 그리고 2003년에 나온 <매트릭스 리로디드>(이하 <리로디드>)와 <매트릭스 레볼루션>(이하 <레볼루션>)을 모두 본 후에도 여전히 남는 건 "매트릭스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매트릭스>는 '매트릭스 vs 현실 세계'라는 철저한 이원론에 입각했지만, <리로디드>와 <래볼루션>이 이어지면서 스미스(휴고 위빙)는 복제를 시작하고, 오라클(글로리아 포스터)은 프로그램이었음이 밝혀지며, 아키텍트(헬무트 바카이티스)는 네오(키아누 리브스)가 '여섯 번째 매트릭스' 안에 있음을 이야기하고, 네오는 매트릭스와 시온과 기계 세계를 통합하는 길을 걷는다. 이 과정에서 어쩌면 현실 세계도 사실은 또 다른 매트릭스의 세계일지 모른다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마치 <13층>(1999)처럼, <매트릭스> 3부작도 여러 개의 가상 현실이 뒤섞인 다층적 세계이며, 오직 워쇼스키 형제라는 '절대자들'만이 그 세계를 내려다본다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일단 <매트릭스> 3부작의 세계관을 이해하려면, 하나의 선입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바로 인간이 기계(인공지능)보다 우위에 있다는 생각이다.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기계는, 생명이 있는 유기체는 아니지만 자율적이고 창조적이며, 인간이 자만하고 타락했을 때 인간에게 분노하는 존재다. <매트릭스> 3부작 DVD에 코멘터리를 맡았던 철학자 코넬 웨스트는 시온의 세계를 '육체'로, 매트릭스의 세계를 '정신'으로, 기계의 세계를 '영혼'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더 원'(the One) 즉 절대자이자 구원자인 네오는 세 세계를 통합함으로써 세상을 구원하고 평화를 가져온다. 하지만 여기서 그 '세상'이라는 것이 시온의 세계인지 새롭게 구현된 매트릭스인지 기계의 세계인지는 가늠하기 힘들다. 



컨스트럭트에서 훈련을 받던 네오는 가상 현실의 세계에서 입은 상처로 인해 현실 세계에서 피가 난다(왼쪽). 네오는 묻는다. "매트릭스에서 죽으면 여기서도 죽게 되나요?" 모피어스는 말한다. "육체는 정신이 없으면 살 수 없어. 정신이 육체를 진짜로 만들지." 가상현실과 현실이 이처럼 원인과 결과 관계로 묶여 있다면, 두 세계는 평등하게 존재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메타코텍스 사무실에서 네오가 상관에게 주의를 받는 장면에서, 유리창 청소부 역으로 원래 워쇼스키 형제가 카메오 출연을 할 예정이었다(안전 문제로 하지 못했다). 만약 출연했다면, 매트릭스의 전자 신호를 연상시키는 비누 거품은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또 하나의 매트릭스인 셈. 이것은 할리우드 영화의 관객들이 환상적인 공간에 사로잡혀 있음을 환기시키는 전략이기도 하며, 결국 이 영화가 감독이 창조한 매트릭스 세계의 일부라는 걸 드러내기도 한다.

'매트릭스' 세계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배경 지식을 원한다면, <애니 매트릭스>(2003)의 <두 번째 르네상스 1>과 <두 번째 르네상스 2> 에피소드를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워쇼스키 형제가 시나리오를 쓰고 마에다 마히로가 연출한 이 에피소드들은 <매트릭스>의 프리퀄과 같다. 


21세기에 인간들은 인공지능 로봇에게 노동을 맡기고 허영과 타락에 빠진다. 그들은 기계를 존중하지 않았고, 이때 기계가 인간을 공격하는 'B1-66ER 사건'이 일어난다. 죽고 싶지 않았다는 기계와 재산 파괴권을 내세우는 인간. 결국 B1-66ER 기종은 멸종되고, 저항했던 기계들은 추방당해 문명의 발상지인 티그리스강 유역에 자리를 잡는다. 


그들은 '제로-원'(Zero-One)이라는 국가를 만들고, 자신들의 인공지능을 스스로 끊임없이 발전시켜 경제 강국으로 부상한다. UN 가입을 요구하지만 거절당한 기계들. 기계와 인류 사이의 전쟁은 일어나고, 인류는 '다크 스톰'(Dark Storm) 작전을 통해 하늘을 봉쇄해 로봇들의 에너지원을 차단하려 하지만, 결국 승리는 기계의 몫이었다. 인간의 몸을 연구한 기계들은 인체가 무궁무진한 에너지원임을 알게 되고, 인간들에게 "너희들의 육체는 무의미한 껍데기다. 육신을 바치면 신세계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선포한다. 



