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간 본성의 법칙 요약

by dig it 2022. 10. 21.

인간본성의 법칙 요약

 

 

Law 01⦁Irrationality

비이성적 행동의 법칙

나를 지배하는 감정을 극복한다

당신의 운명은 스스로 결정한다고 믿고 싶을 것이다. 최선을 다해 내가 내 인생의 궤도를 의식적으로 설계하고 있다고 믿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감정이 얼마나 뿌리 깊이 당신을 지배하고 있는지 몰라서 하는 생각이다. 감정은 당신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쪽으로 생각의 방향을 튼다. 그리고 당신이 이미 믿기로 마음먹은 것을 그대로 재확인할 증거를 찾아낸다. 감정은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보고 싶은 것을 보게 만든다. 그렇게 현실과 단절되어 있기 때문에 당신은 계속해서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 부정적 패턴을 반복한다. 이성이란 이런 감정의 영향을 상쇄할 수 있는 능력이다. 무의식적인 ‘반응’을 하는 게 아니라 ‘생각’을 하고, ‘내 느낌’이 아니라 ‘현실’에 마음을 열게 하는 능력이다. 그러나 이성은 저절로 발휘되지 않는다. 이성은 개발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가 가진 가장 큰 잠재력을 깨달을 수 있다.

명심할 사항이 있다. 누구나 그렇듯 당신도 스스로 이성적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성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능력이 아니다. 이성은 훈련과 연습을 통해 습득하는 능력이다.

이성적인 사람이 되기 위한 첫 단계는 우리가 ‘근본적으로 비이성적’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의 대응책은 간단하다. 이성적 사고 능력과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가장 귀중한 자산으로 여기면 된다.

간단 요약

감정에 흔들리지 말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라.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비이성적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훈련과 연습을 통해 이성적인 능력을 키워야 한다.

 

 

 

Law 02⦁Narcissism

자기도취의 법칙

자기애를 타인에 대한 공감으로 바꾼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누구나 사람들과 교감하고 사회적 권력을 얻을 수 있는 가장 뛰어난 도구를 가지고 있다. 바로 ‘공감’이다. 잘 개발해 적절히 활용한다면 우리는 남의 생각과 기분을 파악할 수 있다. 그들의 행동을 미리 예측하고 반발을 부드럽게 누그러뜨릴 수 있다. 이렇게 유용한 도구의 칼날이 무뎌지는 이유는 우리가 습관적으로 자기 안에 매몰돼 있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는 누구나 나르시시스트(Narcissist, 자기도취에 빠진사람)다. 우리에게 인생 최대의 과제는 이 자기애를 극복하고 감수성을 내안이 아닌 밖으로, 타인을 향해 사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동시에 우리 중의 해로운 나르시시스트들을 알아볼 수 있어야만 그들이 꾸며낸 연극에 휘말리거나 그들의 시기심에 독살당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관심에 목마르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관심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끝이 없다. 우리는 뼛속까지 사회적 동물이다. 당신이 했던 행동들을 한하나 돌아보면 그 첫 번째 동기는 언제나 관심에 대한 욕구였음을 알게 될 것이다.

어릴 때부터 이런 딜레마에 직면했던 우리는 꽤 쓸 만한 해결책을 찾아냈다. 바로 ‘자아’를 만들어낸 것이다. 자아란 우리를 위로해주고 ‘내면으로부터’ 인정받았다고 느끼게 해주는 나 자신에 대한 이미지다. 자아는 나의 취향과 의견, 세계관, 가치관으로 구성된다. 자아상을 구축할 때 우리는 자신의 긍정적 측면은 강조하고 결점은 핑계를 대서 멀리 치워버리는 경향이 있다.

심한 자기도취자들을 알아볼 수 있는 행동 패턴이 있다. 그들은 모욕을 당하거나 누가 도전해올 경우 방어책이 없다. 내면에서 그들을 달래주거나 그들의 가치를 인증해줄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청난 분노의 반응을 보이고, 복수심에 불타며, 자신은 죽어도 옳다고 생각한다. 그것 말고는 자신의 불안을 누그러뜨릴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터지면 그들은 자신을 상처 입은 희생자 취급해서 남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심지어 동정심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들은 까칠하며 예민하다. 작은 꼬투리라도 하나 있으면 모두 본인에 대한 공격으로 생각한다. 피해망상적이 되고 사방을 적으로 간주한다. 어떤 신으로든 본인과 직접적으로 관계없는 이야기를 꺼내면 시큰둥하거나 참기 힘들다는 표정을 짓는다. 대화의 주제는 즉각 다시 그들에게 돌아가고 숨은 불안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다른 일화나 사건 같은 이야기를 꺼낸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주목을 받는데 거기에 그럴 만한 이유까지 있다고 느껴지면 심한 자기도취자들은 한바탕 악랄한 시기심에 불타오른다. 이들은 극도의 자신감을 자주 내비친다. 이것은 늘 관심을 받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그들 내면의 휑한 공허함과 조각난 자아 개념을 꼭꼭 감춰준다. 하지만 그 자신감이 정말로 시험받는 상황이 됐다면 이들을 조심해야 한다.

가까운 사람들과 관계를 살펴보면 심한 자기도취자들은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인간관계를 맺고 있다. 그들은 흔히 남들을 자신의 연장선상으로 본다. 소위 ‘자기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그들에게 사람은 관심과 인정을 위해 존재하는 ‘도구’다. 그들은 남들을 자신의 수족처럼 마음대로 부리려는 욕구를 갖고 있다.

인간 본성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세 가지다.

첫째, 우리는 ‘심한 자기도취자’라는 현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이해해야 한다.

극적인 상황을 조장하고 우리를 그들의 목적에 사용할 대상으로 만들려고 하는 유해한 사람들을 우리는 반드시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둘째, 자신의 본성에 대해 정직해야 한다.

그것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도취자다. 대화를 나누면 누구나 말을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고,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고 내 의견을 제시하고 싶다. 우리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좋아한다. 훌륭한 내 취향을 거울처럼 보여주기 때문이다.

셋째, ‘건강한 자기도취자’가 되기 위해 변신을 시작해야 한다.

건강한 자기도취자는 더 강인하고 회복력 있는 자아 개념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상처를 입거나 모욕을 당해도 남들보다 빨리 회복한다. 남들의 인정도 별로 필요하지 않다. 살면서 언젠가는 자신에게도 한계가 있고 단점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런 단점을 웃어넘길 수 있으며 모욕적인 말도 굳이 인신공격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큰 그림에서 볼 때 여러모로 자기 자신을 인정하기 때문에 이들의 자기애는 더 현실적이고 온전하다. 이렇게 내면이 단단하기 때문이 이들은 더 쉽게, 더 자주 외부로 관심을 돌린다. 그 관심이 향하는 곳은 둘 중 하나다(종종 둘다)다.

첫째, 관심과 사람을 일로 돌려서 훌륭한 예술가, 창작자, 발명가가 된다. 외부를 향한 일에 대한 관심이 강렬하기 때문에 이들은 모험을 해도 자주 성공하고 그를 통해 꼭 필요한 관심과 인정도 받는다.

둘째, 건강한 자기도취자의 관심이 향하는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공감능력이 발달한다. 이런 공감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은 종종 예술이나 과학 분야, 심리치료, 최고위급 리더 등으로 활약하며 사람들을 탁월하게 관찰한다.

관심을 외부로 돌릴수록 긍정적 피드백이 계속해서 돌아온다. 사람들이 당신 주위에 더 많이 머물려고 한다. 공감 근육이 발달하고, 업무 성과가 더 좋아지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관심을 노력 하지 않아도 받게 된다. 공감은 위쪽으로 작용하는 긍정적 추진력을 자체적으로 만들어낸다.

꼭 알아야 할 것은 이런 공감능력은 ‘필요’에 의해 개발된다는 사실이다.

평소 우리는 공감능력을 개발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내가 상대를 충분히 잘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감능력은 생사의 문제이고, 이 능력을 개발하는 데 우리의 성공이 달렸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 왜냐면 우리는 끊임없이 남들의 기분이나 의도를 잘못 읽어내며 그로 인해 수많은 기회를 놓치는데, 거기에 삶의 여러 문제가 서로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하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나에게 놀라운 사회성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간단 요약

자기애를 극복하고 건강한 자기도취자가 되자.

그러기 위해선 관심을 내안에서 사람들로 돌리고 공감능력을 키워야 한다.

공감능력을 키우면 사회적 권력을 얻을 수 있고 우리에게 유해한 나르시시스트들을 알아볼 수 있다.

 

 

 

Law 03⦁Role-playing

역할 놀이의 법칙

 

 

가면 뒤에 숨은 실체를 꿰뚫는다

사람들은 내가 가장 멋지게 보일 수 있는 가면을 쓴다. 겸손하고, 자신감 있고, 성실한 모습을 가장한다. 옳은 말만 하고, 미소를 짓고, 상대의 생각에 관심이 있는 척하며 내면의 불안과 시기심을 감추는 법을 터득한다. 그런 겉모습을 실제라고 착각한다면 상대의 진짜 감정은 알 길이 없다. 종종 우리가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저항이나 적개심에 깜짝 놀라고 남의 조종에 놀아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다행히도 사람들이 쓰는 가면에는 갈라진 틈이 있다. 그 틈 사이로 진짜 감정과 무의식적 욕망이 조금씩 새어나온다. 사람들이 표정이나 목소리 변화, 몸의 긴장감, 초조할 때 나오는 몸동작 같은 비언저적 신호까지 완벽히 통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당신은 바로 이 언어에 통달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려면 남을 읽어내는 데 뛰어난 사람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 지식으로 무장하고 나면 적절한 방어수단을 강구할 수 있다. 한편 사람들은 당신을 겉모습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가장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맡은 역할을 가장 잘 연기할지 그 방법도 알아야 한다.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이 있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사회성이 가장 뛰어난 동물이다. 우리의 생존과 성공은 타인과의 소통 능력에 달려 있다. 인간이 나누는 모든 의사소통 중에 65퍼센트 이상이 비언어적 소통이지만 그중에 사람들이 인지하고 내면화하는 정보는 겨우 5퍼센트에 불과하다고 추정된다. 인간관계에서 우리가 기울이는 주의력은 대부분 사람들이 하는 ‘말’에 쏠려 있다. 실제로 말은 사람들의 진짜 생각이나 감정을 감추는 데 더 많이 사용되는 데 말이다. 비언어적 신호는 상대가 말로써 강조하려는 내용과 메시지의 숨은 뜻, 그리고 의사소통의 뉘앙스를 알려준다. 그리고 상대가 적극적으로 숨기는 내용과 정말로 바라는 일을 알려준다. 비언어적 신호는 사람들의 기분과 정서를 아주 직접적으로 반영한다. 이 정보를 놓친다는 것은 눈을 감고 활동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첫째, 자신이 자기 안에 매몰되어 있고 실제로 관찰은 거의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 점을 제대로 알아야 관찰능력을 개발하겠다는 동기가 부여된다.

둘째, 비언어적 소통은 언어적 소통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비언어적 소통은 여러 감각을 열어놓고 보다 신체적인 차원에서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상대의 말뿐만이 아니라 신체가 내보내는 에너지를 흡수해야 한다. 단순히 표정을 관찰하는 게 아니라 그 표정을 내 안에 각인해서 그 인상이 계속 남아 있는 채로 소통해야 한다. 비언어적 소통의 어휘들을 많이 익히고 나면 어느 제스처를 하나 봤을 때 그게 뜻할 수 있는 감정들이 떠오를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감각이 발달하면 그동안 당신이 무엇을 놓쳐왔는지 점점 더 많이 보일 것이다. 사람들을 더 깊이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을 알게 될 테고 사회성이 증진될 것이다.

인간은 능수능란한 연기자다. 우리는 일찍부터 부모에게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동정심이나 애정을 자아낼 만한 표정을 짓는 방법을 배운다. 우리는 내가 상처받을 수 있는 순간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지금 내가 정확히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기분인지 부모나 형제에게 감추는 법을 배운다.

인간 본성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다.

첫째, 삶에 연극적 속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누가 역할 놀이를 하거나 가면을 쓴다고 해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거나 격분해서는 안 된다. 그런 것들은 매끄러운 사회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이다. 실제로 우리의 목표는 삶이라는 무대에서 내가 맡은 역할을 완벽한 기술로 연기하는 것이다. 그래야 관심을 끌고, 주목받고, 공감 가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둘째, 순진하게 사람들의 겉모습을 실제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의 연기력에 눈이 흐려지지 마라. 상대의 진짜 감정을 기막히게 잘 해독하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라. 관찰력을 키우고 그 관찰력을 일상에서 최대한 많이 사용하라.

그러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사람을 관찰하는 ‘방법’을 알아야 하고, 비언어적 소통을 해독하는 기본 열쇠 몇 가지를 배워야 하고, ‘인상 관리’라고 알려진 기술을 완벽하게 익혀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게 맡은 역할을 연기해야 한다.

사람들은 보통 세상을 향해 최선의 얼굴만 보여주려고 한다는 점을 잊지 마라. 사람들은 혹시 모를 적대감이나 권력욕, 우월해지고 싶은 욕구, 비위를 맞추려는 시도, 내면의 불안 같은 것들은 감추고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렇게 주의를 흩뜨리는 것들에 신경을 뺏기지 않고, 오히려 무의식적으로 누출되는 신호들을 알아채는 것이다. 가면 아래의 진짜 감정을 알려주는 것은 바로 그 신호들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역할 놀이’라는 말은 부정적 의미를 함축한다. 진정성과 대비되는 뜻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정성이 있는 사람은 일상에서 어떤 역할을 연기할 필요가 없다고, 그냥 자기 자신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친구 사이나 가까운 관계에서는 이런 개념이 의미가 있다. 하지만 직장 생활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사회에서 수행해야 하는 역할이나 임무와 관련해서는 ‘무엇이 프로다운가’에 대한 기대치가 있다. 공적 인물이 된다는 것은 가면을 쓴다는 뜻이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진정성’이라는 가면을 쓴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역할에 개대되는 사항을 충실히 이행하려고 한다. 사회적 성공이 거기에 달려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일부 이 게임의 룰을 따르기를 거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들은 결국 점점 밖으로 밀려나 어쩔 수 없이 ‘아웃사이더’라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일반적으로는 그냥 이 역할 놀이를 받아들이고 거기서 즐거움을 찾아보는게 최선이다. 우리는 내가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는지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해야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지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삶이라는 무대에서 뛰어난 배우가 되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순간을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인격’이라는 말은 라틴어 단어 ‘페르소나’에서 왔다. 페르소나는 ‘가면’이라는 뜻이다. 남들 앞에서 우리는 누구나 가면을 쓴다. 그리고 여기에는 순기능이 있다. 만약 우리가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다 보여주고 속에 있는 말을 모조리 해버린다면 상처받을 사람이 한둘이 아니고 숨겨도 좋을 것들이 모두 드러날 것이다. 사실 페르소나를 만들어 내 역할을 잘 연기하는 것은 사람들이 우리를 너무 가까이 보지 못하게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남들이 코앞까지 와서 나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얼마나 불안정한 기분이 들지 생각해보라. 실제로 맡은 역할을 잘 연기하면 더 많은 힘이 생기고, 힘이 있으면 나의 기이한 면들까지 더 많이 표현해도 되는 자유가 생긴다. 그렇게 해나가다 보면 당신이 제시하는 페르소나가 당신의 수많은 개성과 일치하는 때가 올 것이다. 효과는 훨씬 더 좋을 테고 말이다.

