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as Samaras
루카스 사마라스
1950년대 후반, 야심 찬 화가들이 크고 대담한 추상화를 그려야 했을 때
Lucas Samaras는 에드가 드가( Edgar Degas )와 오딜론 르동( Odilon Redon ) 시대 이후로
역사를 만드는 작품을 일으키지 않은 연약하고 친밀한 매체인 파스텔을 사용했습니다 .
Back in the late 1950s, when ambitious painters were obliged to produce big, bold abstractions,
Lucas Samaras took up pastel, a fragile, intimate medium that had not given rise to history-making oeuvres since the days of Edgar Degas and Odilon Redon.
현재 79세인 사마라스는 그림, 조각, 사진 분야에서
기발한 발명과 기발한 상상력으로 거의 60년에 가까운 경력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기적으로 파스텔로 돌아와 작고 생생하게 다채롭고 시적으로 매혹적인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The maverick Mr. Samaras, now 79, went on to forge a singular, nearly 60-year career of eccentric invention and offbeat imagination in painting, sculpture and photography. But he periodically returned to pastel to create small, vibrantly colorful and poetically captivating images.
루카스 사마라스 (Lucas Samaras, 1936~ , 그리스)
최근 30년 가까이 조각, 회화, 사진, 창작, 오브제, 판화, 인스털레이션, 영화 등 다양한 활동을 계속하는 그리스 출생의 미국인 아티스트인 루카스 사마라스의 작품은 어느 것이나 모두 그의 '셀프 포트레이트'에서 심적인 혹은 외적인 자아공간을 찍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넌다. 그러나 이 '셀프 포트레이트'이라는 작품은 작자 자신의 외관을 모티브로 한 것이지만, 작자의 심상풍경으로 되어 있다는 수준의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사마라스 만큼 '자기'라는 것에 장기적이고 광신적으로 집착해 온 아티스트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셀프 포트레이트'에는 그 이외의 누구도 모방할 수 엄을 정도로 강렬한 어떤 종류의 이질적인 에너지와 잠재성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사마라스는 그리스의 마케도니아에서 태어났다. 당연히 사마라스의 유년 시절의 땅은 그리스였다. 그리스에서의 시민전쟁 동안 그의 아버지는 미국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이 전쟁은 사마라스 일가를 직접적으로 습격했다. 마케도니아에 있는 그들의 집은 전쟁의 화염으로 불 타오르고, 그 불은 사마라스의 눈앞에서 할머니를 죽이고 숙모에게 치명적인 중상을 입혔다. 그는 파괴와 약탈인 한창일 때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그 기억은 후에 그의 작품 가운데 단편적으로 되풀이되어 살아나고 있다. 그리고 그 파괴와 약탈 가운데에서 사마라스는 식료를 담는 상자 같은 신변에 있는 것들을 사용해서 자신의 장난감을 만들어 놀았다고 한다.
1948년, 전쟁이 끝난 후 그의 나이 11세 때 영어도 모르는체 모친과 함께 아무것도 없는 맨손으로 미국의 아버지를 찾아 길을 떠나 뉴저지의 아파트에 도착, 그곳을 새로운 거주지로 정했다. 맨해턴의 스카이스 크랩퍼(Skyscraper)를 강 건너로 바라보는 그 아파트에서 누이동생이 태어난 것은 1951년의 일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사마라스는 래트거스 대학에 입학해서 미술을 전공, 이즈음부터 앨런 카플러와 죠지 시갈, 로버트 화이트맨 등을 알게 되고 아티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한 1959년, 24세의 사마라스는 뉴욕의 레우벤 화랑에서 회화와 파스텔화로 개인전을 열고 아트의 세계로 데뷔했다. 레우벤 화랑은 초기의 해프닝이 행해졌던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했는데, 당시의 동세대의 아티스트들과 마찬가지로 사마라스는 다양한 소재와 미디어를 구사해서 실험적인 방법을 시도하고자 했다. 이듬해인 1960년에는 아더 잭슨 화랑에서 박스 워크의 전람회를 열었고, 나아가 1961년에도 뉴욕근대미술관에서 개최된 「아트 오브 앗상블라쥬」전에 나무와 깃털을 이용한 오브제를 출품했다.
1963년, 그린 화랑에서 열린 개인전에서의, 표지에 무수한 바늘이 꽂힌 책과 상자를 전시한 작품은 스캔덜러스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또 1959년부터 63년에 걸쳐서 그는 몇 번인가 해프닝을 일으키기도 하고, 실험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1964년, 사마라스에게 있어서 하나의 개인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의 양친과 누이가 그리스로 돌아가버린 것이다 사마라스는 홀로 아파트에 남겨졌다. 그러나 그 일은 그것으로 잘된 것이다. 어차피 혼자서 생활하지 않으면 안 될 시기였기 때문이다.