<애니매트릭스>에서 설명하는 <매트릭스> 이전의 역사. 기계의 저항이 일어나고(상단 왼쪽), 결국 전쟁으로 확산되며(상단 오른쪽), 인류는 로봇의 에너지원을 차단하기 위해 하늘을 봉쇄하지만(하단 왼쪽), 결국 기계가 승리하고 지구엔 핵 겨울이 온다(하단 오른쪽)

위에서 기계들이 선포한 '신세계', 그것이 바로 매트릭스의 세계다. 인간들은 발전소에서 마치 농작물처럼 배양되며, 뇌에 접속된 바이오포트를 통해 신경 조직에 끊임없이 정보를 제공받고, 기계들이 필요로 하는 전기를 생산한다. 죽은 육체는 액화되어 산 육체에 양분으로 제공되고, 인류는 더 이상 자연적인 방식(섹스)으로 태어나진 않는다.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하려면, 가장 좋은 육체적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 법. 기계가 고안한 첫 매트릭스는 인간에게 가장 큰 만족감을 줄 거라고 예상되었던 이상적 환경이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그래서 매트릭스는 끝없이 갱신을 거듭했고, 네오가 살고 있는 여섯 번째 매트릭스는, 스미스에 의하면 "문명의 절정 상태"인 1999년의 지구가 배경이다. 


<매트릭스> 3부작은 여기서 시작하며, 이어지는 이야기는 여러분이 아는 그대로다. <매트릭스>에선 매트릭스에서 탈출한 네오가 자신이 절대자임을 서서히 자각하고, <리로디드>에선 네오와 (매트릭스의 설계자인) 아키텍트의 만남이 이뤄지며, <레볼루션>에선 기계의 도시에 간 네오가 스미스와 마지막 결투를 벌인 결과 세상을 구원한다.



이름과 의미들


<매트릭스>의 마지막 장면에서 네오는 수퍼맨처럼 공중으로 솟아오른다(왼쪽). 이것은 기독교적 승천의 이미지이기도 하며, 자신이 절대자임을 깨달은 네오가 화면 밖으로 튀어나와 매트릭스의 세계에 갇혀 있는 관객들을 '구원'시켜 주겠다는 뉘앙스이기도 하다. 한편 <레볼루션>에서 네오는 기계의 도시에서 매트릭스의 세계로 접속해 스미스와 대결을 펼친 후, 마치 십자가 위의 예수처럼 희생한다.

<매트릭스>는 신화적 모티프로 가득 찬 영화이며, 그리스 신화와 성서와 역사에서 가져 온 수많은 이름들이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먼저 네오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 성서의 예수를 연상시킨다. 네오(Neo)라는 이름은 절대자(One)의 애너그램(철자 바꾸기)이며,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세계의 영겁(Eon)으로 인도하는 안내자이다(그의 방 번호는 '101'. 0과 1로 이뤄지는 매트릭스의 세계를 상징하며, 동시에 그가 '더 원'(The One)임을 드러낸다). 


토머스 앤더슨(Thomas Anderson)이라는 네오의 실제 이름도 의미심장하다.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이었던 도마(Thomas)는 부활한 예수에 대해 의심했던 사람. 이것은 매트릭스의 세계를 벗어나기 전의 네오의 모습이기도 하다. 앤더슨(Anderson)은 '앤드류의 아들'이라는 뜻인데, 앤드류는 '사람'이라는 뜻인 안드레아스에서 온 것이다. 그렇다면 앤더슨은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 성서엔 예수가 스스로를 인자(人子), 즉 '사람의 아들'이라고 부른다('앤더슨'을 시카고에 있는 '앤더슨 컨설팅'(현재는 엑센추어)과 관련 짓는 사람도 있다. 이 회사는 체제 순응적인 컨설팅으로 유명하며, 이곳의 컨설턴트들은 흔히 '앤더슨 안드로이드'로 불리기도 했다). 