간단 요약
사람들은 모두 가면을 쓴다. 그런 겉모습을 실제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선 가면 뒤에 숨은 진짜 감정을 읽어내는 기술을 읽혀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당신을 겉모습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가장 멋진 모습을 보여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Law 04⦁Compulsive Behavior

강박적 행동의 법칙

성격의 유형을 파악한다

일을 같이 하거나 함께 어울릴 사람을 고를 때는 상대의 명성에 넋을 놓거나 그들이 보여주는 표면적 이미지에 넘어가지 마라. 상대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성격을 파악하는 훈련을 하라. 사람의 성격을 형성하는 것은 어린 시절의 경험과 매일의 습관이다. 사람은 성격 때문에 살면서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부정적 패턴에 빠진다. 그런 패턴들을 면밀히 들여다보라. 사람은 절대로 같은 행동을 한 번만 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사람들은 틀림없이 자신의 행동을 반복할 것이다. 역경에 처했을 때 얼마나 잘 대처하는지, 남들과 함께 일할 때 잘 적응하는지, 인내심과 학습능력은 있는지 유심히 살펴서 이 사람이 성격상 갖고 있는 상대적 강점이 무엇인지 파악하라. 언제나 강인함의 신호를 보여주는 사람을 가까이하고, 독이 될 수 있는 무수히 많은 이들을 피해가라. 당신 자신의 성격을 처음부터 끝까지 파악해서 강박적 행동의 패턴을 깨고 당신의 운명을 직접 개척하라.

인간 본성에는 맹점이 있어서 우리는 상대의 성격을 가늠하기 좋은 조건을 타고나지 못했다. 우리는 겉모습에 홀린다. 우리는 다름 사람과 잘 협력하고 약속을 지키고 험난한 환경에서도 강인함을 유지하는 것과 같은 그 사람의 품성을 판단하는 게 아니라, 빛나는 이력서나 지능, 매력 등을 기초로 사람을 채용하고 함께 일할 사람을 고른다. 그러나 지능과 같은 긍정적 특징도 상대의 본성이 나약하거나 미심쩍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가 가진 맹점 때문에 우유부단한 리더나 사사건건 간섭하는 상사, 교활한 파트너 밑에서 고생한다. 수많은 역사의 비극이 여기서 비롯됐고 인간이라는 종이 계속 같은 패턴을 반복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무슨 수를 써서든 우리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 사람들이 들이미는 얼굴이나 그들을 둘러싼 신화 같은 이야기는 무시하고 상대방을 깊이 파고들어 그의 성격을 알려주는 신호를 찾도록 연습하라. 상대의 성격은 그의 과거에서 드러나는 패턴, 그가 내리는 의사결정, 문제 해결 방식, 권한을 이양하고 협업하는 모습 등 수많은 신호에서 드러난다. 성격이 강인한 사람은 황금과 같아서 흔히 볼 수는 없으나 이루 말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그들은 바뀐 환경에 잘 적응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스스로를 발전시킨다. 우리의 성공은 누구 밑에서 혹은 누구와 함께 일하느냐에 달려 있다. 상대의 진짜 성격을 살피는 것을 최고의 관심사로 삼아라. 그러면 너무 늦게 상대의 본성을 발견하는 비극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정직해지기 위해서는 운명이라는 개념에 약간의 진실도 들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문제를 만나면 계속 똑같은 방식으로 대처하고 똑같은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우리 삶에는 어떤 패턴, 특히 실수나 실패에서 눈에 띄는 그런 패턴이 있다. 그런데 이 개념을 달리 볼 수도 있다. 우리를 통제하는 것은 어떤 정령이나 신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성격’이라고 말이다. ‘성격’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에서 왔다. 무엇을 조각하거나 도장을 찍는 도구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성격은 우리 안에 너무 깊숙이 배어 있거나 깊이 각인되어 있어서 우리를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무엇’이 된다. 우리가 자각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무엇 말이다. 성격이라는 개념은 세 가지 핵심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세 가지는 하나위에 다른 하나가 쌓여 있는 형태여서 성격은 깊이를 갖는다. 성격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가장 오래된 층은 유전에서 온 것이다. 뇌의 구성방식에 따라 어떤 분위기를 좋아하고 무엇을 선호할지가 미리 정해진다. 예를 들면 이 유전적 요소 때문에 어떤 사람은 우울증에 취약할 수 있다. 또 누구는 내성적인 사람이 되고 누구는 외향적이 된다. 다른 누구는 남들의 관심이나 특권, 소유물에 대해 특히 욕심을 낼 수도 있다. 유아를 연구했던 정신분석학자 멜라니 클라인은 탐욕적이고 욕심 많은 아이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그런 성격적 특징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했다. 적대감, 걱정, 열린 마음 등을 잘 갖게 만드는 다른 유전적 요소가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 본성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다. 첫째, 당신 자신의 성격을 잘 이해해야 한다. 과거에 당신의 성격을 형성한 요소와 당신 인생에서 계속 재발하는 패턴, 주로 부정적인 패턴을 최대한 잘 점검하라. 당신의 성격을 구성하는 이 각인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노력을 통해 당신 성격의 부정적이거나 약한 측면을 장점으로 전환할 수 있다. 연습을 통해 거기에 어울리는 새로운 습관이나 패턴을 만들 수 있고, 그에 어울리는 성격과 운명을 능동적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다.

둘째, 상대의 성격을 읽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그러려면 함께 일할 사람이나 애인을 고를 때 성격을 주된 가치로 고려해야 한다. 즉 상대의 매력이나 지능, 명성보다 성격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 사람들의 행동이나 패턴을 통해 성격을 관찰하는 능력은 사회생활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기술이다. 이 기술이 있으면 무능한 리더나 수상한 파트너, 교활한 직원, 인생에 독이 될 나와는 절대로 안 맞는 배우자를 골라 비참한 세월을 보내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우리가 성격을 잘 판단하지 못하는 이유는 주로 드러난 것을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약점을 감추기 위해 그걸 뭔가 긍정적인 것으로 포장하는 경우가 많다.

성격을 공부하는 첫 단계는 이런 환영과 가면이 있음을 인식하고 그것을 간파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상대가 어떤 모습을 연출하든, 어떤 지위에 있든, 만나는 모든 사람에 대해 상대의 성격을 보여주는 신호가 없는지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

늘 마음에 새기고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결론은 이것이다. ‘사람들은 절대로 어떤 일을 한 번만 하지는 않는다.’ 상대는 변명을 시도할지 모른다. 그 순간 정신이 나갔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장담컨대 그는 뭐가 되었든 그 바보 같은 일을 또다시 저지를 것이다. 그의 성격과 습관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만들 것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완전히 어긋날 때조차 같은 행동을 되풀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만큼 그 사람의 약점은 강박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강인한 성격과 나약한 성격을 모두 갖고 있다. 하지만 유독 한쪽 방향으로 많이 휜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강인한 성격을 가지 사람과 최대한 많이 협업하고, 나약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최대한 피하는 게 좋다. 워렌버핏은 투자를 결정할 때 거의 항상 이것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는 숫자를 넘어 자신이 상대하는 CEO를 본다. 그가 가장 판단하고 싶어하는 것은 상대 CEO의 회복력과 신뢰성, 자립심이다. 우리 모두가 사람을 고용하거나 파트너를 선택하거나 정치가를 고를 때 워렌 버핏의 기준을 사용하면 얼마나 좋을까.

기억하라. 나약한 성격은 훌륭할 수도 있는 다른 모든 자질을 무위로 만들어 버린다. 이런 사람을 고용하거나 그들과 함께 일한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을 치러야 한다. 그들보다 덜 매력적이고 덜 똑똑하지만 강인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나중에 가면 장기적으로 더 믿음직스럽고 생산적일 것이다. 진정으로 강인한 성격을 지닌 사람은 황금처럼 귀하다. 그런 사람을 찾아냈다면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대해야 할 것이다.

간단하지만 예외 없는 법칙이 있다. ‘성격은 바꿀 수 없다.’ 성격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는 의식적 자각이 생기기 이전에 이미 만들어진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성격은 당신으로 하여금 같은 행동, 같은 전략, 같은 의사결정을 반복하게 만든다. 인간의 뇌도 거기에 적합하게 되어 있다. 일단 한번 생각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고 나면 신경회로가 만들어져서 같은 일을 또 하고 또 하게 된다. 그러니 이 법칙에 따르면 당신은 둘 중 하나를 택할 수 있고, 그 선택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결정된다.

첫째, 자신의 정해진 성격과 강박적 행동 패턴을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선택

둘째, 자신을 성격을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파악해서 강박적 행동 패턴을 깨고 탈바꿈하는 선택

노력한다면 더 이상 어린 시절이 만들어놓은 성격과 그 성격이 만든 강박적 행동의 노예는 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본인의 성격과 그에 따른 운명을 적극적으로 개척할 수 있을 것이다.

간단 요약

사람들을 판단할 때 드러난 것을 기준으로 삼지 말고 상대의 진짜 성격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상대의 성격을 파악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훈련해야 한다.

그리고 어린 시절 만들어놓은 성격과 그 성격이 만든 강박적 행동 패턴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Law 05⦁Covetousness

선망의 법칙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욕망의 대상이 되라

무언가가 있고 없고는 우리에게 원초적 차원에서 영향을 준다. 무언가가 너무 많으면 숨이 막히고, 약간 모자라면 관심이 간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소유하고 싶은 끊임없는 욕망은 인간만이 가진 두드러진 특징이다. 그 욕망의 대상은 우리의 판타지에 투영된다. 당신 주위에 약간의 미스터리를 만들어내라. 사람들이 당신이 다시 오길 바라고 당신을 소유하고 싶도록 ‘전략적 부재’를 이용하라. 상대의 삶에서 가장 부족한 것, 그가 가지면 안 되는 것을 그의 눈앞에 들고 흔들어라. 그러면 상대는 미친 듯이 그것을 갈망할 것이다. 언제나 옆집 잔디가 더 푸르게 보이는 법이다. 당신이 처한 환경, 당신의 운명을 적극 끌어안아 당신 안의 약점을 극복하라.

꼭 알아야 할 점은 이것이다. 당신이 세상에 바라고 탐내는 것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남들과 그들의 억압된 욕망, 채워지지 않은 판타지에 초점을 맞추도록 스스로를 훈련해야 한다. 당신과 당신이 만든 대상을 남들이 어떻게 인식하는지 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 당신 자신과 당신의 작품을 마치 외부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보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그 대상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당신 뜻대로 형성할 수 있는 무한한 힘이 생기고 남들을 흥분시킬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자신을 따분한 일상 밖으로 데려다줄 무언가를 원한다. 사람들은 탐내며 쫓아다닐 욕망의 대상과 판타지를 원한다. 당신이나 당신의 작품 주위에 미스터리한 기운을 만들어 내라. 새롭고, 낯설고, 이국적이고, 진보적이며, 터부시되는 무언가를 결부시켜라. 메시지를 딱 떨어지게 규명하지 말고 애매하게 남겨둬라. 당신의 대상이 어디든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 내라. 도처에 보이고 남들이 욕망한다고 믿게 하라. 그러고 나면 나머지는 모든 인간에게 잠재된 선망이 모두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욕망의 연쇄효과에 불을 놓는 것이다.

천성적으로 우리는 가진 것에 쉽게 만족하지 못한다. 내면의 비뚤어진 어떤 힘 때문에 무언가를 소유하는 순간 혹은

바라던 것을 얻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이미 색다른 무언가를 향해 떠나버린다. 더 좋은 것을 가질 수 있다고 상상하면서, 그 새로운 대상이 더 갖기 힘들고 더 멀리 있을수록, 그걸 갖고 싶은 우리의 욕망도 커진다. 이것을 ‘남의 집 잔디 신드롬’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착시현상의 심리학 버전 말이다. 그 잔디에, 그 새로운 대상에 너무 가까워지고 나면 우리는 그 잔디가 실제로는 별로 푸르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이런 현상은 일상 속에서도 벌어진다. 나보다 나은 것을 가진 듯한 사람이 계속해서 눈에 보인다. 저 사람의 부모는 더 많은 사랑을 주고, 저 사람의 직업은 더 흥미롭게 보이고, 저들의 삶은 더 쉬워 보인다.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연애를 하면서도 마음은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을 찾아 헤맨다. 내 배우자의 이 생생한 단점을 가지지 않은 다른 삶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느 낯선 문화권으로 떠나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는 것을 꿈꾼다. 그곳의 사람들은 내가 사는 이 때 묻은 도시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리라 생각한다. 정치를 이야기하자면 이 나라 정부는 부패했고, 우리는 정말로 변화가 필요하고, 어쩌면 혁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혁명을 통해 우리가 사는 불완전한 세상이 참된 유토피아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상 절대 다수의 혁명은 이전과 똑같은 결과를 낳았거나 이전보다 못한 결과를 가져왔었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욕망을 쫓아다니다가 환상이 깨져서 실망하는 경험을 여러 번 하고서도 우리의 행동은 바뀌지 않는다. 다시 또 저 멀리 반짝이는 것, 이국적인 것, 빨리 부자가 될 수 있는 비법이 나타나면 눈이 커지고 만다.

우리의 심리 구조상 언제나 옆집 잔디는 우리 집 잔디보다 더 푸를 수밖에 없다. 인간 본성에 혹시나 이런 흠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불평하거나 도덕적으로 비난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각자의 정신생활의 일부이고 좋은 점도 많다. 우리가 새로운 가능성을 생각하고 혁신할 수 있는 것은 이 결점 덕분이다. 상상력이 우리에게 강력한 도구가 되는 것도 그 덕분이다. 뒤집어보면 우리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흥분시키고 유혹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그 덕분이다. 사람들의 타고난 선망을 이용할 줄 아는 것은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유용한 기술이다. 우리는 온갖 종류의 설득에 이 기술을 활용한다. 오늘날 문제는 사람들이 갑자기 선망을 멈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기술을 활용하는 법을 잊고, 이 기술이 가진 힘을 잊은 데 있다.

기억하라. 뒤에서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소유가 아니라 욕망이다. 무언가를 소유하고 나면 조금은 실망하게 마련이고 새로운 무언가를 추구하고 싶은 욕망에 다시 불이 붙는다. 당신은 판타지와 그것을 쫓는 즐거움에 대한 인간의 욕구를 이용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의 노력에는 끊임없는 리뉴얼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거나 당신을 소유하고 나면, 당신의 가치와 당신에 대한 그들의 존경심은 즉시 줄어들기 시작한다. 계속해서 철수하고, 놀라게 하고, 나를 쫓아오라고 자극하라. 그렇게 할 수 있는 한, 힘이 가진 사람은 당신이다.

우리는 늘 자신의 본성을 더 잘 의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내 안에 ‘남의 집 잔디 신드롬’이 작용한다는 것과 그 때문에 나는 자꾸 특정한 행동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최신 트렌드를 뒤 쫒으며 남들이 열광하는 것을 내 욕망의 본보기로 삼을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취향과 욕망을 더 잘 알기 위해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내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 혹은 원하는 것과 광고주나 바이럴 마케팅이 만들어낸 욕구를 구분해야 한다.

인생은 짧고 우리에게 주어진 에너지도 한계가 있다. 선망이라는 욕망에 휘둘린다면 부질없는 것을 찾아다니고 불필요한 변화를 모색하느라 많은 시간을 낭비할 수 있다. 보통의 경우라면, 끊임없이 더 나은 것을 바라며 기다리기 보다는 지금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하라.

간단 요약

갖지 못한 것을 소유하고 싶은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을 이용해 선망의 대상이 되어라.

그리고 늘 자신의 본성을 의식하고 선망이라는 욕망에 휘둘리지 마라.

