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사람을 알아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
글에는 대체로 꾸밈이 들어가기 마련이고, 거짓이 버릇된 사람일수록 그 수법이 발달돼 있다.
그럼에도 전혀 길이 없는 건 아니다. 자신도 모르게 몸에 밴 어투(언어 사용 버릇)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언어가 그 사람이라는 말은 글을 대할 때 더욱 진리가 된다.
알랭 바디우의 말대로, 진리는 사건(글)을 통해 도래한다.
*언어심리학과 언어분석학
언어를 통한 심리 분석은 당연히(?) '언어심리학'이라 해야 할 텐데, 현재의 언어심리학은 뇌과학의 성과를 빌린 언어 습득 이론 쪽으로 쏠려 있다. 구미의 극소수 연구소들만 언어 분석 심리학 쪽의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요즘은 언어를 통한 인간 이해 쪽은 언어분석학(정확히는 언어분석 심리학)이라 해야 할 듯한데, 초보적 단계다. 대명사 사용 사례를 분석하여 인간관계를 분석한 J.W.페니베이커의 <단어의 사생활 >(원제: 대명사의 비밀스러운 사생활)이 우리나라에도 소개돼 있고, 세계 지도자들의 연설 분석을 통해 전쟁 가능성을 정확히 예측하여 <전쟁의 뿌리>를 펴낸 데이비드 G. 윈터(David G. Winter) 교수의 성과 등도 있다.]
<사진> <단어의 사생활> 번역서와 <전쟁의 뿌리>
전문적인 언어 분석가가 아닌 일반인들도 조금만 유심히 관찰해 보면, 초보적/기본적인 것들은 쉽게 알아낼 수 있다. 그중 몇 가지만 소개한다. (하지만 조금은 께름직한 면도 있다. 언어 엑스레이로 사람의 내장까지도 훑는 일이어서.) 언어의 확장된 효용에도 관심할 정도로, 언어의 이면과 심저에 관심하는 분들에게만 전하는 귀띔이다. 언어는 그 사람의 뒷모습까지도 비춰주는 거울이다.
단문과 장문
단문형을 애용하는 사람은 자신감이 있고 확신형이며, 사전(事前) 준비형이다. 그에 비하여 습관적으로 장문을 남발하는 사람은 그 반대. 특히 동작이 늦고 사전 준비가 몸에 배지 않은 사람일수록 대뜸 장문을 사랑부터 하고 본다. 앞뒤(선후) 구분조차 글을 써 가면서야 바로잡을 때도 있다. 마이크부터 잡고 바지를 추스르는 사람처럼. 단문과 장문을 적절히 섞어 쓰는 사람은 지능이 높은 편이다.
만연체 남용/애용
실제로는 독서 빈곤파와 지식 서민층이면서도 과시형인 사람들에서 흔하다. 한 권의 독서만 해도 자족하고 자랑한다.
박근혜가 대표적. 아이돌 그룹 이름에 빠삭하고, 혼자 식사 때마다 예능 프로나 드라마에 코 박고 지낸 것은 유명하다 (후보 시절 티브이에 나와서 자신도 모르게 발설한 내용이고, 청와대 만찬에서도 밝혀진 사항).
만연체 애용자들에게는 감추고자 하는 어두운 사생활이 공통적으로 있다.
습관이 되면, 살살 배가 아픈데도 그걸 참고서 연단에서 길게 말을 하는 식이다.
반면 단문 사용에 능한 확신범(?) 트럼프는 한창 바쁜 사업가 시절이던 40~50대에도 밤 10시면 반드시 잠자리에 들어 독서를 했다. 그 독서를 위해서, 밤 10시 이후까지 밖에서 지낸 적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가 대통령 후보로 뜨게 된 것은 티브이 프로를 진행하면서 유명 인사들의 팀플레이를 지도/평가하는 데서 보인 그의 유식함/단호함과 합리성 덕분이었다. 그 프로그램은 롱런했고, 트럼프가 대선에 나서지 않았으면 계속됐을 인기 프로였다.
SNS 정치를 한다는 소리까지 듣는 그의 트위터 표현들은 글쟁이들도 놀랄 정도로 잘 함축돼 있다. 초딩 철자까지도 항상 틀리던 부시와는 천양지차. 이번에 경질된 국토안보부 장관은 Kirstjen Nielsen인데, 트럼프는 이 어려운(?) 철자까지도 올바르게 표기했다. 새벽 시간인데도. 부시 같으면 어림도 없었을 일. 부시는 책 한 권 읽을 시간이면 골프 라운딩을 두 번 할 수 있다고 내놓고 말한 적도 있다. 그의 명문대 졸업은 기부자 특혜 입학으로 가능했고, 박근혜처럼 <부시 언어 번역기>가 나왔다. 그의 문제적 언어를 분석한 연구서도 여러 권 나왔는데, 역대 대통령 중 최다량.