모피어스를 만나러 가기 위해 차를 기다리는 네오는 애덤스(Adams) 거리의 다리 밑에 있다(왼쪽). 예수는 성서에서 '두 번째 아담(Adam)'으로 표현되며, 이때 내리는 비는 세례(재탄생)의 의미이기도 하다. 네오가 초이에게 불법 프로그램을 넘겨주자 초이는 이렇게 말한다. "할렐루야! 넌 나의 구세주야! 나만의 예수 그리스도!"

트리니티(Trinity)라는 이름은, 성서에 직접적으로 등장하진 않지만 기독교 교리의 핵심인 '삼위일체'를 의미한다(그녀가 전화를 받는 방 번호는 '303'. 삼위일체를 상징하며, <매트릭스>의 후반부에 네오는 이 방에서 부활한다. 예수가 '3'일만에 부활했듯이). 이것은 시온과 매트릭스와 기계의 세계는 어떤 깨달음에 의해 하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편 '삼위일체'는 중성적 존재라고 할 수 있는데, 그로 인해 트리니티(케이트 앤 모스)의 캐릭터는 좀 더 오묘하게 변한다. 꼼꼼히 살펴보면 트리니티와 네오는 한 몸과도 같다는 인상을 준다. 그들은 외모상 유사성을 지니며, 종종 트리니티는 성 역할을 바꾼 행동을 하고(마치 '백마 탄 왕자'처럼, 네오를 키스로 되살리는 트리니티), 트리니티를 처음 만났을 때 네오는 "남자인 줄 알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네오와 트리니티가 한 몸이라는 암시는 3부작 내내 등장하는데, 매트릭스 세계에서 그들은 액션 파트너로서 서로에게 생명을 의지하고, 시온에선 몸을 섞으며, 기계의 도시까지 가는 길에선 동행자가 된다. 



토머스, 즉 '도마'는 '쌍둥이'라는 의미로 네오와 트리니티의 관계가 단순한 연인 관계가 아니라 생명으로 연결된 하나의 존재임을 드러낸다(왼쪽). 입맞춤으로 네오를 부활시킨 트리니티는 말한다(오른쪽). "오라클은 말했어. 내가 사랑에 빠질 거라고.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바로 '그'일 거라고. 그러니까 너는 죽을 수 없어. 알아? 죽을 수 없어.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모피어스(로렌스 피쉬번)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꿈의 신' 모르페우스에서 온 이름. 그는 네오가 절대자라고 확신하는, 신약 성서의 세례 요한과도 같은 인물이지만, 네오가 물리적인 힘을 통해 매트릭스와 기계의 세계를 파괴하고 인류를 구원할 거라고 생각한다. 시리즈의 1편에서 가장 문제적인 인물인 사이퍼(Cypher. 조 판톨리아노)는 '비밀스러운 메시지' '아라비아 숫자 0에 대한 옛날 표현'이다(악마를 의미하는 '루시퍼'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는 스미스와 비밀스럽게 만나며, 성서에서 예수를 팔아넘기는 가롯 유다처럼 배신한다. 그리고 성서는 유다를 "태어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자", 즉 '0'과 같은 존재로 표현한다. 


네부카드네자르의 선원들이 지닌 이름도 각기 의미를 지닌다. 스위치(Switch. 벨린다 맥클로리)는, 디지털 신호가 0과 1 사이에서 선택하는 일련의 스위치라는 걸 드러낸다. 에이팍(Apoc. 줄리언 어렝어)은 '묵시록'(Apocalypse)에서 온 이름으로, 디스토피아적 지구를 의미한다. 도저(Dozer. 앤서니 레이 파커)와 탱크(Tank. 마커스 총) 형제는 매트릭스에서 탈출한 자가 아니라 시온에서 태어난 사람들인데(그들의 몸엔 바이오포트가 없다), 불도저와 탱크라는 아날로그적인 느낌을 환기시킨다. 그리스 신화에서 온 오라클(Oracle)은 예언자인데, <매트릭스> 3부작에선 예언이 실현되도록 네오를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인간들의 지하 도시인 시온(Zion)은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단어다. 



<매트릭스> 시리즈는 직접적인 방식으로 성서를 인용한다. <매트릭스>의 네부카드네자르는 2069년 미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MARK III No.11'이라는 레이블이 붙어 있다(왼쪽 사진). 이것은 마가복은 3장 11절인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개역개정판)를 의미하며, '하나님의 아들' 즉 '예수'는 네오와 연결된다. <리로디드>에 등장하는 스미스의 차 번호는 'IS 5416' 즉 이사야 54장 16절을 의미한다. "보라 숯불을 불어서 자기가 쓸 만한 연장을 제조하는 장인도 내가 창조하였고 파괴하며 진멸하는 자도 내가 창조하였은즉."(개역개정판) 여기서 '장인'은 바로 '스미스'(Smith)를 번역한 것이다.