 

 

Law 06⦁Shortsightedness

근시안의 법칙

사건을 뒤흔드는 더 큰 흐름을 주시한다

지금 보고 듣는 것, 이를테면 최신 뉴스, 트렌드, 주위 사람들의 의견과 행동, 아주 극적으로 보이는 온갖 것으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은 당신의 본성 중 동물적인 부분이다. 빠르게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손쉬운 돈벌이를 약속하는 반짝거리는 미끼에 당신이 걸려드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과잉 반응을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어떤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당신은 과하게 들떴다 패닉에 빠졌다를 반복한다. 사람들을 평가할 때는 시야의 넓고 좁음을 기준으로 삼아라. 자기 행동의 결과를 보지 못하고, 계속해서 생각 없는 반응을 내놓는 데 그치는 사람과는 엮이지 마라. 그런 사람은 당신에게도 그런 기운을 전염시킨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사건들을 좌우하는 더 큰 흐름을 주시하라. 장기적 목표를 시야에서 놓치지 마라. 시각을 넓히면 그 어떤 목표든 이룰 수 있는 인내심과 명료한 관점이 생길 것이다.

알아두어야 할 것은 인간은 현재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그게 바로 우리 본성의 동물적 부분이다. 우리는 내가 보고 듣는 것, 어느 사건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장면에 가장 빨리 반응 한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현재에 묶여 있는 동물이 아니다. 인간의 ‘현재’는 과거를 포함한다. 모든 사건은 끝없이 이러진 역사라는 인과관계 속에서 이전에 발생한 어떤 일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현재의 모든 문제는 과거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미래까지도 아우른다. 우리가 무슨 짓을 하든 그 결과는 아직 오지 않은 먼 미래까지 이어진다.

우리가 눈앞에 닥친 것, 감각에 들어오는 것에만 사고의 범위를 한정한다면 우리는 단순한 동물의 수준으로 전락한다. 합리적 추론 능력이 아무 소용없는 수준 말이다. 그때는 더 이상 무슨 일이 왜 일어날지 인식하지 못한다. 겨우 몇 달 동안 성공했던 계획이 앞으로 더 크게 성공할 거라고 착각한다. 우리가 시작한 일이 불러올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는 일절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리는 퍼즐의 아주 작은 일부를 토대로 지금 당장 주어진 것에만 반응한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우리의 행동은 의도치 않은 결과를 만들어내고, 그 결과는 사우스시 사태나 2008년 금융위기 같은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문제가 더 복잡해지는 것은 주위 사람들 때문이다. 그들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방향의 반응을 끊임없이 내놓으며 우리를 현재 속으로 더 깊이 끌어들인다. 세일즈맨이나 선동가들은 인간 본성의 바로 이 약점을 파고든다. 그들은 쉽게 돈을 벌 수 있다고, 즉시 만족할 거라고 우리에게 사기를 친다. 우리의 유일한 대책은 코앞에 쏟아지는 사건들로부터 눈을 떼고 시선을 계속 더 멀리 보도록 스스로를 훈련하는 방법뿐이다. 아무 생각 없이 ‘반응’을 할 게 아니라 한발 물러서서 더 큰 맥락에서 봐야 한다. 어떤 조치를 취할 때는 거기서 비롯될 온갖 파장까지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장기적 목표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시야를 넓혀보면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시간을 두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살피는 편이 더 좋은 경우도 많을 것이다. 블런트가 몇 달만 기다렸다면 존 로의 계책이 산산조각 나는 모습을 봤을 테고, 영국도 그런 낭패를 겪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분별력이나 균형 감각은 타고나는 게 아니다. 이 능력들은 엄청난 노력을 통해 습득되는, 인간 지혜의 최고봉이다.

우리는 현재로부터 ‘거리’를 두고, 문제의 근원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상황의 전체 맥락을 더 ‘넓게’ 바라보고, 미래를 더 ‘길게’ 내다보아야 한다. 우리가 한 행동의 결과와 나의 장기적 우선순위까지 고려해야 한다.

우리는 눈앞의 것에 대응하고 즉각적 만족을 찾도록 만들어져 있다. 우리 선조들은 주변에 숨은 위험요인을 발견하거나 혹시 음식이 될 수 있는 것들을 알아보는 게 중요했다. 인간의 뇌는 큰 그림을 살피거나 사건의 맥락을 고려하도록 디자인된 것이 아니라, 가장 극적인 것을 찾아가도록 진화되었다. 비교적 단조로운 환경이거나 내 부족밖에 없는 단순한 사회 구조에서는 그것으로도 충분했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복잡한 세상에는 적합하지 않다. 오감과 감정을 자극하는 것들에만 주목하고 큰 그림은 대부분 놓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역사상 가장 성공한 투자자 워렌 버핏의 능력은 그의 장기적 시각을 토대로 하고 있다.

시간 인식의 폭이 좁은 사람, 늘 생각 없이 반응만 하는 사람과는 가급적 깊은 관계를 맺지 마라. 그리고 시간을 더 크게 인식하는 사람과 어울리도록 힘써라.

인간 본성의 여러 요소가 대부분 그렇듯이 핵심은 ‘자각’이다. 그 신호들을 자각할 수 있어야만 그런 성향과 싸울 수 있다.

당장 벌어진 어떤 일에 깜짝 놀란 우리는 문제의 뿌리나 맥락, 이후에 따를 수 있는 의도치 않은 결과 등을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고 해결책을 덥석 받아든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반응’을 하기 때문에 우리의 행동은 불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것이다.

결과를 생각하지 않는 사고야 말로 현대 사회의 진정한 역병과 같다. 이 역병은 악화일로를 걷는 중이다. 정보에 대한 접근이 쉬워지고 빨라지면서 사람들에게 ‘나는 충분한 정보를 얻었고 충분히 깊이 생각했다’는 착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꼭 알아야 할 점은 이것이다. 세상의 모든 현상은 태생적으로 복잡하다. 당신이 상대하고 있는 그 사람도 복잡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가 어떤 조치를 취하더라도 무한한 연쇄 반응의 시발점이 된다. A를 하면 B라는 결과가 나오는 것처럼 단순한 경우는 절대 없다. B는 C로, 다시 D로, 그 이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다른 배우들이 연극 속으로 끌려 들어올 것이고 그들의 동기나 대응을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이 모든 연쇄 반응의 과정을 사전에 계획해서 그 모든 결과를 완벽히 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생각을 할 때 좀 더 결과를 고려한다면 적어도 아주 뻔한 부정적 결과 정도는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곧 성공과 실패를 가름하는 경우도 많다. 사고의 깊이가 필요하다. 여러 가지 예상 가능한 조합을 상상해볼 때는 몇 단계 더 들어가서 최대한 멀리까지 생각해보라.

자존심을 죽여라. 말싸움 하나에 이기거나 내 말이 맞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해서 장기적으로 어떤 해결책이 나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말로 이기지 말고 행동으로 이겨라. 다시 장기적 목표를 생각하라. 가치관과 삶의 우선순위라는 피라미드를 그려보고 나에게 정말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상기하라. 그렇게 해서 어느 싸움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판단된다면 이제는 좀 더 객관적인 태도로 더 전략적인 대처방안을 짤 수 있을 것이다.

결국에 많은 일들이 실제로는 싸울 만한 가치가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런 싸움은 귀중한 시간과 에너지만 낭비시킨다. 전쟁에서와 마찬가지로 삶에서도 언제나 전술가보다는 전략가가 승리한다.

간단요약

당장 눈앞에 있는 현재에만 집중하는 우를 범하지 말고,

늘 장기적 목표를 염두에 두고 시야를 넓혀라.

 

 

Law 07⦁Defensiveness

방어적 태도의 법칙

상대를 긍정해서 저항을 누그러뜨린다

인생은 혹독하고 사람들은 경쟁적이다. 우리는 당연히 내 것부터 챙겨야 한다. 또한 우리는 내가 독립접이고 내 뜻에 따라 살고 있다고 느끼고 싶다. 다른 사람이 나를 설득하고 나를 변화시키려고 할 때 우리가 방어적이 되고 저항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는 상대의 설득과 시도에 굴복했다가는 내가 독자적으로 행동한다는 느낌이 훼손될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를 방어적 자세에서 빠져나오게 만들려면 상대가 그의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야 한다. 서로 온기를 나누고 있다는 느낌을 주면 상대의 저항을 누구러뜨리고 나를 돕고 싶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절대로 상대의 신념을 공격하거나 그의 지능이나 선의를 의심하는 느낌을 주지 마라. 그랬다가는 방어적 태도만 더 단단해지고 당신이 하려는 일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해주면 상대가 고귀하고 이타적인 사람이 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어라. 이만한 꾐이 없다. 당신 자신의 완고함을 길들여라. 방어적이고 닫힌 마음의 자세를 풀어 당신의 창조력이 양껏 발현되게 하라.

꼭 알아야 할 점은 이것이다. 사람들에 대한 영향력, 그에 따른 권력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방법을 취해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보통 나를 최대한 멋있게 보여주어 내 아이디어를 가지고 상대를 홀리려고 한다. 우리는 지나간 업적을 한껏 부풀리고 내가 대단한 것을 갖고 있다고 약속한다. 정직이 최선이라고 믿으며 상대에게 호의를 부탁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모든 관심이 우리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어서 그런 믿음이 생긴다는 사실이다. 지금처럼 자기몰두가 점점 더 심해지는 세상에서 이런 전략은 상대방의 관심이 더 내부로 향하게 만들고, 나의 관심사가 아니라 그들의 관심사에 더 집중하게 만들 뿐이다.

영향력과 권력을 얻는 최선의 방법은 정반대로 가는 것이다. 관심의 초점을 상대에게 넘겨줘라. 상대가 이야기하게 만들어라. 이 쇼에서 상대방이 스타가 되도록 하라. 상대의 의견과 가치관은 내가 따라할 가치가 있으며, 그가 지지하는 대의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다고 말하라. 요즘 세상에 이런 관심은 워낙에 드물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런 관심에 굶주려 있다. 이렇게 상대를 긍정해주면 그는 방어막을 내리고 뭐가 되었든 당신이 암시하고 싶은 그 아이디어에 마음을 열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언제나 한 걸음 물러나서 상대보다 열등한 위치에 서는 것이다. 하지만 노골적이어서는 안 된다. 상대의 조언을 구하라. 사람들은 자신의 지혜와 경험을 나눠주고 싶어서 안달이다. 상대가 관심에 중독되었다 싶으면, 주기적으로 상대를 위해 뭔가 작은 호의, 상대의 시간이나 노력을 아껴줄 수 있는 어떤 호의를 베풀어라. 상대는 즉시 은혜를 갚고 싶을 테고, 이용당한다거나 강요당한다는 느낌 없이 당신에게 자신이 받은 호의를 되돌려주려고 할 것이다. 일단 한 번 당신에게 호의를 베푼 사람은 계속해서 당신을 위하려고 할 것이다. 당신을 위해 뭔가를 할 때 이미 당신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신을 더 이상 돕지 않는다면 그것은 본인의 당초 판단이나 지능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이 된다. 사람들은 그런 것을 아주 꺼린다. 집단 내에서 이렇게 서서히 노력한다면 공격적이거나 의도적으로 보이는 일 없이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 당신의 야망을 이만큼 잘 숨길 방법이 또 있을까.

대화의 진짜 목적은 남들의 재기를 끌어내는 것이지, 당신의 재기를 많이 보여주는 게 아니다. 상대가 본인이나 본인의 위트에 만족하며 떠난다면, 그는 당신에게도 크게 만족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가르침을 받거나 누가 나를 즐겁게 해주는 것보다 칭찬받고 박수받기를 더 바란다.

-장 드 라 브뤼예르(17세기 프랑스의 문학가)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인정받은 기분을 상대가 느끼게끔 해주는 것이 사람들의 방어막을 해체시키는 황금 열쇠라는 사실이다. 이런 힘을 갖고 있지 않으면 지금처럼 고도로 경쟁화된 세상에서 살아남아 번창할 수 없다.

사람들은 ‘자기평가’라고 부를 수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을 갖고 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성격이나 가치를 인식하는 방식이다. 사람들의 자기평가에서 거의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이 세 가지 있다. ‘나는 자율적이야. 내 자유 의지대로 행동하지.’ ‘나도 나름 똑똑해.’ ‘기본적으로 나는 착하고 양심적인 사람이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사람들에게 내적 안정감을 주입하라. 상대의 가치관을 복사한 듯이 똑같이 보여줘라. 상대를 좋아하고 존경한다는 사실을 보여줘라. 상대의 지혜와 경험을 높이 평가한다고 느끼게 하라. 서로 훈훈함을 느끼는 분위기를 만들어라. 상대가 당신을 따라 웃게 만들어서 라포르를 형성하라. 그런 감정이 순전히 가짜만은 아니라면 더욱 좋다. 공감능력을 발휘하고 상대의 관점 속에 들어간다면 적어도 일부는 그런 감정을 진심으로 느낄 수 있다. 이것은 충분히 자주 연습한다면 사람들의 자기평가를 긍정해주는 것이 당신의 기본자세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신을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은 긴장을 늦추는 효과를 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당신 자신의 의견과 거리를 두어보라. 당신이 그런 의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그게 내면에서 어떻게 활동하는지 지켜보라.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자유롭거나 자율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여라. 당신도 틀림없이 당신이 속한 집단의 의견을 따르고 있다. 당신도 잠재의식에 호소하는 광고의 영향을 받아 물건을 구입한다. 당신도 누군가의 농간에 조종을 당할 수 있다. 당신의 자기평가는 당신에 대해 이상화된 이미지를 만들어놓았겠지만 실제의 당신은 그만큼 훌륭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라. 다른 사람들처럼 당신도 심하게 자기몰두에 빠질 때가 있고 당신 자신의 목표에만 집착할 때도 있다. 이런 점들을 자각하고 나면 남들의 인정을 받아야 할 필요성은 느끼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자기평가’라는 환영에 붙들려 있지 말고, 당신 자신을 정말로 독립적이고 타인의 행복까지 고려하는 사람으로 만들 수 있게 노력하라.

간단요약

사람들의 방어막을 해체시키는 황금 열쇠는 인정받은 기분을 상대가 느끼게끔 해주는 것이다.

 

 

Law 08⦁Self - sabotage

자기훼방의 법칙

태도를 바꾸면 주변이 변한다

누구나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방식이 있다. 주위 사람들의 행동과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이 있다. 이게 바로 ‘태도’다. 태도는 우리 삶에 일어나는 수많은 일을 결정한다. 기본적 태도가 ‘두려움’인 사람은 매사에 부정적인 것을 본다. 기회를 붙잡지 못하게 자기 자신을 막아선다. 실수를 하면 남 탓을 하고 교훈을 얻지 못한다. 내가 적대감이나 수상함을 느끼면 함께 있는 다른 사람도 같은 감정을 느낀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환경을 만들어내서 직장생활과 연애를 망친다. 그러나 인간의 태도는 고칠 수 있다. 더 긍정적이고 열려 있고 타인에게 관대하게 태도를 바꾸면 전혀 다른 인생이 펼쳐진다. 역경 속에서도 배울 수 있고, 무에서 기회를 창조하고, 사람들을 내 쪽으로 끌어당길 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내 의지력의 한계가 어디인지, 그걸 통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반드시 탐구해봐야 한다.

우리 세대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인간이 마음의 태도를 바꿈으로써 자기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윌리엄 제임스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렌즈를 가지고 세상을 보며, 그 렌즈가 우리의 지각에 색깔을 입히고 모양을 정한다. 이 렌즈를 ‘태도’라고 했다. 스위스의 위대한 심리학자 칼 융은 태도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태도란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 또는 반응하려는 정신의 준비 상태다. 태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뭔가 확고한 것에 대해 준비되어 있다는 뜻이다. 비록 그것이 무의식적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따라서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확고한 것에 대한 선험적 지향성과 같은 말이다.”

태도와 관련해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점이 있다. 태도는 우리의 지각에 색칠을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생에 일어나는 일들을 직접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태도는 우리의 건강,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우리의 성공까지 결정한다. 태도는 자기실현적 특성이 있다.