<사진 : 트럼프의 트윗. 좌측의 것은 김정은 관련, 재작년 11월에 띄운 것. 내용은 "김정은은 왜 나 보고 '늙은이'라고 모욕을 주는지. 난 단 한 번도 그를 보고 '숏다리 뚱땡이'라 한 적이 없는데. 그래도 난 그와 친구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어쩌면 언젠가는 친구가 될 수도 있으리라!". 여기서 그는 김정은의 영문 표기를 정확히 해내고 있다. 북한에서는 한글의 로마자 표기가 우리와 다른데, 'ㅓ'와 'ㅡ'을 각각 'o'와 'u'로 적는다. (김정은도 페이스북을 하는데, 그곳 이름 표기도 Kim Jong Un이다)그게 몇십 년째의 표준 규정인데, 우리나라 정보 기관에서는 그가 일본에 비밀 입국할 때의 여권에서 이 이름 표기를 보고 '종운'은 익명 표기라고 해설/공표한 적도 있다. 얼마나 웃기는 짓인지... 미국 대통령도 바르게 알고 있는 것을. 두 번째 트윗은 국토안보부 장관 닐슨을 트위터로 해임하는 내용인데, 이름 표기 Kirstjen을 정확하게 하고 있다. 이 이름은 미국 내에서도 '키어스천'이나 '커스텐'으로 갈릴 정도로, 엄청 까다로운 이름이다. 우리나라의 번역 기사에서도 모두 표기가 다르다. 두 개의 트윗 모두, 군더더기 없이 명료하고 멋진 문장들이다. >
주어 분실, 목적어 행방불명
만연체 애용자에게서 흔히 드러나는 부작용. 어법상 당연히 비문(非文)에 속하고 비논리적이다. 문장 중간에 능동태가 수동태로 변신도 하고, 주어가 누구인지(뭔지) 드러나지 않아 행동 주체가 묘연할 때도 있다. 그런데도 화자(저자)는 어리둥절해 하는 대상에게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짜증을 낸다. 대체로 독단형으로, 상대방 배려 습관이 전혀 안 돼 있어서 사회생활에서 문제를 일으키지만, 정작 본인은 무엇이 문제인지를 잘 모를 때가 흔하다. 공주병/왕자병에 걸린 이들에게서 공통적이다.
단정형
개인적인 글속에서조차도 단정적인 표현이 많이 드러나는 경우는 아집/고집이 센 사람이다. 특히 '결(단)코'나 '절대로' 등의 표현을 자신도 모르게 끼워넣는 사람은 융통성 면에서 문제가 있다. 대화에서 선제적 발언이 많은 편이지만, 드물게는 아예 침묵하고 글로만 말을 많이 하는 사람도 있다.
내용은 단정적인데도 표현을 ‘-듯하다, -듯싶다’ 등으로 마무리하는 이는 예의를 챙기는 사람이다. 상대방의 결례 등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내색은 잘 하지 않을 때도 있다(그래도 마음에는 잠시라도 담아둔다). 반대로 학술 논문 등과 같이 개인적 발견/착안을 단정적으로 표현해야 할 데서, 두루뭉술하게 표현하는 것은 그 자신의 착상이 아닐 경우가 흔한 사람이거나, 문제 제기를 피해가려는 물러서기가 몸에 밴 이다.
과거형과 현재형의 혼재
한 단락 내에, 혹은 앞뒤 문단 사이에 미세하게나마 과거형과 현재형이 뒤섞여 있는 문장들도 있다 (예를 들면 '노력하는 사람'과 '노력한 사람'을 구분하지 않는 따위). 비논리적이거나 논리적 사고/제시에 약한 이들로, 감성적 성향이 강하고 성격도 다소 급해서 세밀하게 챙기지 않는 편이다.
오타나 어휘 오용을 돌아보지 않거나 알면서도 그냥 두는 경우. 교정/교열/퇴고를 경시하거나 건너뛰기
자신의 지능지수를 오판하거나 과거의 향수와 진한/두꺼운 끈을 대고 있을 때가 많다.
예를 들면 학창시절 20~30% 근방의 순위였음에도 실제로 자신은 10% 이내의 성적군이었다며, 이런저런 이유(대개는 자발적인 포기를 내세운다)로 뒤늦게 자위(自慰)하는 버릇 등이 대표적. '최상위권에 든 적은 한 번도 없다' 쪽이 진실과 부합된다. 어느 분야에서고 으뜸에 꼽히는 이들의 공통점은 '중하위권 사람들이 버릇처럼 사소한 것들로 치부하는 것들까지도 검토를 거르지 않는다'다.