사마라스는 마침내 맨해턴의 아파트로 옮겨와 살았다. 그리고 그 이동의 시기에 치뤄야 했던 시민권 재신청 같은 번거로운 절차를 동해서 그는 다시금 자신이 '미국 속의 그리스인'임을 통감해야 했고,
나아가 '가족'이라고 하는 아이덴티티를 상실하고 말았다는 중압감을 확실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사마라스는 국가와 가족과 주거지를 빼앗긴 알몸으로 '그냥 보통의 아티스트'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것은 그에게 있어서 커다란 전환기가 되었다.
1969년에 킴 레빈과 공동으로 제작한 사마라스의 영화 「셀프」는 그의 방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적인 행동을 보여 주고 있다. 그의 작은 아파트에서의 보행, 입욕, 미친 아이처럼 주위의 오브제와 노는 데에 정신 이 팔린 모습, 창문으로 보이는 맨해턴의 전망, 오래되어서 너덜너덜 낡아빠진 아버지나 누이의 사진을 먹는 장면, 자신의 상자의 작품을 때려부숴 버리는 장면, 드러낸 이를 악물고 'Self!'라고 외치는 행위. 그들은 자기 부정과 자기 재생을 영원히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기 부정과 자기 재생의, 자기와 타인의 상호작용적인 관계가 가장 선명하게 나타난 것은 역시 사마라스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사진작품일 것이다. 1971년의 폴라로이드 카메라에 의한 셀프포트레이트과 73년의 「포토 트랜스포메이션」 시리즈는 상징적 표현이라고 하는 차원을 넘어서 심야의 고독한 사진행위가 낳은, 자신 속의 두렵고 낮선 것을 직접적으로 구체화시키고 공허함으로부터 끌어내어진 절박한 관계성을 드러내 보여 주고 있다.
SX7O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촬영한 이 시리즈의 대부분은 잠상이 현상되어 나오는 과정에서, 그 이미지에 다양한 상처를 주거나 왜곡 ·변형시키거나 조작하거나 한 것이었다. 그 속에서 사마라스는 알몸으로 등장하면서, 그 나체를 보려고 하는 사람에게 대해서 방어의 포즈를 취하거나 또는 사진 자체를 변형시킴으로써 그 '본다'고 하는 행위를 방해하려고 한다.
또한 「포토 트랜스포메이션」 시리즈에서는 반대로 알몸이 되어, 보는 사람들 바로 코앞에서 짖어대는 듯한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자기를 괴물과 같은 공포의 존재로서 제시하려 한다.
사마라스 자신은 셀프 포트레이트 사진을 '타자에 대한 복잡한 선물'로 생각하고 있다.
그의 사진은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이 동일한 공간 안에 있음으로써 생겨나는 사진의 특성에 의해서, 사진을 보는 자의 시선이 거꾸로 튕겨져 나온다는 사실을 만들어 낸다. 사진은 본질적으로 자기 자신과 가장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는 미디어인 것이다. 사진은 순간순간 자신을 억누르고, 자기가 해방된 새로운 인격(persona)를 차례차례 만들어 간다. 그리고 동시에 거기에는 그 사진을 보는 사람의 반영(反映)도 포함 되어 있다.
1978년부터 80년에 걸쳐, 사마라스는 타인의 폴라로이드 포트레이트를 촬영했다. 1967년부터 살고 있던 업퍼 웨스트 사이드의 좁은 아파트에 비치된 대형 폴라로이드 카메라 앞에 간이 스튜디오를 만들고, 거기에서 친구나 친척, 아티스트, 비평가, 화랑주인, 팬들과 같은 주변에 있는 인물들을 모델로 사진을 찍어왔다. 사람들은 의자 위에서 청록색이나 적록색과 같은 강렬하고 요란한 색채의 빛에 흠뻑 적셔지고, 다양한 포즈가 취해졌다. 그 방은 예전에 텅 빈 의자의 사진이 촬영되었던 장소이기도 했다.