우리가 남들을 생각하는 방식은 상대에게도 똑같은 효과를 일으킨다. 우리가 적대적이고 비판적이 되면, 상대에게도 비판적 감정이 생긴다. 우리가 방어적으로 느끼면 상대도 방어적으로 느낀다.

인간 본성을 공부하는 지금 당신이 할 일은 두 가지다. 첫 째, 당신 자신은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지, 그리고 그 태도가 당신의 지각을 어떻게 왜곡하는지 반드시 알아야 한다.

당신이 어떤 태도를 갖고 있고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은 각각 무엇인지 충분히 알고 나면 태도를 바꿀 수 있는 힘도 훨씬 커져서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다.

둘 째, 태도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태도가 주변을 바꾸는데 막대한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당신은 불변의 지능과 내재적 한계를 갖고 태어난 게 아니다. 당신의 뇌를 기적의 기관이라고 생각하라. 뇌는 나이가 한참 들어서까지도 끝없이 학습하고 발전하게끔 설계되어 있다. 뇌의 신경 연결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 즉 창의력을 개발하는 것은 당신이 새로운 경험과 아이디어에 얼마나 마음을 여느냐에 달려 있다. 문제나 실패에 부딪히면 교훈을 얻고 당신이 더 강해질 수단이라고 생각하라. 집요하게 매달린다면 당신이 돌파하지 못 할 것은 없다. 당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대부분 당신 쪽의 태도로부터 비롯되고 당신이 조종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라.

그렇기 때문에 똑같은 외부 사건과 환경이라도 두 사람에게 똑같은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없다. 완벽하게 유사한 환경에서도 사람은 모두 자기만의 세상을 살아간다. 그가 사는 세상은 주로 그가 세상을 보는 방신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니 사람이 다르면 세상도 다르다. 누구에게는 척박하고, 지루하고, 피상적인 세상이 누구에게는 풍요롭고, 재미있고, 의미로 가득하다. 누군가 살면서 겪은 재미난 이야기들을 들려주면, 사람들은 내게도 비슷한 일이 생겼으면 하고 바란다. 정작 부러워해야 할 것은 그 일을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는 그 사람의 정신적 소직이라는 사실은 완전히 망각한 채로 말이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간단 요약
태도를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

 

 

Law 09⦁Repression

억압의 법칙

내 안의 어둠을 직시한다

사람들이 겉모습 그대로인 경우는 거의 없다. 공손하고 상냥한 외피 아래로는 틀림없이 공격적이고 이기적인 충동과 불안으로 점철된 어두운 그늘이 도사리고 있다. 남들이 보지 못하게 열심히 감추고 억눌렀을 뿐이다. 그 어둠이 행동으로 새어나오면 우리를 당황시키고 해롭게 한다. 어둠이 독으로 변하기 전에 그 신호를 알아채라. 누가 공공연하게 어떤 특징(터프함, 숭고함 등)을 내보이면 정반대의 성향을 은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라. 본인의 어둠도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 그 어둠을 인지하면 무의식 속에 숨어 사는 창의적 에너지를 조종하고 활용할 수 있다. 그 어둠을 당신의 인격에 통합시키면 당신은 더 온전한 인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진정성을 발산해 사람들을 끌어당기게 될 것이다.

인간 본성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당신 성격의 어두운 면을 확인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일단 한 번 의식적인 점검을 당한 어둠은 그 파괴력을 상실한다. 당신 안의 어둠이 내보내는 신호를 감지하는 법을 배우고 나면 이 어두운 에너지를 생산적인 활동에 쏟을 수 있다. 당신의 허전함과 나약함을 공감으로 바꿀 수 있다. 공격적 충동을 가치 있는 일이나 업무에 쏟을 수 있다, 당신의 야망과 권력욕을 인정하고, 그렇게까지 남의 눈을 피해 다니거나 죄책감을 느낄 필요 없이 활동할 수 있다, 부정적 감정을 남에게 투영하고 남을 의심하는 당신의 성향을 스스로 모니터링 할 수 있다. 당신 안에 살고 있는 이기적이고 해로운 충동들을 알아볼 수 있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당신이 천사 같거나 강인한 사람은 아님을 알아볼 수 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 균형을 잘 잡을 수 있고 타인에 대한 관용도 더 커진다.

에이브러햄 링컨이나 윈스턴 처칠 같은 위인을 한번 보라. 그들은 자신의 결점과 실수를 확인하고 웃어넘길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지극히 인간적이라는 느낌을 주었고 그게 그들이 풍기는 매력의 원천이었다.

간단 요약

자신의 어두운 면을 인정하고 어두운 에너지를 생산적인 활동에 쏟아라.

 

 

Law 10⦁Envy

시기심의 법칙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다

우리 인간은 자연스럽게 서로를 비교한다. 남들이 어떤 지위에 있는지, 얼마나 존경과 관심을 받는지 끊임없이 가늠해보고 내가 가진 것과 비교한다. 누군가는 이런 욕구가 자극제가 되어 탁월한 업적을 이룬다. 또 누군가는 그런 비교가 심한 시기질투로 바뀌기도 한다. 그런 사람은 열등감과 좌절을 느끼며 은밀한 공격과 훼방을 자행한다. 시기심 때문에 그랬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초기의 경고 신호를 알아봐야 한다. 상대방이 칭찬을 늘어놓고 우정을 제안하는데 뭔가 야단스럽고 정도가 지나치다면, 혹은 선의의 농담이라는 핑계로 당신을 은근히 비꼰다면, 당신의 성공이 그에게는 좀 불편해 보인다면, 모두 시기심의 신호다. 시기심이 가장 많이 자라나는 것은 친구나 같은 분야의 동료 사이에서다. 사람들의 관심을 당신에게서 관심을 멀리 떨어뜨려 시기심을 모면하라. 끊임없는 비교가 아니라 내면의 기준을 통해 자부심을 키워라.

시기심은 속이 쓰린 감정이다. 그건 자신의 열등함을 인정하는 꼴이고, 인간에게 그것은 참기 어려운 일이다. 시기심은 인정하거나 곰곰이 생각하고 싶은 감정이 결코 아니다. 우리는 자신에게조차도 자신이 품은 시기심을 감추고 싶다. 시기심이 동기가 되어 내가 어떤 행동을 했다는 사실을 결코 알고 싶지 않다.

인간 본성의 법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가 막히게 시기심을 잘 해독하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상대가 그런 행동을 하게 된 동기를 반드시 알아내겠다는 마음으로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시기심의 신호는 알아보기가 쉽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노력을 통해 그 미묘한 차이를 식별하게 되면 시기심의 언어에 숙달할 수 있다. 이것을 하나의 지적 도전으로 생각하라. 시기심을 해독할 수 있게 되면 황당하게 당할 일이 없다.

우리의 목표는 위험해지기 전에 이렇게 더 날카로운 형태의 시기심의 신호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시기심이 새어나올 때의 신호를 알아두는 것, 사람들 중에 시기심을 더 잘 발동시키는 유형을 알아두는 것, 능동적 시기심을 유발할 수 있는 환경이나 행동을 알아두는 것이다.

시기심에서 출발한 행동을 모두 다 알아볼 수는 없다. 사람들은 시기심을 숨기는데 너무나 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 가지 해독법을 모두 활용한다면 시기심을 감지할 확률은 더 높아질 것이다.

누군가 시기심 때문에 당신을 공격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면, 최선의 전략은 당신의 감정을 제어하는 것이다. 상대가 공격해오는 원인이 시기심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감정을 제어하기가 훨씬 쉽다. 시기하는 사람은 당신의 과잉반응을 재료 삼아 다시 당신을 비난하고, 그의 행동을 정당화하면서, 당신을 더 많은 극적 상황으로 끌고 들어간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침착함을 유지하라. 가능하다면 물리적으로도 거리를 좀 유지하라. 상대를 해고하든지, 연락을 끊든지, 가능한 수단은 뭐든 강구하라. 혹시라도 당신이 그 관계를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지 마라. 당신이 넓은 마음으로 그런 시도를 하는 순간, 상대의 열등감은 오히려 더 심해질 것이다. 그들은 다시 공격해올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가 사람들 앞에서 당신을 공격하거나 뒤에서 험담을 퍼뜨리지 못하게 당신 자신을 보호하라. 하지만 복수를 꿈꾸지는 마라. 시기심을 가지 사람은 비참한 상태다. 최선의 전략은 더 이상 당신에게 상처를 줄 방법도 없는 그가 본인이 만든 독약을 삼키며 서서히 고통 받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것이다.

현실적이 되기로 하자. 내 안에서 나를 남과 비교하려는 충동 자체를 제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닫자. 이것은 사회적 동물로서 우리의 본성에 너무 깊이 배어 있는 부분이다. 대신에 우리가 염원해야 할 사항은 이렇게 자꾸 비교하려는 성향을 서서히 뭔가 긍정적이고 생산적이고 친사회적인 것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머릿속에서 계속 비교가 진행되는 것을 우리가 중단시킬 방법은 없다. 따라서 그 과정이 뭔가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것을 향하게끔 방향을 재설정하는 것이 최선이다. 더 많은 것을 성취한 사람을 해치거나 그로부터 무언가를 뺏어 오려고 하는 대신에 나 자신을 그 수준으로 키우려고 열망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시기심은 내가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이와 관련해 목적의식이 있으면, 즉 인생의 소명을 느끼면, 시기심을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확고한 내 인생과 내 계획이 기운을 불어넣기 때문에 거기에 집중하게 된다. 스쳐가는 남들의 관심이 아니라 내 잠재력을 실현하는 데서 만족을 느끼게 된다. 비교의 필요성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자긍심은 남이 심어주는 게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다.

간단 요약

사람들의 시기심 신호를 감지하여 공격을 사전에 예방하자.

그리고 내 안에 시기심을 인정하고 내면의 기준을 통해 자부심을 키우자.

 

 

Law 11⦁Grandiosity

과대망상의 법칙

나의 한계를 현실적으로 평가한다

인간에게는 자기 자신을 높이 평가하고 싶은 깊은 욕구가 있다. 하지만 나의 선량함, 위대함, 똑똑함에 대한 평가가 현실과 너무 괴리되면 과대망상이 된다. 우리는 내가 우월하다고 상상한다. 종종 조그만 성공으로도 우리의 타고난 과대망상은 위험한 수준까지 높아질 수 있다. 스스로 내린, 나에 대한 높은 평가가 이제는 결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내가 성공하는 데 기여했던 행운의 역할이나 남들의 공을 잊어버린다. 이제는 손대는 것마다 성공할 거리고 착각한다. 우리는 현실 감각을 잃어버리고 비이성적인 의사결정을 내린다. 성공이 종종 지속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당신 자신이나 타인에게서 과대망상의 신호가 없는지 찾아보라. 본인의 계획이 긍정적 결과를 낼 거라고 지나치게 확신하거나, 비판을 당했을 때 과도하게 예민한 반응을 보이거나, 모든 형태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 등이 바로 그런 신호다. 늘 당신 자신이나 당신의 한계를 현실적으로 평가함으로써 과대망상의 유혹에 대처하라. 훌륭하다는 감정은 오직 일이나 업적, 사회에 대한 기여와 관련해서만 느끼도록 하라.

평소 우리는 자기 자신을 현실보다 약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 점에서는 내가 남보다 우월하다’고 느끼고 싶은 깊은 욕구가 있다. 그 어떤 점은 지능일 수도 있고 미모나 매력, 인기, 숭고함일 수도 있다. 이런 성향은 긍정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어느 정도의 자신감은 있어야 우리가 도전을 하고, 스스로 한계라고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고, 그 과정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성공이든 일단 한 번 경험하고 나면, 즉 개인이나 집단으로부터의 큰 관심을 받거나 승진을 하거나 프로젝트를 위한 자금 모집에 성공하고 나면, 그 자신감이 너무 빠르게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되면 자기평가와 현실 사이의 격차는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살면서 우리가 겪는 모든 성공에는 어느 정도의 행운이나 타이밍, 타인의 기여 등이 반드시 작용한다. 거기까지 이끌어준 선생님들이 있을 수도 있고, 그저 새로운 것을 바라는 대중의 변덕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잊고, 궁극적으로는 내가 잘나서 성공한 것이라고 착각하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준비가 되기도 전에 내가 새로운 도전을 감당할 수 있다고 단정하기 시작한다. 어쨌거나 사람들이 그토록 많은 관심을 줬다는 건 내가 훌륭하다는 것을 인증해준 셈이고, 나는 계속 그런 인정을 받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가 손대는 것마다 성공할 수 있다고, 이제 나의 능력은 다른 매체나 분야에까지 마법처럼 옮겨갈 수 있다고 상상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고객이나 관객보다 내 자존심과 판타지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된다. 나를 도와주던 사람들과 멀어지고 그들을 내가 사용할 도구로 보게 된다. 그리고 혹시라도 실패하면 남들을 탓한다. 성공에는 거부할 수 없는 어떤 매력이 있고, 그 매력은 우리의 마음을 흐려놓는 경향이 있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다. 어떤 형태로든 성공을 경험하고 나면 그 요인을 분석하라. 분명히 거기에 들어 있을 행운이라는 요소와 그 행운에 작용했던 멘토를 비롯한 남들의 역할을 눈으로 확인하라. 이렇게 하면 당신의 능력을 과장하려는 성향을 좀 누구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성공에는 무사안일주의가 따라온다는 사실을 상기하라. 그것은 일보다는 자신이 받는 관심 자체가 더 중요해지고, 구식 전략을 계속 반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성공했다면 경계심을 오히려 더 높여야 한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나 시작할 때마다 칠판을 깨끗이 지우고 0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라. 박수갈채 소리가 커질수록 더욱더 거기에 신경 쓰지 않도록 하라. 당신이 해낼 수 있는 한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포용하고, 기존에 갖고 있는 것으로 최선의 결과를 내라. 클수록 더 좋다는 말을 믿지 마라. 가진 힘을 모으고 집중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일 때가 많다. 커지는 우월감에 남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조심하라. 당신에게는 아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두 발을 땅에 굳건히 내려서 마약 같은 성공의 영향력을 상쇄하라. 이렇게 서서히 유기적으로 쌓아올린 힘이 더 현실적이고 더 오래간다. 기억하라. 거창한 날개를 달고 너무 높이 오르는 자를 신들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인간 본성의 법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세 가지다.

첫째, 과대망상이라는 현상 자체를 이해해야 한다. 왜 그게 인간 본성에 그토록 깊게 박혀 있고, 왜 그 어느 때보다 요즘 세상에 과대망상에 빠진 사람을 더 많이 보게 되는지 알아야 한다.

둘째, 과대망상의 신호를 알아보고 그런 신호를 보이는 사람들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알아야 한다.

셋째가 가장 중요한데, 당신 안에 있는 과대망상의 신호를 알아봐야 한다. 당신의 과대망상적 성향을 통제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 에너지를 뭔가 생산적인 쪽으로 돌릴 수 있을지 알아야 한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내가 중요한 존재라고 느끼고 싶다. 날 때부터 조그만 존재라는 사실에 항의하고, 자아인식을 확장하고 싶다. 서너 살 때 무의식적으로 경험한 것들이 평생 나를 괴롭힌다. 우리는 어느 순간 나의 작음을 인식했다가 다음 순간 또 그것을 부정하려고 한다. 그래서 나의 우월성을 상상할 방법을 찾게 된다.