<리로디드>와 <레볼루션>에 나오는 메로빈지언(Merovingian. 람베르 윌슨)은 미스터리의 캐릭터다. 서기 481~751년의 기간에 존재했던 메로빙거 왕조에서 온 메로빈지언이라는 이름(오라클에 의하면 "프랑스인은 가장 오래되고 원시적인 프로그램"이다). 매트릭스 안에서 더 이상 필요 없는 프로그램은 폐기되어 소스(기계의 도시에 있는 메인프레임 컴퓨터 센터)로 귀환해야 하는데, 메로빈지언은 귀환하지 않고 매트릭스 안에 거주하면서 자신의 세력을 키워온 프로그램이다. 


마치 범죄 조직의 보스처럼 묘사되지만, 오라클은 메로빈지언을 "우리들 중 가장 오래된 자 중 한 명"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메로빈지언이 과거(첫 번째 매트릭스에서 다섯 번째 매트릭스 사이)에 오라클과 같은 역할을 했던 존재였음을 드러낸다. 이것은 세라프(Seraph. 콜린 추)의 존재에 의해서도 증명된다. 세라프는 구품 천사들 중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치품 천사'를 의미하는데, 그는 한때는 메로빈지언의 수하에 있었으나 이후 오라클에게 갔다. 세라프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지키는 자"로 묘사되는데, 그가 오라클에게 갔다는 것은 메로빈지언이 오라클에 의해 대체되었다는 걸 의미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과거 매트릭스의 네오 같은 존재였을 수도 있다는 해석이다.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후손들이 메로빙거 왕조를 세웠다는 전설은 여기서 작은 힌트인데, 메로빈지언도 네오처럼 한때 구세주(예수)와도 같은 존재였고, 네오처럼 아키텍트 앞에서 선택의 갈림길(소스로의 귀환 vs 여자를 구함)에 섰으며, 그는 소스로 귀환하는 걸 선택했고, 지금은 매트릭스 안의 권력자로 군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내인 페르세포네(모니카 벨루치)는 한때 트리니티 같은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아키텍트에게 가는 열쇠를 가진 키메이커(상단 왼쪽)와 중간계를 관장하는 트레인맨(상단 오른쪽). 그들은 모두 메로빈지언의 장악력 아래 있다. 여기서 키메이커는 페르세포네의 배신(?)에 의해 네오와 만나, 그를 아키텍트에게 인도하고 죽는다. <리로디드>에서 갈림길에 선 네오(하단). 왼쪽은 인류를 멸망시키면서 트리니티를 구하러 가는 문이고, 오른쪽은 소스로 가서 인류를 구원하는 문이다. 어쩌면 메로빈지언도 이러한 갈림길에 섰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메로빈지언은 소스로 귀환하려 했었을 것이고, 네오는 트리니티를 구하는 쪽을 택한다.

매트릭스의 설계자인 아키텍트(Architect)는 정확한 수학적 방법으로 매트릭스를 만들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인간에게 내재된 불완전성 때문이다. 그래서 (인과론을 신봉하는 메로빈지언 대신) 직관력이 있는 프로그램인 오라클을 선택했고, 아카텍트가 매트릭스의 아버지라면 오라클은 매트릭스의 어머니 같은 존재가 된다. 아키텍트는 네오를 "매트릭스의 불균형적인 방정식의 나머지의 합집합"이며 "수학적 조화인 매트릭스에서 없애지 못한 우발적 변종"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예상 범위를 벗어나진 않았기에 네오는 아키텍트에게 오게 된 것이다. 


아키텍트는 여섯 번째 네오에게 '사랑'이라는 요소를 집어넣는 실험을 했다. 선택의 갈림길에 선 네오에게 아키텍트는 "소스로 복귀해서 네가 가진 코드를 전달하고 초기 프로그램을 입력한 후, 시온을 재건설할 여자 16명 남자 7명을 매트릭스에서 뽑으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스템 충돌이 일어나 매트릭스의 모든 인간이 죽게 되고, 시온의 멸망과 함께 인류 전체가 종말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네오는 인류 구원을 포기하고, 트리니티를 구하기 위해 달려간다. 


