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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재처럼 살아요 - 이효재

by dig it 2020. 5. 10.

우리가 말로 남을 기죽이지 않으면 그 자체가 지구 평화다. '왜 그랬는데?'가 아니라 '그랬니? 어머, 잘했다' 진심으로 말해주는 것. (p25)

세상의 잣대로 보면 나는 애 못 낳아, 남편은 집 나가, 일 많이 해 골병들어, 팔자가 세도 너무 세다. 그러나 나는 거꾸로 생각한다. 남편 집에 없고 아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시간으로 나는 나를 충분히 산다. (p38)

친구 아들에게 만 원을 준다. 그리고 "누나한테는 네 마음대로 나눠줘"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 아이가 하루종일 누나를 괴롭힌단다. 사천 원 준댔다, 삼천 원 준댔다, 종일 그렇게 돈으로 협박을 하다가, 밤에 잘 때 오천 원을 준단다. 나는 부러 아이한테 '시험'을 선물한다. 시험에 빠졌다 선 사람은 다음에는 흔들리지 않는다. 원래부터 서 있는 사람은 없다. 비틀거리다가 바로 선다. 나는 그 경험을 아이에게 미리 선물한다.(p68)

어느 스님이 내게 물으셨다. 효재는 사람들한테 어떻게 그리 잘 하냐고. 내가 싫은 짓 남한테 안 하고 내가 좋은 걸 남한테 한다. 물건 하나에도 언어가 있어서, 작은 선물 하나 건넬 때에도 신경을 쓴다. (p73)

마음을 손으로 뜨고 보자기로 싸고. 늘 그랬다. 마음을 싸서 주는, 그게 내 일상이다. (p84)

나의 선물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생일, 기념일, 밸런타인데이 같은 때가 아니라, 일생을 두고 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그게 선물인 걸 모른다. 세월이 흘러 흘러 알겠지. ... 나는 기념일을 챙기지 않는다. 안부 전화도 하지 않는다. 서로를 느끼는 건 전화기를 붙들고 있을 때가 아니라 각각 혼자 있을 때이다. 친구가 나를 느끼고 내가 친구를 느끼는 빈 시간을 선물하는 것. 안부 전화 안 하고 기념일 안 챙기지만, 챙기지 않아 남는 그 시간이 얼마나 큰 선물인지 알게 되는 건 세월이겠지. (p88)

산속에 사는 사람에겐 비는 내리는 것이 아니라 걸어오는 것이다. 비가 오기 전 흙냄새가 먼저 오고, 축축한 기운과 속을 미슥미슥거리게 하는 냄새와 함께 먼지가 폭폭 나면서 소낙비가 그 뒤를 따라 걸어온다. (p94)

쉬지 못하는 내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전생에 죄를 많이 졌나봐, 빚을 많이 졌나봐'라는 말이다. 그럼 나는 정색을 하고 말한다. "아니오. 지금의 나를 보면 나 착한 사람이거든요. 나 전생에 빚 안 졌어요." 무심한 말 습관 때문에 생기는 상처가 가슴에 우박 자국처럼 박혀 있기에, 상대 무안하도록 정색을 한다.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참 보기 좋다" "아 예쁘다"라고 말해주면 좋겠다. (p106)

거친 손이 안쓰러울 때 스스로 위안한다. 죽으면 우리 모두 사라지는 거야. 다 써버리자. (p116)

이십대는 섹시미가, 삼십대는 여인의 우아함이 무기라면, 이 나이에 무기란 마음을 잘 쓰는 거다. ... 마음을 잘 써야지, 말로만으론 두 번 다시 만나기 싫은 말뿐인 사람이 되기 쉽다. 그래서 솜씨란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p141)

내가 고드름이라면 얼음바위처럼 외로운 남편은 내게 부탁했다. 첫째, 날 그냥 내버려둘 것. 둘째, 원할 때 찬물을 줄 것. 셋째, 돈을 벌지 않겠다, 거지도 죽을 때까지는 먹는다, 그러므로 나는 먹기 위해서 돈을 벌지는 않겠다. 그 말을 나는 가슴으로 다 알아들었다. (p172)

이 세상이 아름답고 살 만하다 느끼는 나이가 오십이 아닌가.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기는 나이. 마흔아홉 살까지는 남 탓을 했다. (p198)

나는 늘 지구시계로 계산한다. 일 년 단위로 계산하면 삶이 달라진다. '매일' 시간 개념으로 살면 삶이 그렇게 바쁠 수가 없다. 그런데 일 년 단위로 크게 크게 계산하니 지구를 내일 모레 떠날 사람 같은 마음가짐이 들어 하루하루가 얼마나 값진지. 순간순간이 값지다. (p214)

나는 외롭다. 혼자다. 그래서 행복하다.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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