과대망상적인 사람은 일반적으로 허풍이 많다. 이들은 뭐든 본인이 한 일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자신의 일과 별 관련이 없는 것까지도 말이다. 이들은 과거의 성공을 지어낸다. 본인에게 선견지명이 있다, 어떤 트렌드를 미리 봤다, 어떤 사건을 예견했다고 말한다. 그중에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과대망상이 심한 유형은 보통 교감능력이 낮다. 그들은 남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는다. 본인에게 관심이 쏠려 있지 않으면 먼 산을 보거나 초조함에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한다. 스포트라이트가 본인에게 올 때만 그들은 생동감을 띤다. 이들은 남들을 자신의 연장선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남들을 본인의 계획에 이용할 혹은 관심을 얻기 위해 활용할 도구로 본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과대망상적인 사람 특유의 비언어적 행동을 보인다. 제스처가 크고 극적이다. 회의를 하면 혼자 공간을 크게 차지한다. 남보다 목소리가 크고 말소리가 빠르며 남들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다.

당신 자신을 알면 한계를 받아들일 수 있다. 당신은 세상의 수많은 사람 중에 한 명일 뿐이다. 남보다 우월해야 할 당연한 이유는 없다. 당신은 신도 아니고 천사도 아니며, 나머지 사람들과 똑같이 결점을 가진 인간이다. 주위 사람을 당신 뜻대로 조종할 수는 없다는 것, 그 어떤 전략도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 인간의 본성은 예측을 불허한다. 이런 점을 알고 한계를 인정할 때에만 균형감각을 가질 수 있다. 훌륭함은 일에서만 추구하라. 합리적인 범위 이상으로 스스로를 더 높이 평가하고 싶어지면 바로 이런 자각이 당신을 다시 땅으로 끌어내리는 중력 매커니즘이 되어줄 것이다. 당신의 본성에 꼭 맞는 행동과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방향을 알려줄 것이다.

간단 요약

늘 당신 자신이나 당신의 한계를 현실적으로 평가함으로써 과대망상의 유혹에 대처하라.

 

 

Law 12⦁Gender Rigidity

젠더 고정관념의 법칙

나에게 맞는 성 역할을 창조한다

우리는 누구나 남성적 속성과 여성적 속성을 갖고 있다. 일부는 유전이고, 일부는 반대 성의 부모가 깊은 영향을 미친 것이다. 하지만 사회에서는 일관된 정체성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속성들을 억누르고 우리에게 기대되는 남성적 역할 혹은 여성적 역할에 과도하게 동화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대가가 따른다. 우리는 성격을 구성하는 귀중한 한 축을 상실한다. 사고와 행동 방식이 경직된다. 반대 성의 사람들을 대할 때 나의 판타지나 적대감을 투영함으로써 관계에 문제가 생긴다. 우리는 이렇게 잃어버린 남성성이나 여성성을 자각하고 거기에 서서히 재접속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창의력이 방출될 것이며, 당신의 사고는 더 유연해질 것이다. 바닥에 있는 남성성이나 여성성을 끄집어 올림으로써 당신은 더욱더 진정한 당신 자신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남들이 기대하는 성 역할을 연기하지 말고, 당신에게 맞는 성 역할을 창조하라.

우리는 모두 수많은 면을 가진 온전한 존재로 태어난다. 우리에게는 반대 성의 자질도 있다. 그것은 유전적인 것일 수도 있고 반대 성을 가진 부모의 영향일 수도 있다. 우리의 성격에는 자연히 여러 층의 깊이와 차원이 있다. 연구에 따르면 사내아이의 경우 어릴 때는 오히려 여자아이보다 더 감성적이라고 한다. 더 높은 수준의 공감과 감수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여자아이들도 모험적이고 탐험적인 정신을 자연스레 가지고 있다. 강력한 의지도 갖고 있어서 주변 환경을 바꾸는 데 그 의지를 발휘하곤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세상에 일관된 정체성을 보여줘야 한다. 특정한 역할을 연기해야 하고 특정한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타고난 자질들을 쳐내고 다듬어야 한다. 사내아이들은 풍부한 감성을 상실하고 앞서가려고 투쟁하는 틈에 타고난 공감능력을 억제한다. 여자아이들은 본인의 적극적인 측면을 희생해야 한다. 친절하게 대하고, 미소를 짓고, 깍듯한 태도를 취하며, 늘 자신보다 남의 감정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여자도 상사가 될 수 있지만 다정하고 유연해야지, 너무 공격적이여서는 안 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가진 다차원적인 측면은 계속해서 줄어든다. 우리는 나의 문화와 시대가 기대하는 역할에 순응한다. 그러면서 내 성격 속의 귀중하고 풍요로운 부분을 상실한다. 때로 우리는 우리보다 덜 억압된 사람들을 마주쳤을 때에만 이런 사실을 깨닫고 그들에게 큰 매혹을 느낀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다. 특정한 성 역할에 지나치게 몰입하게끔 당신을 장악하고 있는 그 경직된 태도를 놓아줘라. 사람들의 기대를 거슬러 남성성과 여성성 사이의 그 중간 영역을 탐험한다면 힘을 가질 수 있다. 당신의 성격에서 잃어버리거나 억압해온 더 단단한 측면 혹은 더 부드러운 측면으로 돌아가라.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더 큰 공감능력을 개발하거나 좀 덜 깍듯해지는 법을 배워서 당신의 레퍼토리를 확장하라. 문제에 직면하거나 남들의 저항에 부딪혔을 때 다른 방식으로 대응하는 법을 연습하라. 평소에 방어적이라면 공격을 해보고, 반대의 경우라면 역시 뒤집어서 해보라. 사고과정에서 분석적인 면과 직관적인 면을 섞어 더 창의적이 되는 법을 배워라.

인간 본성의 법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세 가지다.

첫째, 타인에게서 드러나는 아니마나 아니무스를 관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특히나 그들의 이성관계를 유심히 보아야 한다. 그들이 이런 상황에서 어떤 행동과 패턴을 보이는지 유심히 관찰하면 평소에는 허락되지 않는 그 사람의 무의식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러면 상대의 억압된 부분이 보일 테고, 이 지식을 활용하면 아주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지나치게 남성적이거나 여성적인 사람을 보면 특별히 더 관심을 기울여라. 그 표면 아래에는 남자의 경우 아주 여성적인 이니마, 여자의 경우 아주 남성적인 아니무스가 도사리고 있을 게 분명하다.

우리가 두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내안에서 작동하는 투영 방식을 인식하는 것이다. 투영은 우리 삶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고 원한다고 그만둘 수 있는 행위도 아니다. 왜냐하면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투영이 없다면 누군가에게 깊은 관심을 기울일수도, 상대에게 매혹되거나 사랑에 빠질 수도 없다. 하지만 일단 이성과의 관계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그런 투영을 거둬드릴 수 있는 힘과 자각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과정에서 정말로 두 사람이 얼마나 안 맞는지 혹은 잘 맞는지 깨달을 수도 있다. 당신이 어떤 유형의 자질을 타인에게 투영하는지, 당신 자신의 패턴은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 한다.

세 번째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내안에 억압되고 개발되지 못한 여성적 혹은 남성적 자질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이다. 반대 성과의 관계를 잘 살펴보면 당신 안의 아니마 혹은 아니무스를 얼핏 엿볼 수 있다. 당신이 남자에게서 찾으려고 하는 그 단호함 혹은 여자에게서 찾은 공감은 실제로는 당신 안에서 개발해 여성적 혹은 남성적 색채로 끄집어내야 하는 부분이다. 간단히 말해 당신 안에 있으나 억압된 특징들을 당신의 일상적 인격 속으로 통합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면 그 특징들은 더 이상 빙의라는 형태로 무의식적 혹은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 특징들은 이제 당신의 일상적 자아의 일부가 될 것이며, 사람들은 당신에게서 진정성을 느낄 테고 당신에게 끌릴 것이다.

남성적 사고는 현상을 구분하는 기준에 초점을 맞추고 카테고리를 나누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사물에 표신을 붙이기 위해 사물들 사이의 차이점을 찾는다. 기계처럼 사물을 분해하고 전체의 일부인 개별 부분을 분석한다. 남성적 사고 과정은 일차원적이고, 사건을 구성하는 여러 단계의 순서를 알아내려고 한다. 사물을 감정과 분리해서 외부의 관점에서 보는 것을 선호한다. 남성적 사고방식은 전문화를 선호하고 특정한 것에 깊이 파고들려고 한다. 여러 현상의 질서를 발견하면 기쁨을 느낀다. 책이든 사업체이든 정교한 구조를 세우는 것을 좋아한다.

여성적 사고는 지향점이 다르다. 여성적 사고는 전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좋아한다. 각 부분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전체적 형태에 초점을 맞춘다. 인간 집단을 볼 때는 서로의 관계를 알고 싶어 한다. 현상을 점검하기 위해 시간을 멈춰놓는 것이 아니라, 하나가 자라서 어떻게 다른 것이 되는지 그 유기적 과정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퍼즐을 풀 때 여성적 스타일은 여러 측면을 곰곰이 생각해서, 패턴을 흡수하고, 시간이 지나서 답이나 해결책이 저절로 나타나게 하는 것을 선호한다. 마치 요리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형태의 사고는 사물들 사이의 숨겨진 연관성이 직관적 각성을 통해 갑자기 눈에 보이는 것과 같은 통찰을 만들어낸다. 전문화가 아니라 여러 분야나 여러 형태의 지식이 서로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에 관심을 갖는다.

비즈니스 분야에서 보면 두 가지 사고 스타일을 섞었던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워런 버핏이었다. 그는 어느 기업을 살 것인지 고민할 때 회사를 여러 요소로 분해해 개별 요소를 통계적으로 분석하기도 했지만, 사업의 큰 그림에 대한 감을 잡으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직원들 사이의 관계는 어떻고 꼭대기에 있는 사람이 주입하는 집단정신은 어떤 것인지 같은 측면 말이다. 대부분의 사업가들이 무시하는 무형적인 것들을 많이 따졌다. 그는 기업을 안과 밖에서 모두 들여다보았다.

거의 모든 사람은 사고 스타일 중 어느 한쪽으로 기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반대쪽으로 몸을 좀 더 기울여서 균형을 잡는 것이다, 내가 좀 더 남성적인 쪽이라면 들여다보는 분야를 좀 더 넓혀서 서로 다른 형태의 지식들 간의 관계를 찾아보면 좋다. 해결책을 찾을 때는 좀 더 많은 가능성을 고려하고, 숙고 과정을 좀 더 많은 시간을 들이고, 더 자유로운 연상을 해본다. 많은 숙고 후에 나타나는 ‘직관’을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사고 과정에서 감정의 가치를 깎아내리지 않아야 한다. 흥분과 영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진부하고 죽은 생각만 나올 수도 있다.

사고 스타일이 여성적인 쪽으로 치우쳐 있다면 초점을 맞춰서 구체적인 문제를 파고드는 능력이 필요하다. 조사 범위를 넓히거나 멀티태스킹을 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필요가 있다. 문제의 한 가지 측면만을 파고드는 데서도 기쁨을 찾아야 한다. 인과관계를 재구성하고 계속해서 다듬어나간다면 사고의 깊이가 더해질 것이다.

행동과 관련해서는 남성적 성향은 앞으로 전진해서 상황을 탐구하고, 공격하고, 정복하는 것이다. 그 중간에 장애물이 있다면 밀고 나가려고 한다. 이런 욕망을 잘 드러낸 표현이 바로 고대의 장군 한니발이 남긴 말이다. “길을 찾지 못하면 만들겠다.” 공격적이고 위험을 감수하는 데서 즐거움을 얻는다. 독립성을 유지하며 작전을 짤 여지가 있는 것을 선호한다.

문제가 생겼거나 행동을 취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여성적 스타일은 먼저 임박한 상황에서 한 발 물러나 여러 선택지를 더 깊이 고민하는 것을 선호한다. 충돌을 피하고, 관게를 부드럽게 만들며, 전투 없이 이길 방법을 자주 모색한다. 때로 최선의 행동은 마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상황이 펼쳐지는 것을 지켜보고 더 잘 이해하려고 한다. 적이 공격적 행동을 통해 자멸하게 내버려둔다.

공격적이고 남성적인 성향이 있는 사람은 어떤 행동을 취하기 전에 한 걸음 물러서는 훈련을 하면 균형이 잡힐 것이다. 여성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다양한 정도의 충돌과 대결에 익숙해지는게 최선이다. 그래야 충돌이나 대결을 회피할 때도 두려움에서가 아니라 전략적 선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연구가 보여준 것처럼 남자들은 실수를 저지르면 외부를 살피면서 탓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이나 환경을 찾는다. 남자들의 자아에 대한 생각은 본인의 성공과 깊이 연계되어 있고, 실패했을 때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기 힘들다. 반면에 인생에서 무언가에 성공하면 온전히 본인의 공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되면 행운이라는 요소나 타인의 도움을 보지 못하고 과대망상적 경향을 강해진다. 마찬가지로, 문제가 있으면 남성적 스타일은 스스로 해결하려고 한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나약함을 인정하는 게 된다. 대체로 남자들은 본인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며 본인의 능력에 자신감을 내비치는데 여러 여건으로 감안해보면 그것이 정당하지 않을 때도 많다.

여성의 경우는 정반대다. 무언가에 실패하면 여자들은 내면을 들여다보며 자기 자신을 탓하는 경향이 있다. 무언가에 성공하면 본인을 도와주었던 타인들의 역할을 더 잘 보는 편이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내가 부족하다는 신호라고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본인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고 남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과대망상적 자신감을 덜 느낀다.

남성적 스타일을 가진 사람은 학습과 자기계발이라는 측면에서는 거꾸로 생각하는 게 최선이다. 즉 실수를 했을 때는 내면을 보고, 성공했을 때는 외부를 보라. 도움이나 피드백을 요청하는 것을 겁내지 마라. 오히려 그것도 습관화하라. 자기평가를 낮춰라. 당신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큼 훌륭하거나 능숙하지 않다. 이렇게 하면 ‘실제로’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여성적 스타일을 가진 사람은 무언가에 실패하거나 실수를 저지른 후 심하게 자책하기 쉽다. 자기성찰이 너무 심해질 수 있고, 성공을 남의 덕으로 돌리는 경향이 과도해질 수 있다. 여자들은 남자보다 낮은 자존감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더 많은데, 이는 타고난 것이 아니라 습득된 것이다. 여자들은 남들의 비판적 목소리를 내 것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실패나 비난에서 너무 깊은 상처를 받아 뭔가를 시도하는 것조차 겁내게 되어서는 안 된다. 남성적인 자기확신을 좀 더 가질 필요가 있다. 일상생활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도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거나 그런 반응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하라. 좀 더 거리를 두고 바라보라. 이렇게 하면 모든 걸 지나치게 개인적인 문제로 연결 짓지 않는 훈련이 될 것이다.

수컷 침팬지와 마찬가지로 남성적 스타일은 집단 환경에서 리더가 필요하다. 스스로 리더가 되기를 열망하거나 혹은 매우 충성스러운 추종자가 되어 권력을 얻으려고 한다. 남자들은 지위를 매우 의식하며 집단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매우 잘 알고 있다. 남성적 리더십 스타일은 명확한 목표를 정하고 거기에 도달하려고 한다. 어떤 식으로 얻었든 결과를 강조한다.

여성적 스타일은 집단의 사기를 유지하고 인간관계를 매끄럽게 가져가며 개인 간의 격차를 줄이는 데 더 초점을 둔다. 더 공감적이고, 각 구성원의 감정을 고려하며, 의사결정 과정에 구성원들을 더 많이 참여시키려고 한다. 결과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결과를 달성하는 방법, 즉 과정도 똑같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라. 우리는 타고난 본성상 타인에 대한 끌림이라는 형태로 여성적 혹은 남성적인 것에 더 가까이 가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내적으로도 그와 같은 것을 바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사내다운 남자에게서 찾을 수 있는 가장 큰 아름다움은 여성스런 면이다.

여성스런 여자에게서 찾을 수 있는 가장 큰 아름다움은 사내다운 면모다.

