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직장 생활 2년차입니다.
업무도 마음에 들고 급여도 좋은 편입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바로 직속상관입니다. 저보다 나이가 4살 정도 많은 상사인데, 처음부터 저를 ‘갈구고’ 있습니다. 일을 못하는 것도 아닌데, 사소한 것을 트집잡아서 혼내고 나무라는 것이 도를 넘습니다. 이런 문제로 직장을 바꿀 수도 없고, 정말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 정신과 전문의가 답합니다!
● 바쁜 분들을 위한 4줄 요약
1. 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복잡한 서열로 이루어진 피라미드를 만들어 왔다.
2. 서열로 인해 생기는 아랫사람의 어려움은, 일부분 불가피한 면이 있다.
3. 사회적으로는 민주적인 조직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4. 개인적으로는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한 학습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직장 생활을 좀 해본 분이라면, 좋은 상관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 좋은 상사를 만나는 것은,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직장 상사가 배우자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배우자는 내가 결정할 수 있지만, 상사는 내가 고를 수 없다.
둘째, 배우자는 아침 저녁에만 보지만, 상사는 하루 종일 봐야 한다.
셋째, 부부갈등에 대해서 동료들은 내 편이 되어 주지만, 상사와의 갈등에서는 주로 상사편을 든다.
넷째, 이혼한다고 직장을 잃지는 않지만, 상사와 헤어지려면 퇴사를 각오해야 한다.
다섯째, 부부는 서로 평가하는 입장이지만, 상사는 일방적으로 나를 평가하는 자리에 있다.
여섯째, 재혼을 위해서 전 배우자의 추천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이직할 때는 종종 이전 직장의 추천이 필요하다.
일곱째, 재혼한 배우자는 좋은 사람일 수 있지만, 상사는 바뀌어도 대개 똑같다.
사실 인류는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집단생활을 해왔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류가 아직 ‘인류’가 되기 이전부터 무리를 지어서 살아왔습니다. 조직 내의 위계질서라는 것은 포유류뿐 아니라, 조류에서도 관찰됩니다. 그리고 집단의 크기와 상관없이 리더, 즉 알파 개체는 단 하나입니다. 나머지는 다들 커다란 피라미드의 아래 부분을 떠받치고 있는 추종자들입니다. 이러한 집단적인 위계성은, 특히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에서 두드러집니다.
수렵채집사회에서는 집단의 크기가 150명을 넘지 않았기 때문에, 서열의 사다리를 오르다 보면 꼭대기에 다다를 약간의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부하로 살면서 느끼는 수모도, 나중에 얻을 영광을 생각하면 참을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사실 현대 사회에서는 사실 피라미드의 꼭대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회사의 사장, 조직의 대표, 심지어는 한 국가의 대통령이 되어도 또 누군가에게는 고개를 조아려야만 합니다. 수백 수천 개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복잡한 그물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은 평생 누군가의 밑에서 지내야 하는 운명 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언젠가 알파 개체가 되겠다는 꿈은 일찌감치 버리고, 서열 속에서 잘 적응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더 현명한 일입니다.
사실 좋은 상사의 기준이라는 것이 아주 엄격하기 때문에, 그 기준에 맞는 사람과 만나기는 아주 어렵습니다. 좋은 상사는 어떤 사람일까요? 일단 부서의 업무에 정통하면서도, 부하의 뻔한 실수에는 관대해야 합니다. 부하의 성공을 지지해줄 수 있는 정치력을 가졌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정치에는 관심이 없어야 합니다. 불가능한 과업을 성공으로 이끌면서도, 부하직원의 칼퇴근은 보장해주어야 합니다. 자신의 일은 철저하게 공사를 구분하면서도, 부하의 일은 친가족처럼 챙겨 주어야 합니다. 네, 이런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위계질서는 도대체 왜 생기는 것일까요? 이는 리더가 존재하는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훨씬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상상실험을 해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당신과 당신의 친구, 이렇게 두 명으로 이루어진 집단이 있다고 생각을 해봅시다. 처음에는 완전히 평등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왼쪽으로 가고 싶은데, 친구는 오른쪽으로 가고 싶다고 해봅시다.
사실 오른쪽이 유리한지 혹은 왼쪽이 유리한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당신의 친구는 설사 혼자 가는 한이 있더라도 오른쪽으로 갈 성격입니다. 척박한 환경에서는 혼자 지내는 것보다는 둘이 같이 지내는 것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당신은 친구의 의견을 따르기로 결정합니다. 위계가 생긴 것입니다.