<매트릭스>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캐릭터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다. 라틴어로 '기계의 신'을 의미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극작술에서 '초자연적인 힘을 통해 극의 긴박한 국면을 해결하고 결말로 이끄는 수법'을 의미한다. <레볼루션>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네오가 기계 도시에서 궁극적으로 대면하는 존재인데, 그것은 수많은 작은 기계들을 통해 이루어진 인간 얼굴의 형상이다. 스미스가 매트릭스와 기계 도시를 모두 파괴하려 한다며, 네오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협상을 한다. 



네오의 궁극적 도달점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왼쪽). 재부팅된 매트릭스의 세계에서 오라클과 함께 있는 사티(오른쪽). 힌두교에서 사티는 '재창조의 신'인데, <레볼루션>의 마지막 장면에서 사티는 아름다운 일몰을 창조한다. 어쩌면 이 소녀는 새로운 네오일지도 모른다.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의 명언으로 알려져 있지만, "너 자신을 알라"는 원래 그리스 델피 신전 입구에 써 있던 말. 그리스어로 'Gnothi Seauton'이지만 영화에선 라틴어인 'Cemet Nosce'로 표기되어 있다(왼쪽). <매트릭스>는 수많은 철학자들의 영감을 자극했다. 철학자이자 저술가인 코넬 웨스트는 저명한 '<매트릭스> 권위자'로서, DVD 코멘터리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시온의 의원들 중 한 명으로 출연하기도 한다.

10년 전 <매트릭스>가 나왔을 때, 아마도 가장 열광한 사람은 철학자들일 것이다. <블레이드 러너>(1982) 이후 <매트릭스>만큼 철학적 조명을 받은 영화는 없었으며, 전자에 대한 철학적 조명이 포스트모더니즘에 집중되었다면 <매트릭스>는 고등학교 철학 교과서로 써도 좋을 만큼, 소크라테스부터 장 보드리야르까지, 데카르트와 칸트와 실존주의와 마르크시즘 등을 아우르며, 거대한 철학적 담론을 형성한다(한국엔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우리는 매트릭스 안에 살고 있나>라는 두 권의 책이 번역되어 있고, 국내 철학자들의 논문을 모은 <철학으로 매트릭스 읽기>도 나와 있다. 세 권의 책은 이 글을 쓰는 데 중요한 참고서였음을 밝힌다). 


<아메리칸 시네마토그래피>와의 인터뷰 워쇼스키 형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중요한 목적은 지적인 액션 영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우리는 액션, 총, 쿵푸를 좋아한다. 하지만 아무런 지적 내용이 없는,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액션 영화들은 지겹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영화에 할 수 있는 한 많은 사상들을 집어넣기로 했다." 


일천한 철학적 지식의 백화점식 나열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매트릭스>가 관객들에게 수많은 질문들을 던지는 건 사실이다. 우리는 우리의 지식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자신의 경험을 초월하는 세계는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 인간의 의식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왜 주관을 가지고 있나. 정신과 육체는 어떤 관계인가. 자유 의지란 무엇이며 인과 법칙이란 무엇인가. 옳고 그른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알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희망해야 하나. 그리고, '현실'은 무엇인가. 여기서 워쇼스키 형제는 어떤 해석을 내린다기보다는 다양한 해석의 여유를 제공한다. '매트릭스'라는 상징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관객들마다 모두 다른 것이다. 



발전소의 건전지 같았던 자신의 육체와 현실에 대한 자각(상단). 이후 네오는 매트릭스 세계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정신적 자각을 겪으며(하단 왼쪽), <레볼루션>에 오면 육체적 시력을 상실한 상태에서도 기계 도시의 빛을 볼 수 있는 영적 단계로 나아간다(하단 오른쪽).

다행히 감독들은 이 영화의 곳곳에 힌트를 숨겨 놓았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오라클의 집에 걸려 있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문구다. 이것은 <매트릭스>의 중요한 테마 중 하나인 '자각'의 모티브를 떠올리게 하며 끊임없는 질문과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살아갔던 소크라테스의 삶과도 연결된다. 신성 모독과 젊은이를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세상을 떠나야 했던 소크라테스는, 밤에 해커로 활동하며 세상에 대한 의심을 해결하려 했던 네오의 모습과 겹친다. 그들이 추구했던 것은 같다. 바로 '지혜에 대한 갈구'.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을 진실에 눈 뜨게 하려 했다. 