-수전 손택

간단 요약

남들이 기대하는 성 역할을 연기하지 말고, 당신에게 맞는 성 역할을 창조하라.

 

Law 13⦁Aimlessness

목표 상실의 법칙

 

인생의 소명을 발견하고 지침으로 삼는다

본능을 통해 위험을 피할 수 있는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은 의식적 결정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커리어의 방향을 결정하거나 인생의 불가피한 좌절에 대처할 때 우리는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서는 전체적인 방향이 결여돼 있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는 기분에 따라 혹은 남들의 의견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린다. ‘나는 어쩌다가 이 일을 하게 되어 여기까지 왔을까?’ 그렇게 늘 표류만 하다가는 막다른 골목에 닿을 수도 있다. 그런 운명을 피하는 방법은 목적의식을 개발하는 것이다. 내 인생의 소명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그것을 지침 삼아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우리는 나 자신을, 내 취향, 내 성향을 더 깊이 알아야 한다. 우리는 나 자신을 신뢰하고, 어떤 전투, 어떤 우회로를 피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의구심이 드는 순간, 혹은 실패의 순간조차 목적이 있다. 바로 우리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에너지와 방향성을 가진다면 우리의 행동에는 누구도 막지 못할 힘이 생길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복잡하다. 우리는 세상에 일관되고 성숙한 얼굴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그러나 속으로는 내가 수많은 기분에 좌우되고 주어진 환경에 따라 여러 가지 얼굴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는 순간순간의 기분에 따라 실용적일 수도, 사교적일 수도, 내성적일 수도, 비이성적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내면의 혼돈은 사실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다. 우리는 일관되게 행동하지 못하고 삶의 방향이 결여되어 있다. 우리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기분에 따라 우리는 어떤 경로든 선택할 수 있다. 왜 저 길이 아니고 이 길인가? 우리는 나에게 정말로 중요하다고 느끼는 목표에 도달하거나 나의 잠재력을 실현하지 못한 채 평생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닌다. 명확함과 목적성을 느끼는 순간들은 너무나 짧게 스쳐간다. 목표 상실의 고통을 달래기 위해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중독에 빠지거나 새로운 형태의 쾌락을 쫓거나 몇 달 혹은 몇 주 동안 흥미를 일으킬 어떤 대의에 몰두할지도 모른다.

이 딜레마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더 높은 목적의식을 찾는 것, 부모나 친구, 동료의 방향이 아닌 나 자신의 방향을 제시할 임무를 찾는 것이다.

“우리는 내가 왜 만들어졌는지 이유를 찾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내 인생의 과업, 나의 소명을 발견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걸 발견하고 나면 온 힘을 다해 내 모든 능력을 쏟아부어 그 일을 해야 합니다.” 이 ‘인생의 과업’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가 가진 기술, 재주, 성향이다. 그게 우리의 소명이다.

살아야 할 이유를 가진 사람은 과정이 어떻든 참아낼 수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

앞으로 남은, 가야 할 길을 너무 많이 생각한다면 거기에 압도되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지 말고 계속해서 약간은 긴박한 심정을 유지하면서도 그 과정에 놓은 작은 목표들에 집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 자신의 초조함을 조절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압박감에 얼어붙지는 않으면서도 계속해서 전진하고 개선해나갈 수 있다. 이것은 살아가는 데 중요한 기술이다.

인간 본성의 법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다.

첫째, 목적의식이 인간의 삶에서 수행하는 중요한 역할을 인식해야 한다.

비교적 높은 목적의식을 가진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 그들의 열정에 전염돼라. 이들은 당신까지 더 높은 위치로 끌어올려줄 것이다.

우리가 두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당신’의 목적의식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목적의식과 관계를 최대한 깊게 만들어 목적의식을 더 고양시켜야 한다.

어떤 경우이든 당신의 개성 그리고 그에 따른 독창성을 최대한 많이 개발하라. 대체 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라. 당신이라는 사람은 세상에 하나뿐이다. 당신과 똑같은 기술과 경험을 가진 사람은 없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진정한 자유이며 궁극의 힘이다.

간단 요약

수많은 기분과 환경에 따라 휘둘리지 말고,

당신의 목적의식을 찾아라.

인생의 소명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그것을 지침으로 삼아라.

 

Law 14⦁Conformity

동조의 법칙

집단의 영향력에 저항하라

우리 성격의 여러 측면 중에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잘 모르는 면이 있다. 바로 사회적 인격이다. 집단 속에서 활동할 때 우리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집단 환경에서는 무의식적으로 남들이 하는 말, 하는 행동을 흉내 낸다. 생각도 달라진다. 무리에 녹아드는 것을 더 걱정하고 남들이 믿는 것을 믿는다. 감정도 달라진다. 집단의 분위기에 감염된다. 위험을 더 잘 감수하고, 비이성적인 행동도 더 쉽게 한다. 다들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인격이 내 인격을 압도할 수도 있다. 남들의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듣고 그들의 행동에 나를 맞추면서 개성이나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간다. 유일한 해결책은 집단 환경에서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이 되는지를 잘 이해하고 그에 대한 자각을 키우는 것뿐이다. 이런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 사회생활을 탁월하게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집단에 잘 녹아들고 고차원적인 협업이 가능하면서도, 독립성과 이성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집단 형태로 활동할 때 사람들은 정교한 사고나 깊은 분석을 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오직 어느 정도의 차분함과 객관성을 가진 개인만이 할 수 있다.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감정적이 되고 흥분한다. 그들의 가장 큰 욕망은 집단정신에 녹아들어 가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사고는 극히 단순해진다. 선이냐 악이냐, 우리 편이냐 적이냐. 이들은 자신이 받아들이기 쉽게 문제를 단순화시키려고 자연스럽게 일종의 권위를 찾게 된다.

우리는 남들과 함께 있으면 자연히 저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한 불안을 느낀다. 우리는 집단에 녹아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 그래서 내 생각과 신념을 집단의 교리에 맞추기 시작한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집단 구성원들의 외모와 언어 표현과 생각을 흉내 낸다. 우리는 나의 지위와 위계질서에서의 서열에 전전긍긍한다. ‘나도 남들만큼 존중을 받고 있나?’ 이는 우리 본성의 원시적 부분으로, 지위에 대한 이런 집착은 우리와 친척관계에 있는 침팬지들도 갖고 있다. 우리는 어린 시절에 형성된 패턴에 따라 집단 환경에서 평소보다 더 수동적이 되거나 더 공격적이 된다. 나의 성격에서 덜 발달된 부분이 어느 쪽인지 드러나는 셈이다.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목표는 간단하다. 집단으로부터 나를 분리시킴으로써 진짜 독립적 사고가 가능한 정신적 여유 공간을 만드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리더를 맹목적으로 숭배하지 않게끔 스스로를 훈련해야한다. 리더를 신격화할 필요성 때문이 아니라 그의 업적 때문에 리더를 존경해야 한다.

우리는 인간 본성을 단순히 인정하는 데서 그칠 게 아니라 생산적인 방향으로 이끌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지위를 얻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가졌다는 사실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니 이 부분을 부정하지는 말자. 대신에 뛰어난 업적을 통해 그런 지위와 인정을 얻기로 하자. 집단에 속하고 싶고 나의 충성심을 증명하고 싶은 욕구는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 욕구들을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소하자.

그 무엇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집단 지성’이다. 여기에는 집단이 우리의 사고나 감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철저한 이해도 포함된다. 이런 자각을 통해 우리는 더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 인간 집단이 집단이라는 공간을 더 쉽게 헤치고 나아가기 위해서 어떤 법칙과 역학관계를 가지고 움직이는지 이해하는 것 역시 집단 지성에 포함된다. 이 정보를 알고 있으면 우리는 거기에 섬세한 조절 과정을 적용할 수 있다. 겉으로는 집단에 잘 녹아드는 뛰어난 사회인이면서, 속으로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거리와 정신적 공간을 확보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독립성을 유지할 때 우리는 나의 정체성과 상황에 맞는 인생의 여러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이런 지성을 습득하려면 위에서 설명한 사회의 힘의 두 가지 측면을 공부하고 마스터해야 한다. 하나는 집단이 우리에게 미치는 개별 영향이고, 다른 하나는 집단이 거의 항상 빠져드는 패턴 내지는 역학이다.

인간 본성의 법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다.

첫째, 규모가 어떠하든 집단을 상대할 때는 당신 자신을 완벽히 관찰하라. 당신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큼 독립성을 갖추고 있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본 가정으로 삼아라.

우리의 목표는 자존감을 높여서 집단의 영향력이 나에게 덜 침투하게 만드는 것이다. 당신을 유일무이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것들, 즉 당신의 취향, 가치관, 경험 등에 관해 강한 확신을 가진다면 집단의 영향력에 저항하는 것이 더 쉬워질 것이다. 나아가 스스로에 대한 평가의 기초를 당신의 일과 업적에 둔다면 끊임없이 남의 승인과 관심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을 것이다.

두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당신이 속한 혹은 당신이 상대하는 집단을 완벽히 관찰하는 것이다. 당신 자신을 낯선 부족의 이상한 습성을 연구하는 인류학자라고 생각하라. 해당 문화를 깊이 들여다보고, 내부에서는 어떻게 느껴지는지 보고, 그 느낌을 당신이 이전에 속했거나 상대했던 다른 집단과 비교해보라. 그렇게 함으로써 사회의 힘이 집단을 하나의 조직으로 만드는 과정을 포착하라. 전체가 부분보다 위대해지는 과정을 보라.

개인에게서는 광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집단, 파벌, 국민, 시대는 광기가 지배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간단 요약

표면적으로는 집단에 잘 녹아들면서 집단에 영향력으로부터는 나를 보호하자.

늘 집단이 미치는 영향력을 자각하고 독립적 사고를 하기 위해 노력하자.

 

 

Law 15⦁Fickleness

변덕의 법칙

권위란 따르고 싶은 모습을 연출하는 기술이다

세대에 따라 리더십 스타일은 바뀔 수 있어도, 한 가지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대중은 늘 권력자에게 이중적 감정을 품는다.’ 대중은 권력자를 따르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자유롭기를 바란다. 보호받고 번영을 누리고 싶으나, 희생은 바라지 않는다. 왕을 숭배하면서도, 그를 죽이고 싶다. 당신이 집단의 리더라면 당신이 약해진 것처럼 보이거나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순간, 사람들은 언제든 당신에게 달려들 준비가 되어 있다. 저들의 충성심을 얻으려면 저들과 평등하게 보이거나 친구처럼 보여야 한다는 이 시대의 편견에 넘어가지 마라. 그랬다가는 당신의 힘을 의심하고, 동기를 수상쩍게 여기고, 티내지 않고 경멸할 것이다. 권위란 겉으로 힘 있고, 정당하고, 공정한 모습을 연출하는 섬세한 기술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당신이 저들을 위해 봉사하는 리더라고 인식시켜야 한다. 리더가 되고 싶은 사람은 일찍부터 이 기술을 마스터해야 한다. 일단 한번 신뢰를 얻고 나면 저들은 상황이 아무리 나빠져도 리더인 당신 곁을 지킬 것이다.

이 점을 꼭 알아야 한다. 더 이상 우리 중에 강력한 왕이나 왕비는 없지만 우리는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마치 우리가 왕족인 것처럼 행동한다. 내가 이뤄놓은 게 실제로 아무리 하찮더라도 내 업적은 당연히 존경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내 과거 이력이 보잘 것 없고 내가 대단한 생각을 투자한 게 아니더라도 남들은 내 아이디어와 프로젝트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들은 내 커리어를 도와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진지하고 정말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이 이런 생각을 당연시하는 이유 중에는 우리가 했던 모든 일이 대단한 일인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으니 말이다. 또 일부는 우리의 일상생활을 장악하고 있는 여러 기술이 우리를 망쳐놓은 탓일 수도 있다. 실질적인 노력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기술은 우리에게 막강한 힘을 주었다. 우리는 그런 힘을 당연시하게 됐고, 삶의 모든 게 아주 빠르고 쉬워야 한다고 당연히 기대하게 됐다.

이유가 뭐였든 간에 그런 생각이 우리 모두를 감염시켰다. 우리는 이것을 저주로 여겨야 한다.

우리는 실제로 내 위치가 공고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주위 사람들, 내가 이끄는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방어적이 되거나 느긋하게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온전히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우리가 타인으로부터 받는 모든 것은, 특히나 그들의 존경은, 노력으로 얻어야 한다.

인간은 우리의 감정 경험이 단순하다고 믿고 싶어 한다. 누구는 사랑하고, 누구는 미워한다. 이 사람은 경외하지만, 저 사람에게는 경멸밖에 못 느낀다. 하지만 정말로 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가 단순한 감정을 느끼는 경우는 극히 드물며, 거의 늘 양면적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인간 본성의 근간을 이루는 ‘팩트’다. 우리는 사랑하면서 동시에 증오할 수 있고, 존경심과 시기심을 동시에 느낄 수도 있다.

이런 양면성은 어린 시절에 시작되어 평생의 패턴이 된다.

우리는 나보다 위에 있는 사람을 두려워하고 심지어 경멸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권력자가 그의 지위에 따른 특권을 이용해 더 많은 권력을 축적하고 본인의 배를 불리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얼마든지 흔히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한 의지를 가진 동물이어서, 리더를 따를 때 수반되는 의존성과 열등한 지위가 불편하다. 우리는 내 의지를 발휘하고 자율성을 느끼고 싶다. 우리는 리더가 누리는 사람들의 인정과 그 특권을 은밀히 시샘한다. 이런 이중적 감정은 리더가 그 지위를 남용하거나 감수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거나 무능할 경우 부정적인 방향으로 기울어진다. 리더가 아무리 힘이 있고 우리가 아무리 그를 존경해도 표면 아래에는 늘 이런 이중성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의 충성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그 변덕스러움으로 악명이 높다.

권력자들은 직원들이 보내는 미소, 회의에서 받는 박수갈채만 보려 하는 경향이 있고, 그런 응원을 진짜라고 착각한다. 권력자들은 사람들이 자기 위에 있는 자에게는 늘 그런 식의 경의를 표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리더의 기본적 과제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즉 원대한 비전을 보여주고, 큰 그림을 보고, 더 큰 집단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고 단결을 유지하는 것 말이다. 좀스럽고 이기적이고 우유부단하게 보이는 것은 절대로 피해야 한다. 그런 신호를 내보이면 사람들의 이중적 감정을 자극하게 된다.

인간 본성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세 가지다.

첫 째, 우리는 권위라는 현상의 완벽한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

둘 째, 권위를 보여주려고 할 때 당신에게 잘 맞는 습관과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세 번째는 이 시대의 비생산적 편견에 넘어가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권위라는 개념을 오해하고 경멸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사람들은 권위와 리더 일반을 혼동한다. 세상의 너무나 많은 리더들이 본인의 권력을 지키고 자신의 잇속만 채우는 데 급급해 보이기 때문에 권위라는 개념자체에 의심을 품는 것도 당연하다

인간 본성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우리는 권위자에 대한 편견 때문에 생기는 수많은 위험을 인식해야 한다. 세상의 권위자들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의 열등함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을 인정하고 그런 인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자기 안에 매몰되고 부족주의도 심해지고 더 집요하게 편협한 내 목표만을 고수하게 됐다. 우리는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쏟아지는 정보에 파묻혀 있고, 리더에 대해서는 더욱더 변덕을 부리게 됐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진정한 권위자가 필요하다.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집단에 귀를 기울이고, 무엇이 집단을 단결시키는지 아는 진짜 권위자가 필요하다.