집단이 점점 커져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모두가 오른쪽으로 갈 때, 당신만 왼쪽으로 가면 아주 불리해집니다. 이렇듯이 우리의 유전자에는 대다수가 따르는 리더를 따르고자 하는 원시적 본능이 잠재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집단이 커지면 그 안에서 서열(pecking order)이 생기고, 서열에 따라서 자원에 대한 접근권의 차이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Pecking order’이라는 말은 직역하면, ‘쪼는 순서’ 입니다. 생물학자 토를레이프 셀데루프 에베(Thorleif Schjelderup-Ebbe)는 10살 때부터 17년간 집에서 키우는 닭을 관찰했는데, 이러한 관찰 결과를 토대로 암탉의 모이를 쪼는 순서에 대한 박사논문을 썼습니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일군의 암탉 무리에서는 모이를 먼저 쪼는 개체부터 가장 나중에 쪼는 개체까지 순서가 정확하게 정해집니다. 따라서 서열의 높은 곳에 위치할수록 더 좋은 모이를 먹을 수 있게 됩니다. 인간 사회에서 서열의 높은 곳에 오르고자 아귀다툼이 끊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리더가 되는 문제는 일단 접어두고, 평생 누군가의 추종자로 살 수 밖에 없는 거대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까요? 일단 리더의 속성에 대해서, 그리고 더 나아가 일반적인 상사의 속성에 대해서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파울러스와 윌리엄(Paulhus and William)의 연구에 의하면, 피라미드의 최상층에서 자주 발견되는 속성이, 아래에 설명할 ‘3대 악’이라고 합니다. 첫째 나르시시즘, 둘째 마키아벨리즘, 셋째 사이코패스 경향입니다. 권력은 개인에게 이득을 가져오고, 집단이 커질수록 권력은 남용될 수 있기 때문에, 소위 ‘나쁜 놈’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첫번째인 나르시시즘은 자기애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쉽게 말해서 ‘자뻑’에 빠진 상사의 특성입니다. 근시안적이지만 화려한 결과를 보장하는 과업에 몰두하고 이를 위해서 매진합니다. 다른 사람이나 부하는 성공과 명예를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부하를 대량해고하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대개는 추구하는 목표의 장기적인 결과도 좋지 않습니다.
둘째, 마키아벨리적 상사는 권모술수에 강한 수완가입니다. 나르시시즘보다는 좀 낫다고 할 수 있지만, 역시 현실적인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습니다. 성공은 할 지 모르지만, 사람이 숨 쉴 자리는 없습니다.
셋째 사이코패스는 사실 미친 독재자입니다. 이들이 어떻게 리더의 자리에 오르는지, 그리고 대다수가 어떻게 이를 용인하는지는 의문입니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사이코패스적 리더가 기업이나 조직, 혹은 국가의 지도자가 되는 일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오랜 진화적 역사를 통해서, 이러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피라미드의 상층부를 차지하도록 사회는 변화해왔습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추종자들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들에게 묵묵히 복종합니다(맹수가 득실거리는 사바나의 초원에서 혼자 지내는 것보다는, 더러운 조직의 울타리 안에 있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상당히 바뀌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최근에는 이러한 진화인류학적 지식에 바탕을 두고, 많은 기업에서 새로운 방향의 민주적 리더쉽을 구축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의 유전자는 과거의 환경에 적응되어 있기 때문에, 하루 아침에 조직문화가 바뀌길 기대하는 것은 조금 어렵지만 말입니다.
진화학에는 이른바 불합치 가설(mismatch theory)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환경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심장혈관이 막히기 직전까지, 기름진 고기를 탐내는 식성은 바로 원시시대 우리 조상의 유산이라는 거죠. 아마도 지나치게 서열을 강조하는 우리 문화는, 이러한 유전자-문화 불합치에 의한 결과물인지도 모릅니다.
위계질서가 현대 사회에서도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지에 대해서는 다소 이견이 있습니다. 하지만 보다 민주적이고 다양화된 문화를 가진 집단이나 기업이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위계질서에 철저하게 기반을 둔 조직은 현대 사회와 ‘불합치’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당장 악랄한 상사 밑에서 고생하는 이 땅의 수많은 ‘부하직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상사의 ‘갈굼’이 진화적 산물이라는 것을 이해한다고 해서, 괴로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말입니다.
일단 당신과 직장과의 관계를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당신이 직장에서 인생의 진정한 지혜를 찾고 싶다면, 그런 이상은 접는 것이 좋겠습니다. 직장은 일단 돈을 버는 곳이지, 교회나 법당이 아닙니다. 운 좋은 분이라면 직장 상사 중에서 진정한 스승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상사의 ‘갈굼’을 부하직원의 숙명처럼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도 이상합니다. 앞서 말한 세 가지 형태의 ‘나쁜 상사’는 대개 다른 사람의 삶에 무관심하기 때문에, 참고 견딘다고 해도 그 보상은 보잘것없습니다.
미흡하지만 한가지 조언을 드린다면, 악독한 상사로부터도 배운다는 느낌으로 지내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당신은 서열의 사다리를 오르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피라미드의 꼭대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높은 곳에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 보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느 정도 일의 보람도 맛보고 싶고, 다른 동료나 혹은 미래의 부하직원에게 좋은 평가도 받고 싶겠죠.
그렇다면 상사의 어떤 점이 바람직한지, 혹은 바람직하지 않은지 직접 근거리에서 관찰하고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조직문화는 잘 바뀌지 않습니다만, 머지 않은 시일 내에 당신의 조직 내 위치는 바뀔 수도 있습니다.
● 에필로그
상사와의 갈등을 통해서 인생을 배운다는 고상한 해결책 말고, 보다 직접적인 해결책을 있을까요? 마크 판 퓌흐트(Mark van Vugt)와 안자나 야후자(Anjana Ahuja)는 탐욕스러운 리더를 통제하는 인류의 다섯 가지 주요 전략에 대해서 제시한 바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전략을 여러분의 직장에서 실행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1. 험담과 소문: 비열한 행동이나 성생활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은 그들의 집단 내 위치에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2. 공론: 오늘날의 의회나 주주총회와 같은 공론의 장에서, 특정 인물에 대한 비판을 할 수 있습니다.
3. 풍자: 비판이 적절하게 섞인 세련된 유머로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4. 불복종: 지시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집단적으로 보이콧하는 것입니다.
5. 암살: 말 그대로 암살하는 것입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 경희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대부속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병원 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현재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및 이화여대, 경희대 의대 외래교수를 지내면서,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2014)을 번역했고, '재난과 정신건강(공저)'(2015)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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