이것은 권위에 이의를 제기하고 의혹을 품는 행동으로 나타나는데, 네오에게 이것은 단계별로 나타난다. 거대 기업 조직의 부속품으로 살아가는 네오는 해커 활동을 통해 사회에 도전하고, 모피어스와 트리니티를 만나면서 자신이 현실이라고 믿었던 것이 깨지는 과정을 겪으며, 오라클을 만났을 땐 자신이 구세주인지 아닌지에 대해 스스로 묻게 된다. <매트릭스> 3부작은 네오의 끊임없는 자문자답과 선택의 과정인 셈이다. 


이것은 플라톤의 '동굴의 우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동굴 벽 안의 그림자가 현실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중 한 명이 동굴 밖으로 나와 태양 빛을 마주하며 진정한 현실을 깨닫는다. 그는 동굴로 돌아가 사람들에게 자신이 경험한 현실을 이야기해주지만,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한다.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는 네오를 동굴에서 끌어내 현실(매트릭스의 세계보다 훨씬 더 암울하긴 하지만)을 보게 한다. 이것은 감각이 아닌 지성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도록 만드는 과정인데, 발전소의 누에고치 같은 '동굴'에서 깨어난 네오의 자각 과정은 고통스럽다. 네오는 모피어스에게 말한다. "눈이 왜 이렇게 아픈 거죠?" 모피어스는 대답한다.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으니까." 



빨간 알약과 파란 알약(왼쪽). 네오가 대면한 선택은, 관객들에게도 유효한 것이다. 매트릭스의 세계를 인정하며 살아갈 것인가, 진짜 현실을 위해 눈을 뜰 것인가. 네오는 빨간 알약을 선택했고, 태어나 처음으로 눈을 뜬다(오른쪽). <매트릭스>에서 트리니티가 네오에게 (모니터를 통해) 처음으로 건넨 말이 "깨어나라, 네오"(Wake up, Neo)라는 사실과, 엔딩 크레디트에 흐르는 음악이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기계에 대한 저항! <매트릭스>에 이만큼 어울리는 이름의 뮤지션이 또 있을까?)의 'Wake Up'(깨어나라)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여기서 이야기를 좀 더 확장하자면 데카르트가 이야기했던 '악령의 기만'을 언급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데카르트는 가장 확실하고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진리를 찾기 위해 고민했다. 그는 <성찰록>에서 이렇게 말한다. ""꿈속에서 당신은 자신이 의자에 앉아 책을 보고 있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당신은 침대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여기서 데카르트는 "최고의 힘과 꾀를 가진 악령이 나를 속이기 위해 그의 모든 힘을 쏟아 붓고 있다고 가정해보라"는, 이른바 '악령의 기만'을 이야기한다. 


데카르트의 생각은 <매트릭스>에서 이렇게 변주될 수 있다. 만일 모든 것이 기계에 의해 날조된 것이라면,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과 지금까지 경험했던 모든 것, 심지어 우리가 기본적인 논리적 진리라고 여기는 것조차도 날조된 것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꿈의 신'인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가 꿈과 현실의 차이를 알 수 있을까?" 그 전에 네오는 자신에게 불법 프로그램을 사러 온 초이(마크 에이든)에게 이렇게 말한다, "깨어 있는 건지 꿈 속인지 혼동되는 느낌, 느껴 본 적 있어?"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매트릭스를 이렇게 설명한다. "매트릭스는 진실을 보지 못하도록 자네의 눈을 가리는 세계야. 자네가 노예라는 진실 말이야. 네오, 자네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냄새를 맡거나 맛을 보거나 만져 볼 수 없는 감옥에서 태어난 거야. 자네 마음의 감옥 말이야." 