권위의 핵심은 사람들이 기꺼이 자발적으로 당신을 따르는 것이다. 그들이 당신의 말이나 조언을 따르기로 ‘선택’해야 한다. 그들이 당신의 지혜를 ‘원해야’한다. 때로는 완력이나 보상, 처벌, 사기를 높여주는 연설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정도의 문제다. 그런 장치가 덜 필요할수록 당신의 권위는 커진다. 따라서 당신은 끊임없이 사람들의 의지력을 활용하고 그들의 타고난 저항과 이중적인 감정을 극복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간단 요약

권위란 겉으로 힘 있고, 정당하고, 공정한 모습을 연출하는 섬세한 기술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당신이 저들을 위해 봉사하는 리더라고 인식시켜야 한다.

리더가 되고 싶은 사람은 일찍부터 이 기술을 마스터해야 한다.

일단 한번 신뢰를 얻고 나면 저들은 상황이 아무리 나빠져도 리더인 당신 곁을 지킬 것이다.

 

 

Law 16⦁Aggression

공격성의 법칙

상냥한 얼굴 뒤의 적개심을 감지한다

표면적으로 우리 주위 사람들은 너무나 공손하고 교양 있게 보인다. 그러나 가면 뒤에서는 누구나 어쩔 수 없이 좌절을 견디고 있다. 사람들은 남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고 상황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싶은 욕구가 있다. 노력이 중단 당했다고 느끼면 남의 조종해서라도 자기 뜻을 관철하려고 해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한다. 그리고 권력에 대한 욕구, 그에 대한 조바심이 남보다 큰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특히 공격적인 사람이 된다. 그들은 남을 위협해서 원하는 것을 얻고, 못할 일이 없으며,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는다. 우리는 뛰어난 관찰자가 되어 사람들의 충족되지 못한 공격적 욕망을 잘 지켜봐야 한다. 특히 우리 중의 만성적 공격자와 수동적 공격자에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위험한 타입임을 알려주는 신호를 포착해야 한다. 과거의 행동 패턴, 주변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강박적 욕구 등을 알아보아야 한다. 그들이 의지하는 수법은 당신을 감정적으로 두렵게 혹은 화나게 만들어서 당신이 똑바로 생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들에게 그런 함을 주지 마라. 당신의 공격적 에너지를 길들이고 생산적인 목적에 사용하는 법을 배워라. 당신 자신을 위해 일어나라. 부단한 에너지로 문제를 공격하고 위대한 야망을 실현하라.

이 점을 알아야 한다. 당신도 당신 분야에서 록펠러 같은 사람을 언제든지 마주칠 수 있다. 이런 유형을 ‘원시적 공격자’와 대비시켜 ‘세련된 공격자’라고 부르기로 하자. 원시적 공격자는 아주 쉽게 흥분하는 유형이다. 누가 그의 열등감이나 약점을 자극하면 곧장 폭발한다. 그들은 자제심이 부족하기 때문에 살면서 크게 성공하지 못하는 편이고,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상처를 준다. 세련된 공격자는 그보다 훨씬 교모하다. 그들은 최고의 위치까지 올라가 내려오지 않을 수도 있다. 자신의 수법을 감추고,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고, 사람들의 감정을 가지고 놀 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부분의 사람이 대치 상황이나 장기전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그들은 상대에게 겁을 주거나 지레 지쳐 나가떨어지게 만든다. 그들은 본인의 공격성뿐만 아니라 우리의 유순함을 이용한다.

그들을 알아볼 수 있는 간단한 신호가 하나 있다. 그들은 특별한 재능을 통해서가 아니라 공격적 에너지를 주된 무기로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업무의 질보다는 권력을 축적하는 것을 중시한다. 그들은 그 어떤 경쟁이나 도전도 뭉개버리고 본인의 위치를 사수하기 위해서라면 못 할 일이 없다. 그들은 권력을 나눠 갖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종종 우리는 그들이 투영하는 겉모습이나 강한 상대일 것 같다는 착각, 공격적이라는 평판에 무릎을 꿇고 만다. 이들을 상대하는 방법은 감정적 온도를 내리는 것이다. 먼저 상대에 대한 신화나 전설이 아니라 그 사람 개인을 보라. 상대의 주된 동기가 무엇인지 이해하라. 그들은 주위 환경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통제력을 갖는 것이 목적이다. 그들이 통제력에 대한 욕구로 덮어 감추고 있는 이면에는 겹겹이 쌓인 초조함과 불안이 있다. 우리는 그 안에 있는 겁먹은 어린아이를 보아야 한다. 예측 불가능한 것만 보면 겁에 질려버리는 어린아이 말이다. 그러면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고, 상대에게 주눅 들지 않을 수 있다.

그들은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통제하고 싶어 한다. 상대에게 그런 힘을 주지 마라. 내 감정이 아니라 상대의 행동과 내 전략에 집중하라. 상대의 진짜 목표를 분석하고 예측하라. 상대는 당신에게 아무 선택권이 없다는 생각을 주입하고 싶어 한다. 항복을 피할 수 없으며 그게 상황을 빠져나갈 최선의 길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언제나 선택권이 있다. 설혹 상대가 나의 상사여서 지금은 투항해야 하더라도, 내면의 독립성을 유지한 채 상사가 실수를 하거나 약해질 때를 대비한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상대의 약점이 무엇인지 당신이 알고 있는 사랑을 활용해 그들을 끌어내려라.

상대가 들려주는 그의 논리, 관심을 딴데로 돌리려는 간사한 시도를 간파하라. 상대는 종종 고결한 척하거나 자신이 다른 악의 무리의 희생자라도 되는 것처럼 자신을 포장할 수도 있다. 상대가 더욱 확신에 차서 이야기할수록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신호다. 종종 그들은 매력적이거나 카리스마 넘치게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런 겉모습에 현혹되지 마라. 상대의 패턴을 보라. 과거에 다른 사람들을 등쳐먹은 사람이라면 지금도 그러는 중일 것이다. 아무리 상냥하고 매력적으로 보이더라도 절대로 그런 사람을 동업자로 들이지 마라. 그들은 열심히 일하는 당신 등에 업혀가다가 주도권을 빼앗을 것이다. 그들의 실질적 강점과 공격적 의도를 현실적으로 평가하는 게 최선의 방어책이다.

종종 가장 현명한 전략은 그들의 손에 놀아났던 사람들과 연대해 힘을 키우고 숫자의 우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공격자들이 종종 원하는 대로 얻어가는 이유는 당신이 지금 그들과 싸우면 잃을 게 너무 많다고 생각해 겁을 내기 때문임을 명심하라.

오히려 공격자의 존재를 당신의 투지를 자극하고 자신감을 키울 수단으로 활용하라. 공격자에 맞서 그를 능가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만족스럽고 명예로운 경험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눈치채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우리의 공격 성향이 표면화되는 좀 더 교묘한 사례들도 관찰할 수 있다. 나보다 더 공격적인 위압적인 존재를 만났을 때 우리는 종종 내가 평소보다 더 고분고분하게 구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상대가 힘 있는 사람이라면 심지어 다소 알랑거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보다 약하거나 순한 것이 분명한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종종 내 안의 사자 같은 구석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기도 한다. 상대를 돕기로 결정하지만 어쩌면 거기에는 경멸이나 우월감이 함께 섞여 있을 수도 있다. 우리는 그들을 도우려고 하면서, 그들의 삶을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나의 조언을 강압적으로 밀어 붙이며 다소 공격적이 된다. 혹은 상대에 대해 별로 동정심을 느끼지 않는 경우라면 어떤 식으로든 내 목적을 위해 상대를 이용해야겠다는, 함부로 다뤄야겠다는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이런 것들은 모두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것을 공격성으로 경험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내면의 강인함을 상대와 비교하면서 어쩔 수 없이 나의 공격 수준을 낮추거나 높이게 되고 만다.

공격은 모든 개인에게 잠재한 성향이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종에 새겨져 있는 성향이다. 우리가 지구상에서 발군의 동물이 된 것은 바로 이 공격적인 에너지, 그리고 그것을 보충해준 지능과 교활함 덕분이다.

인간 본성의 법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우리의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 째, 당신 자신도 공격적 성향을 갖고 있다는 현실을 더 이상 부정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누구나 연속적인 공격성의 스펙트럼 위 어디쯤 위치한다.

우리 목표는 이런 강한 에너지를 억누르는 게 아니라 그게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 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생산적인 방향을 돌리는 것이다.

두 번째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변 사람들의 공격성을 관찰하는 데 달인이 되는 것이다.

세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인간 본성에 포함되어 있는 아주 실질적인 공격적 성향을 부정하지 말고 그게 인류의 미래를 위해 어떤 함의를 가질 수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공격성을 부정하는 성향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강하다. 더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쪽은 늘 상대방, 상대편, 다른 문화다. 다른 편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는 것, 시대와 문화를 초월한 우리 모두라는 것을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우리 본성의 이 부분을 인정할 때만 그것을 넘어설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이라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발전을 생각해볼 수 있으려면 각성이 먼저다.

간단 요약

뛰어난 관찰자가 되어 공격자의 위험한 신호를 포착하고 대응하라.

당신의 공격적인 성향을 인정하고 공격적 에너지를 생산적인 목적에 사용하라.

 

Law 17⦁Generational Myopia

세대 근시안의 법칙

시대의 흐름에서 기회를 포착한다

어떤 세대로 태어났느냐 하는 점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우리를 많이 규정한다. 우리 세대는 이전 세대와 구분되기를 원한다. 세상의 분위기를 바꾸기를 원한다. 그 과정에서 특정한 취향과 가치관, 사고방식을 형성하고 개인은 그것을 자기 것으로 내면화한다. 나이가 들면 이렇게 세대가 규정해놓은 가치관이나 사상들이 다른 관점은 보지 못하게 우리를 차단하고 우리의 생각을 제약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의 과제는 세대가 우리의 정체성과 세계관에 미치는 강력한 영향력을 최대한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 세대의 정신과 내가 사는 시대를 깊이 있게 이해하면 시대정신을 더 잘 활용할 수 있다. 우리 세대가 갈망하는 트렌드를 예상하고 설정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우리 세대가 만들어준 정신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고 그런 자유가 가져다주는 힘을 통해 더욱더 내가 원하는 모습에 가까운 사람이 될 수 있다.

인간의 본성 중에서 멈춰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젊은 사람들은 당신이 존경했던 어떤 가치나 제도를 더 이상 당신과 같은 수준으로 존경하지 않는다. 교실에서, 지역에서, 업계에서 권력구조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사람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사귀고 교류하고 있다. 새로운 상징과 신화가 만들어지고 오래된 것들은 바래어간다.

변화를 마주했을 때 틀림없이 보게 될 남들이 떠들어대는 진부한 해석은 무시하라. 시야를 흐릴 수 있는 과거의 관점이나 정신적 습관은 과감히 떨쳐버려라. 벌어지고 있는 일을 심판하거나 훈계하려는 성향을 멈춰라. 사안을 있는 그대로 봐라. 바닥을 흐르는 불만과 현 상태의 불협화음을 찾아보라. 이것들은 늘 표면 아래 바로 거기에 있다. 이런 신호들 사이의 공통점과 연관을 보라. 서서히 그 흐름, 물살 자체가 눈에 들어오고 수많은 사람은 보지 못하는 어떤 방향, 어떤 경로가 드러날 것이다.

가장 먼저 당신은 전체적 분위기에서 변화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과거와 어떻게 멀어지고 있는지 감지해야 한다. 시대정신을 느끼고 나면 배후에 있는 것이 뭔지 분석할 수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대로 느꼈다면, 대응은 대담해야 한다. 남들도 느끼고는 있지만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는 그것을 말로 표현하라. 너무 앞서가서 오해받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라. 늘 경계하며 먼저 내린 해석은 언제나 보내줘라. 그러면 남들은 아직 감지를 시작하지도 못한 순간에 기회를 붙잡을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를 현 상태의 적이라고 생각하라. 그러면 현 상태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당신을 위험하다고 말할 것이다. 이것을 인간 정신, 크게는 문화를 되살리고 거기에 통달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과제라고 생각하라.

우리 시대는 출산의 순간이자 과도기다. 인간 정신은 구질서와 함께 산산조각 났다. 구식 사고도 마찬가지다. 마음은 그 모든 것을 깊은 과거 속에 가라앉게 놔두고 스스로 변화를 모색한다. 지루해서 찧고 까부는 것 때문에 기존 질서가 흔들리고 무언가 알려지지 않은 것에 대해 막연한 예감 같은 게 든다면 곧 변화가 다가오고 있다는 전조다.

-G. W. F 헤겔

세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추측하고, 미래의 트렌드를 예상하고, 사건이 일어나는 데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할지 이해할 수 있다. 이점은 우리에게 대단한 사회적 영향력을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마음을 치유하고 차분하게 만드는 효과까지 있다. 당장의 혼란스러운 변화들을 넘어서 약간의 거리감과 평정심을 가지고 세상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이 지식을 ‘세대 인식’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이 지식을 얻으려면 첫 째, 세대가 실제로 우리의 세계관에 미치는 심오한 효과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둘 째, 역사를 결정짓고 우리 시대가 전체의 큰 틀 속에서 어느 부분에 해당하는지 알려주는 더 큰 세대 패턴을 이해해야 한다.

세대 간 긴장에 의해 만들어지는 변화는 대부분 젊은이들로부터 비롯된다. 그들은 더 부산하고,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찾아다니고, 집단에 어떻게 녹아들지에 더 예민하다. 그런 젊은 세대가 30대나 40대가 될 때 쯤에는 본인들의 변화에 맞춰 세상을 만들고 그 세상에 부모 세대와는 구별되는 모습과 느낌을 부여한다.

어느 세대를 보아도 그속에는 자연히 여러 변종이 있다. 우선 남보다 더 공격적인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시대의 스타일과 트렌드를 가장 먼저 감지하고 표현함으로써 리더가 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과거와 절연하고 나이 많은 세대를 거역하는 데 있어 두려움을 덜 느낀다. 그리고 이만큼 공격적이지는 않지만 규모가 훨신 큰 추종자들이 있다. 추종자들은 신이 나서 트렌드를 따라가고, 트렌드의 형성과 홍보를 돕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반항아들이 있다. 반항아들은 본인 세대를 거역하고 물결을 거스름으로써 자기 자신을 정의한다.

기록된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간 역사의 패턴을 직관적으로 이미 알았던 작가나 사상가도 있었다. 이런 생각을 최초로 이론으로 정립한 사람은 아마 14세기 이슬람의 위대한 학자 이븐 칼둔일 것이다. 그는 역사가 4개의 세대에 해당하는 4막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세대는 과거와 근본적 단절을 만들어내는 혁명가들의 세대다. 이들은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하기도 하지만 그런 싸움의 과정에서 약간의 혼돈도 만들어낸다. 종종 이 세대에는 위대한 리더나 예언가가 있어서 혁명의 방향에 영향을 주고 뚜렷한 흔적을 남겨 놓는다.

두 번째 세대는 질서를 갈망한다. 그들은 아주 어린 나이에 혁명을 겪어내며 아직 혁명의 열기를 느끼고 있지만, 세상을 안정시키며 관습과 신조를 세우고 싶어 한다.

세 번째 세대는 혁명 세대와는 직접적 관련이 거의 없고, 혁명에 대한 열정도 많이 느끼지 못한다. 이들은 실용주의자다. 문제를 해결하고 삶을 최대한 안락하게 만들기를 원한다. 이들은 사상에는 큰 관심이 없고 무언가를 이루는 것에 관심이 있다. 그 과정에서 최초의 혁명 정신은 모두 다 빠져나가버리는 경향이 있다. 물질적 관심이 지배적이고, 사람들은 상당히 개인주의적이 될 수도 있다.

네 번째 세대는 사회가 활력을 잃었다고 느끼지만 무엇으로 그것을 대체해야 할지 확신하지 못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물려받은 가치관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상당히 냉소적이 되는 사람들도 있다. 더 이상 무엇을 믿어야 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일종의 위기가 대두된다.