그리고 피사체는 모두 그 곳에서 벌거벗겨졌으며, 그 소녀와 청년과 노파와 젊은 아가씨 옆에는 옷을 입고, 때로는 반신을 커튼 그늘에 숨기기도하고 때로는 프레임의 한쪽 구석에서 곁눈으로 엿보기도 하는 사마라스 자신이 항상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마치 그림자에 숨어서 앞쪽에 나와 있는 모델들을 조작하는 마법사처럼 이 사진들에는 어딘지 무대장치와 같은 취미가 있다. 극장공간에서의 자기표현이라고 하는 분위기가 어느 사진에도 붙어다닌다. 아마도 이것은 사마라스의 모든 작품에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마라스는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극화(劇化)를 위해서 가장 유효한 방법을 탐구하고, 줄곧 그것을 연출해 왔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마라스 자신이 공격적인 포즈로 자신의 나체를 지키려고 하는 듯한 누드 셀프 포트레이트에 반해서, 이 사진들의 사람들은 릴랙스하고 수동적인 입장으로 의자에 앉아 있다. 사실, 이 포트레이트들은 그 안에서 대상이 벌거벗겨지고, 무방비한 상태로, 광선도 포즈도 사마라스에 의해서 완전히 컨트롤되고 있다는 의미에서 침략의 행위처럼 보인다. 그 결과 사진에는 통상의 포트레이트에는 없는 특별한 매력이 생기게 되었다. 결국 한 사람은 완전하게 옷을 입고 있고, 다른 사람은 나체라고 하는 상황의 주변에 지배와 종속, 혹은 타자의 알몸 상태의 투시(엿보기)라고 하는 포르노그래피적인 암시가 부속되어 오는 것이다.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의 표현의 변천은 선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해되지만, 사마라스에게 있어서는 그것은 무효하다. 그의 30년에 가까운 친밀하고 충격적인 작업들은 선적(linear)인 시권스라기보다, 다층적으로 조합된 일종의 네트워크로 되어있다. 그들은 전체로서 생물과 같은 유기적인 조직을 형성하며, 시작이 끝에 연속되고 표면이 심부와 포개어져 있다.
1983년부터 1984년에 걸쳐서 제작된 폴라로이드 파노라마 시리즈는, 나1, 나2 , 나3 , 나4라는 단편을 새롭게 앙상블라쥬해나가는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른다. 자신이나 타인의 사진을 띠모양으로 가늘게 절단해서, 차원을 펼치기도 하고 의미를 바꾸기도 하며 다시금 연결시켜 가는 이 수법은 월리엄 바론즈의 저 '컷 아웃 메소드'나 '폴 인 메소드'를 상기시킬 것이다. 다시 말해 완전히 그 자신의 것인 하나의 텍스트를 흐트려서 뒤섞기도 하고, 혹은 되는 대로 그것을 타인의 텍스트와 짜맞추기도 하면서, 한 점으로 수렴시키지 않고 우연의 요소를 크게 개입시키면서 작품을 입체적이고 다층적으로 재통합해 가는 것이다.
얼핏 이 행위는 조각조각 흩어진 자신을 다시 모으고, 상처나거나 갈라 진 틈을 봉합해서 연결시켜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전혀 원래의 자신의 전체상이 아니다. 사마라스의 폴라로이드 파노라마는 지금까지 무수히 반복되어온 주체론과 유사하게 보이면서도, 거기에는 분명 신체가 주체를 추방해 가는 작업과 조직의 해체가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토마스 맥빌리는 사마라스의 아트를 '이미지의 하이브릿드 시스템'이라고 이름지었다.
'하이브릿드'는 보통 라틴어의 hibrida(두 가지의 다른 인종, 혹은 두 가지의 이민족으로부터 태어난)에서 '변종(變種), 이종(異種)의 교배에 의해서 초래된 개체'를 가리키는 말로, 그리스어의 hyvris(모든 과잉, 오만, 모욕, 학대, 능욕과 같은 의미를 파생시킨 '도(度)에서 벗어남=계측이 불가능한'이라는 관념, 절도(節度)=측정한도 안에서 대립한다)를 원어로 하는 또 하나의 의미도 있다. 사마라스의 하이브릿드는 말할 것도 없이 후자에 해당한다. 그리고 30년에 걸쳐서 사마라스는 그 계측이 불가능한 신체지(身體誌)를 계속해서 그려왔으며, 아마도 앞으로도 영원히 그 작업을 계속할 것이다.
인용된 글은 다음 문헌을 참고했다.
Lucas Summaras, Objects and subjects 1969-1986, Abberville Press. sittings
1979-1980, The Pace Gallery.
'검색' 카테고리의 다른 글
Fata Morgana (0) | 2022.11.15 |
---|---|
글로 사람을 알아보는 간단한 방법 (0) | 2022.11.15 |
미식 취향 찾기 (사과편) (0) | 2022.11.11 |
개인사업자 상호 영문 (0) | 2022.11.11 |
커들러 비즈니스 (0) | 2022.11.1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