사이퍼는 말한다. "나는 이 스테이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 내가 이것을 입 속에 넣으면 매트릭스가 뇌에 이렇게 말하는 거지. 아주 부드럽고 맛있다고." 하지만 그는 감각의 세계를 선택한다(왼쪽). 스테이크 장면에 바로 이어지는 함선 안에서의 식사 장면. 마우스는 이런 문제 제기를 한다. "이 물질을 생산하는 기계들은 테이스티 휘트가 어떤 맛인지 어떻게 알았을까? 우리가 실제로 테이스트 휘트를 먹어 본 적이 없고, 그러므로 다른 어떤 맛과 비교한다는 것도 불가능할 텐데, 우리는 어떻게 이것이 테이스티 휘트의 맛이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

여기서 사이퍼는 작은 화두를 던진다. 그는 "무지가 바로 행복"이라고 말한다. 그는 빨간 알약을 삼킨 것을 후회하며, 결국은 스미스와 만나 스테이크를 먹으면서 매트릭스에서의 배우 같은 삶을 보장받고, 동료들을 배신한다. 하지만 그를 비난할 수는 없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감각적 쾌락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배부른 돼지가 될 것인가 배고픈 인간이 될 것인가.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인간을 선택하겠지만, 현실에선 배부른 돼지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많다. 사이퍼는 빨간 알약을 통해 현실을 깨달았지만, 9년 동안 현실에서 살아온 결과 매트릭스의 세계가 더 진짜 같으며 살 만한 세상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마우스(맷 도랜)가 컨스트럭트 안에 만들어 넣은 '붉은 옷을 입은 여자'(피오나 존슨)에서도 잘 나타난다. 도저가 필수 영양분이 든 죽을 이야기하며 "이 안에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이 들어 있지"라고 말하자, 마우스는 "아니야. 그 안에 모든 게 들어 있진 않아"라며 네오에게 자신이 프로그래밍 한 '붉은 옷을 입은 여자'를 사적으로 만나게 해주겠다고 말한다. 그는 말한다. "위선 떨 필요 없어, 네오. 욕망을 거부하는 건,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거부하는 거야." 가장 원초적 욕망인 식욕과 성욕. 거짓된 방식이지만 그것이 충족될 수 있는 매트릭스의 세계. 이것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인 것이다. 



컨스트럭트 속의 '붉은 옷은 입은 여자'(왼쪽). 그런데 마우스는 매트릭스 속에서, 자신이 프로그래밍 했던 그 여자의 사진을 본다(오른쪽). 디노 펠러거라는 학자는 '붉은 옷을 입은 여자'가, 인간이 매트릭스 바깥에 있든 안에 있든 상관없이 필요한 환상과 욕망의 대상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 두 세계 모두에 그 여자가 등장한다는 사실은 몇 가지 비참한 가능성을 암시한다고 말한다. 첫 번째, 마우스는 자신이 매트릭스 안에 있었을 때의 기억에 의해 그 여자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해방된 개인의 고유한 환상조차 가상 현실에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두 번째, 매트릭스는 마우스의 은밀한 환상까지도 알아낼 수 있다. 그리고 세 번째, 이것은 가장 절망적인 상황일 수도 있는데, 현실과 매트릭스 사이엔 사실상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이다. 두 세계 모두 가상 현실이며, 그러기에 그 여자는 두 세계 모두 등장하는 것이다.


현실의 사막


네오가 불법 프로그램의 은신처 겸 금고로 사용하는 <시뮬라시옹>(왼쪽). 실제로 <시뮬라시옹>은 이 책처럼 두껍진 않다.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에 접속된 인간은 현실을 오로지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참조했던 현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매트릭스>의 마지막에서 네오는 자신이 절대자임을 자각하고 시스템 오류를 일으킨다. 이것은 금방이라도 붕괴할 것 같은 현재의 문화에 대한 은유이며, 시뮬라시옹된 세상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읽을 수도 있다.

<매트릭스>가 던져 주는 또 하나의 철학적 힌트는 네오가 불법 프로그램을 숨겨 놓는 책이다. 한국엔 <시뮬라시옹>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는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 워쇼스키 형제는 <매트릭스>의 세계관을 만들어나갈 때 이 책의 도움을 크게 받았으며, 그 고마움(?)의 표시로 영화에 직접 출연(!)시켰고, 삭제 장면 중엔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이렇게 말하는 장면마저 있다. "네오, 너는 꿈 같은 세상 속에서 살아온 거야. 보드리야르의 말처럼, 너의 인생은 영토가 아니라 지도 안에 있었던 거지." 이것은 <시뮬라시옹>에서 보드리야르가 인용했던 보르헤스의 우화, 정밀한 지도를 만들다 보니 지도가 영토를 모두 뒤덮어 버렸다는 바로 그 우화와 직결된다. <시뮬라시옹>에선 이렇게 말한다. "영토는 더 이상 지도보다 먼저 존재하지도 않고 지도가 소멸한 후에 계속 남아 있지도 않는다. 지도가 영토보다 먼저 존재하는 셈이고, 지도가 영토를 만들어낸다. (중략) 오늘날에는 영토의 찢긴 조각들이 지도 위에서 서서히 썩어가고 있다. (중략) 현실 그 자체의 사막인 것이다." 