이다음에 오는 것이 혁명 세대다. 혁명 세대는 무언가 새로운 신념을 중심으로 단결해 마침내 구질서를 쓰러뜨린다. 이런 식으로 계속 순환된다.

이 패턴에는 여러 변종이 있고 과학이라고 말할 수도 없지만 우리는 역사에서 전체적으로 이런 순서가 이어진 것을 많이 보아왔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네 번째 세대의 등장과 그에 따른 가치관의 위기다. 이 시기는 살아내기가 가장 고통스러운 때인 경우가 많다. 인간은 무언가를 믿어야 할 깊은 욕구가 있다. 구질서를 의심하고 의문을 갖기 시작하면서 가치관에 공백이 느껴지는 것은 미칠 노릇이다. 우리는 이 시기에 번성하는 협잡꾼과 선동가들이 퍼뜨린 신념 체계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발생한 모든 문제와 팽배한 불만족을 탓할 희생양을 찾는다.

지금 우리가 바로 그런 위기의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생의 핵심 단계에서 이것을 경험하는 세대도 있다. 이 시기의 끝이 얼마나 가까운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시기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정신이 그것을 참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언가 우리를 단결시키는 신념 체계가 잉태 중이고, 아직 볼 수는 없지만 무언가 새로운 가치관이 만들어 지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교훈을 끌어낼 수 있다.

첫 째, 우리의 가치관은 우리가 이 패턴 중 어디에 해당하고 우리 세대가 이전 세대의 특정한 불균형에 대해 어떤 반작용을 보이느냐에 따라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만약 우리가 1920년대나 1950년대에 나타났다면 우리는 태도도 이상도 지금과는 다른 사람일 것이다. 우리가 형성되는데 우리 세대가 지배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과 우리 세대가 패턴 속 어디에 해당하는지를 먼저 인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둘째, 각 세대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전 세대와 반대방향으로 움직이고 반응하는 것뿐으로 보인다. 어쩌면 이것은 세대적 시각이 형성되는 시기가 젊을 때, 즉 우리가 불안정하고 흑백논리에 빠지기 쉬운 때이기 때문일 것이다. 중도를 취하는 것, 즉 이전 세대의 가치관이나 트렌드 중에서 무엇이 좋고 나쁜지를 균형 있게 선택하는 것은 집단의 본성에 반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역사의 패턴을 보면서 우리는 특정한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를 계속 진화하게 만드는 전반적 인간 정신이 무엇인지 인식해야 한다. 어떤 이유에서든 이 사이클이 멈춘다면 우리는 멸망하고 말 것이다.

인간 본성의 법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세 가지다.

가장 중요한 첫 째는 자기 세대를 대하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 우리는 자주적이고 나의 가치관이나 생각은 내면에서 나왔다고 상상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우리 세대의 정신과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얼마나 깊이 우리의 세계관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 최대한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도덕적 판단으로부터 자유롭게 이 문제를 공략하고 인간으로서 최대한 객관적이 되어 보는 것이다. 세대 인격은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다. 당신 세대 혹은 다음 세대의 좋고 나쁜 점을 평가하고 있는 자신을 포착하고 그런 평가질을 그만 놓아줘라.

우리가 두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우리 세대에 해당하는 일종의 성격 프로필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그 정신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미묘한 차이와 예외는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전체적 정신을 알려주는 공통의 특징이다.

우리가 해야 할 세 번째 과제는 이 지식의 조각들을 이어 맞춰서 시대정신으로 생각될 수 있는 더 넓은 무언가로 확장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특히 지배적인 두 세대 사이의 관계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그 두 세대란 젊은 어른들(스물두 살에서 마흔네 살 사이)과 중년 세대(마흔다섯 살에서 쉰여섯 살 사이)이다. 이들 세대의 부모 자식 관계가 아무리 가까워 보이더라도 늘 그 밑에는 약간의 원망이나 시기심과 함께 긴장감이 깔려 있다. 그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에는 자연스러운 차이가 있다. 이런 긴장감을 확인해서 어느 세대가 더 지배적이고 그런 힘 의 역학관계가 지금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알아보라. 또한 더 큰 역사의 패턴 속에서 당신 세대는 어디에 들어맞는지 생각해보라.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이런 지식이 중요해졌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 째, 비록 반세계화 정서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지만 기술 발전과 소셜 미디어는 우리를 하나로 만들었고 이 점은 바뀔 수 있다. 이 말은 곧 같은 세대의 사람들이 종종 같은 국가의 나이 많은 세대보다 다른 문화권의 동일 세대와 더 많은 공통점을 가질 거라는 의미다. 이런 유례없는 상황은 시대정신이 그 어느 때 보다 더 직접적으로 글로벌화 되었고, 따라서 그에 대한 지식이 이전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강력해졌다는 뜻이다.

둘 째, 기술 혁신에서 시작된 이런 급격한 변화로 인해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자기실현적 역학관계가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젊은 사람들은 이런 속도에 거의 중독되었고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더 많은 변화를 갈망한다. 빨라진 속도 때문에 위기는 늘어나고 이는 다시 변화의 속도를 더 빠르게 만든다. 이런 속도감에 우리는 어지러움을 느끼고 균형감각을 상실하기 쉽다. 사소한 변화를 획기적 변화라고 착각하는 바람에 진행 중인 정말로 획기적인 변화를 무시할 수도 있다. 앞으로 다가올 것이 무엇인지 예측하기는커녕 속도를 따라잡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 세대 현상에 대한 인식과 차분한 역사적 관점만이 이 시대를 극복하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시대정신을 가장 잘 활용하려면 간단한 하나의 전제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당신은 다른 누구 못지않게 시대의 산물이다. 당신이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당신이 태어난 세대가 당신의 생각과 가치관을 형성했다.’ 따라서 현재 세상의 모습이나 기성세대에 대해 내면 깊숙한 곳으로부터 좌절감을 느낀다면, 혹은 이 문화에 무언가 빠진 게 있다고 느낀다면, 당신 세대에 속한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느끼고 있다고 확신해도 좋다. 그리고 그 느낌을 활용하는 사람이 당신이 된다면, 당신의 작품은 당신 세대에 깊은 반향을 일으키고 시대정신의 형성에 일조할 것이다.

인간은 손대는 것마다 변신시키는 데 귀재다. 우리는 우리의 목적에 맞게 지구라는 행성의 환경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우리는 신체적으로 나약한 종에서 가장 강력한 발군의 사회적 동물로 우리 자신을 탈바꿈시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뇌 구조를 바꾸고 확장하는 효과까지 냈다. 우리는 쉬지 않고 끝없이 무언가를 발명한다. 하지만 이런 우리의 변형 능력을 거약하는 분야가 하나 있는 듯하다. 바로 ‘시간’ 그 자체다. 우리는 태어나 삶의 흐름 속으로 들어가고, 매일매일 죽음에 가까워진다. 시간은 일직선이다. 늘 앞으로만 간다. 시간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다양한 인생의 단계를 하나씩 거쳐 간다. 그 단계들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패턴을 따른다. 우리의 심신은 느려지고 젊은 시절의 탄력성을 상실한다.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젊은이들이 인생이라는 무대를 채우며 우리를 옆으로 밀어내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본다. 우리는 스스로 태어난 역사적 시기와 세대를 선택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들은 내가 누구이고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주 많은 부분을 결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시간과 관련해 우리의 능동적 본성은 무의미하게 되고, 의식적으로 여기에 저항하지는 않지만 이 무력감이 원천이 되어 많은 불안과 우울을 야기한다.

그러나 우리의 시간 경험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주 독특한 무언가를 눈치 챌 수 있다. 우리의 기분과 여건에 따라 시간이나 날짜가 다르게 지나간다는 사실이다. 어린아이와 어른은 시간을 아주 다르게 경험한다. 아이에게는 시간이 다소 느리게 움직이지만, 어른에게는 너무나 빠르게 지나간다. 지루할 때는 시간이 공허하게 느껴지면서 기어가는 것처럼 느리게 느껴진다. 신나고 즐거울 때는 시간이 좀 느리게 갔으면 하고 바란다. 차분히 명상을 하고 있을 때는 시간이 느리게 지나가더라도 충만하고 만족스럽게 느껴진다.

이 말은 곧 시간은 인간이 만들어냈다는 뜻이다. 우리가 자체 목적을 위해 그 흐름을 측정하려고 만들어낸 하나의 방법이다.

노화 과정을 멈추거나 죽음이라는 엄정한 현실을 거역할 수는 없지만 시간에 대한 경험을 바꿀 수는 있다. 고통스럽고 우울한 시간을 전혀 다른 어떤 것으로 바꿀 수 있다. 우리는 시간이 일직선이 아니라 사이클처럼 느껴지게 할 수 있다. 심지어 그 흐름에서 한 발 벗어나 일종의 시간이 없는 상태를 경험할 수도 있다. 우리는 자기 세대나 자기 세대의 관점에 꽉 잡혀 있을 필요가 없다.

이게 단지 희망사항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의식적으로 본인의 시대를 초월하고 시간을 좀 다른 방식으로 경험했다고 기록한 역사적 인물은 여럿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그랬다. 이것은 하나의 이상으로 우리의 능동적 본성이 허용하는 일이기도 하고 어느 정도 깨닫고자 노력해볼 가치가 있는 일이기도 하다.

간단 요약

우리의 과제는 세대가 우리의 정체성과 세계관에 미치는 강력한 영향력을 최대한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 세대의 정신과 내가 사는 시대를 깊이 있게 이해하면 시대정신을 더 잘 활용할 수 있다. 우리 세대가 갈망하는 트렌드를 예상하고 설정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우리 세대가 만들어준 정신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고 그런 자유가 가져다주는 힘을 통해 더욱더 내가 원하는 모습에 가까운 사람이 될 수 있다.

 

Law 18⦁Death Denial

죽음 부정의 법칙

인간의 운명인 죽음을 생각한다

사람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회피하면서 평생을 산다.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인생의 짧음을 이해하면 한시라도 빨리 나의 목표를 깨달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목적의식이 생긴다.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정면으로 부딪히는 훈련을 한다면 인생의 여러 차질과 이별, 위기를 감당하기가 쉬워질 것이다. 현실에 대한 균형감각이 생기고 이 짧은 생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을 남들과 분리하고 우월감을 느낄 방법을 찾는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과 그 점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하며 하나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죽음을 깊이 인식함으로써 우리는 삶의 모든 측면을 더 강렬하게 경험할 수 있다.

우리의 시간이 얼마나 짧은지, 누구나 고통스럽게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면, 인생의 방향이 바뀔 것이다.

과거를 돌아보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이 없어서 실수와 무위 속에 내가 허비한 시간을 생각하면, 얼마나 자주 내 마음과 내 영혼에 반하는 죄를 지었는지 생각하면, 가슴에서 피가 철철 흐른다. 인생은 선물이요, 인생은 행복이요, 모든 순간이 억겁의 행복일 수 있었다! 젊어서 알았더라면! 이제 내 인생은 바뀔 것이다. 이제 나는 다시 태어날 것이다. 형제여, 맹세컨대 나는 희망을 잃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영혼을 순수하게 간직하고 마음을 열어놓을 것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인간에게 문제는 내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안다는 데 있다. 하지만 이런 자각을 더 멀리까지 밀고 나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우리 의식의 목적은 언제나 최대한 먼 곳까지 가보는 것이다. 그게 바로 종으로서 우리가 가진 힘의 원천이고, 우리의 소명이다. 지금 우리가 채택할 철학은 평소 우리가 죽음을 향해 느끼는 것과 반대로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죽음을 더 가까이서 깊이 들여다보고, 이제 해안을 떠나 삶과 죽음에 대한 다른 접근법을 탐험해보면서, 갈 수 있는 데 까지 최대한 멀리 가보는 것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완수해야 한다고 느끼기 때문에 전반적으로는 불안을 경험하면서도 실제로는 늘 미루고 힘을 분산해버린다.

그러다가 어느 프로젝트의 데드라인이 억지로 주어지면 꿈을 꾸는 것 같던 시간과의 관계가 산산조각난다. 어찌된 노릇인지 우리는 몇 주 혹은 몇 달이 걸렸을 일을 며칠 내에 해낼 수 있는 집중력이 생긴다. 데드라인 때문에 우리에게 강제된 변화는 구체적으로 느껴진다.

우리는 나의 죽음을 일련의 연속적인 데드라인 처럼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살면서 무슨 일을 하건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더 이상 나 자신을 속이는 짓은 그두어야 한다. 우리는 내일 죽을 수도 있다. 혹시 80년을 더 산다고 해도 그것은 광대한 시간의 바다에서 물방울 하나에 불과하며,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게 지나갈 것이다. 우리는 이런 현실에 깨어 있어야 하고 늘 이에 관해 깊이 생각해야 한다.

인생이 짧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으면 매일매일 해야 할 일이 더 분명해진다. 이뤄야 할 목표가 있고, 완수해야 할 프로젝트가 있고, 개선해야 할 인간관계가 있다. 인생의 불확실성을 고려하면 이번이 나의 마지막 프로젝트, 지구에서의 마지막 싸움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내가 하는 일에 온전히 전념해야 한다.

우리가 알 수 없는 것, 말할 수 없는 것과의 이런 대면이 바로 ‘숭고함’이다. 숭고함의 라틴어 어원은 ‘한계를 대면한다’는 뜻이다. 숭고함은 너무 크고, 너무 광대하고, 너무 어둡고 신비로워서 우리가 말이나 개념으로 표현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그런 것들을 마주하면 약간의 두려움도 느끼지만 경외와 감탄도 느낀다. 보잘 것 없는 나의 의지보다 훨씬 더 광대하고 강력한 것에 비하면 내가 얼마나 작은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숭고함을 느끼는 것은 안일함에 빠져 있는 우리 자신과 우리를 지치게 하고 공허하게 만드는 일상의 사소한 걱정들에 대한 완벽한 해독제다.

숭고함 앞에서 우리는 전율한다. 마음이 품기에는 너무 거대한 어떤 것, 어쩌면 죽음 자체를 잠시 맛본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잠시 동안 우쭐함을 내려놓고 죽음처럼 우리를 옥죄고 있는 습관과 평범함에서 벗어날 것이다.

그래서 이 철학을 다음과 같이 생각하라. 이간에게 의식이 생긴 이래 죽음에 대한 자각은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이 두려움은 우리의 신념과 종교, 제도, 갖가지 행동을 결정지었다. 인간은 두려움과 회피의 노예가 됐다.

역으로 생각해 죽음을 더 자각하면, 진정한 자유를 맛볼 수 있다. 삶을 예측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제약해야 할 필요성을 더 이상 느끼지 않게 된다.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더 대담해질 수 있다. 불안을 무감각하게 만들려고 채용했던 망상과 중독을 잘라낼 수 있다. 일에, 사람에, 모든 행동에 온전히 전념할 수 있다. 이런 자유를 조금이라도 경험하고 나면, 시간이 허락하는 데까지 우리의 가능성을 더 많이 탐구하고 확장하고 싶어 질 것이다.

죽음에서 그 이상함을 제거하고, 죽음을 알고, 죽음에 익숙해지자. 그 무엇보다 죽음을 가장 자주 생각하자. 모든 순간 우리의 상상 속에서 죽음의 모든 측면을 그려보자. 죽음이 어디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죽음을 미리 생각해보는 것은 자유를 미리 생각해보는 것이다. 죽는 법을 배운 사람은 노예가 되는 법을 지운 셈이다. 어떻게 죽을지 알고 나면 모든 종속과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다.

- 미셸 드 몽테뉴

간단 요약

우리의 시간이 얼마나 짧은지,

누구나 고통스럽게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면,

인생의 방향이 바뀔 것이다.

댓글

최신글 전체

이미지
제목
글쓴이
등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