시뮬라시옹에 대한 보드리야르의 이론을 아주 간단히 요약하면, 이미지와 현실의 관계는 4단계를 거친다. 먼저 이미지는 현실을 반영한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관계다. 그 다음 단계에선 이미지가 현실을 감춘다. 3단계에선 이미지가 현실의 부재를 감춘다. 4단계에선 이미지와 현실은 아무 관계가 없다. 여기서 현실과 무관하고 원본도 없는 리얼리티가 만들어진다. 매트릭스의 세계는 바로 시뮬라시옹의 네 번째 단계이다. 2199년에 만들어진 1999년의 현실이며, 이것은 고치 속의 인간들에게 현실로 강요된다. 



컴퓨터 프로그램인 컨스트럭트 속에서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말한다(왼쪽). "믿기 힘들겠지? 네 옷도 바뀌었고, 네 몸에 있는 플러그들도 사라졌으니까. 우린 이것을 자기 잉여 이미지라고 부르지. 디지털 자아의 정신적 투영물인 셈이야." 그리고 모니터를 통해 네오에게 '현실의 사막'을 보여준다.

보드리야르의 이론적 토대는 미국이었다. 그는 미국인들이 잃어버린 현실의 감각을 재구성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봤다. 소비의 천국인 교외 지역의 삶을 동경하는 미국인들은, 어쩌면 그러기에 자신들의 삶이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즉 자신들이 매트릭스의 세계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편집증적 환상에 잠식되는지도 모른다. 할리우드에서 <트루먼 쇼>(1998) 같은 음모이론적인 영화가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건 그런 이유다. 여기서 슬라보예 지젝 같은 학자는 <매트릭스>가 미래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세기말 자본주의를 겪고 있는 미국에 대한 영화라고 본다. "우리 모두가 주변에서 보고 겪는 물질적 현실성은 가상적이다. 우리 모두를 사로잡고 있는 거대한 컴퓨터에 의해 만들어지고 조장된 것이다." 


매트릭스는 일종의 이데올로기다. 이데올로기는 자신만의 언어로 '현실 그 자체'를 만들어 버린다. 그런데 여기서 현실은 이데올로기가 매끄럽게 작용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는 동안 내내 느껴 왔겠지. 세상이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걸. 뭔지는 몰라도 그것이, 네 마음속의 파편처럼 괴롭고 미치게 만들었겠지." 


하지만 워쇼스키 형제는 비관론적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가들과 결별한다. 보드리야르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은 현실이 이데올로기를 벗어날 수 없다는 쪽에 힘을 싣는다. 하지만 워쇼스키 형제는 '마음속의 파편'이 매트릭스라는 이데올로기를 벗어나게 만든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앤드류 고든 같은 이론가는 <매트릭스>가 보드리야르의 이론을 지나치게 단순화했다고 비난했다. <시뮬라시옹>을 인용하긴 했지만, 워쇼스키 형제의 세계관은 19세기 낭만주의의 "거짓된 환상의 세계를 걷어낼 수 있다면 현실 속에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비난은 <리로디드>와 <레볼루션>에 이르면 그 효력을 상실한다. 네오는 어느새 가상현실과 현실과 기계의 세계를 아우르는 통합자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네오가 거울을 통해 매트릭스의 세계에서 현실로 빠져 나오는 장면에 대해선, 많은 이론가들이 자크 라캉의 '거울 단계'를 떠올렸다. 네오는 매트릭스라는 '상징계'를 지나, 자신의 이상적 이미지를 발견하는 '거울 단계'를 거쳐, '현실계'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것은 정신분석학이 이야기하는 '퇴행'의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반응형

'검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꼬막 고르는 법, 삶는 법, 까는 법  (0) 2018.11.14
웃음 영어표현  (0) 2018.11.09
래리.앤디 워쇼스키 감독의 <매트릭스> 1  (0) 2018.10.30
페이스북 3D사진  (0) 2018.10.25
종이컵 용량 온스 Oz ml  (0) 2018.10.07

댓글

최신글 전체

이미지
제목
글쓴이
등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