자신이 해내지 못하거나 하지 않은 일에 대해 늘 핑계가 습관적으로 준비돼 있다. 일상생활에서 동작이 빠른 편이 아니지만, 물욕(物慾)이 강해서 즉물적(卽物的) 동작에서는 빠르다. 즉, 바겐세일 행사 등에서는 앞줄에 서 있다. 이와는 정반대로, 다중이 몰려가는 걸 극단적으로 혐오하기도 한다. 그처럼 가치 판단 기준이 독단적이며 자의적이다. 독서량은 중간 이하. 주로 매스컴을 통해 접하는 게 대부분인데, 그걸 지성인의 표준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띄어쓰기
이것을 지키려 노력하거나 애를 써서 챙기는 사람은 마음에 여유가 있고, 지식 지향형이며 호기심파. 지나친 원리원칙파일 때도 있어서 때와 장소, 수위 조절이 필요하다.
본문은 짧거나 빈약한데 전제가 길거나 화려한 문장의 애용
잘못 은폐형이거나 외모에 신경 쓰는 타입이다. 안(내부)이 부실한 외화내빈(外華內貧) 스타일에서 자주 보인다.
언어 변천사와 불변의 그자리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용하고 있는 어휘에 변화가 없는 경우는 지적 호기심이 낮은 이거나 자기 고집이 강한 생활파. 대개 가방끈이 짧거나, 학습에 그다지 흥미가 없던 이들이다. 그러나 성격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며, 조건을 다는 일이 적다. 직진형일 때가 많다.
형용사와 동사 사용 빈도
형용사가 동사보다 더 자주 많이 보이는 글의 주인공은 감성파에 가깝다. 논리적/정치적 사안 들을 싫어하며, 심정적/주관적 판단이 앞선다. 대체로 마른 편이며, 몹시 뚱뚱한 이도 있다. 섬세하다는 말을 칭찬으로 여기는데, 쉽게 잘 삐친다.
글에서조차 '~(하)다 보니까, 너무 좋은 것 같다' 식의 시쳇말 어법을 빈번하게 사용하는 경우
휩쓸리지 않으면 시대에 뒤처진다고 착각하는 단순파. 독서량은 한 해 한 권도 되기 어렵고, 통신비 지출이 문화 생활비를 윗돈다. 인기인/인기품/짝퉁... 소식에 빠르고 치장에 은근히 돈/시간을 많이 들인다. 인터넷에서 검색어 상위에 오른 것은 무조건 누르고 본다. 특히 연예인 이름은.
형용사의 객관적/주관적 용법 무지 혹은 오용
형용사를 구사할 때 어떤 말은 객체적(객관적) 상황에만 쓰이는 것이 적절한 것들도 있다. 또 객관적/주관적 상황 모두에 쓰일 수 있지만 각각의 상황에 따라 의미나 어감이 달라지는 말들이 있다. 영어의 경우는 이 구분이 철저해서 오직 객관적인 쓰임으로만 고정된 것들도 있고, stable과 financial처럼 주관적/객관적 형용사가 섞여 있을 때는 그 어순이 주관적 형용사가 먼저 배치돼야 할 정도로 까다롭다. 즉, a stable financial job(안정된 재정(분야) 직업)이 돼야 하고, a financial stable job은 a financially stable job(재정적으로 안정된 직업)으로 바꿔 적어야 오해를 피할 수 있는 바른 표기가 된다.
또 easy/difficult/pretty 따위는 판단 기준이 주관적이어서 객관화할 수 없는 주관적 형용사들이다. 그래서 It is easy/difficult that... 등의 어법은 일반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나아가, easy의 경우에도 It is easy for me to...(~하는 건 내게 쉽다)의 경우와 He is an easy man to play with.(그는 놀려먹기가 아주 손쉬운 사람이다)는 easy가 둘 다 주관적 형용사로 쓰였음에도 그 어감이 다르다. 앞 문장은 중립적이지만, 뒤에는 비하/경시의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말에서도 그런 경우들이 있다. '그는 박학한/유식한 사람이야'는 중립적이지만, '당신 무척 박학/유식하구먼' 등으로 대놓고 쓰이면 놀림의 의미가 담긴다. 그럴 때는 '만물박사/척척박사' 등으로 살짝 우회하는 것이 진의 전달에 도움이 된다. 그 이유는 '박학하다'란 말은 직격하면 주관적 표현이 되고 우회하면 객관화되는 말이라서다. 이러한 것까지 챙기면 그는 고급 학력자로서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섬세한 사람이자 지성인이며, 독서력 등에서 기본이 탄탄하고 바른 축에 속한다.
답변에서 언저리/변두리부터 언급하는 우회형
학업 성적이 중하위권의 사람들로, 최상위권에는 한 번도 올라보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감성/심성 중심의 여성들에게서 흔히 나타나고, 핵심 파악 능력에서 뒤지는 남성들에게서도 나타난다. '이렇게 말하면 알아채겠지' 혹은 '저렇게 말하는 저의(底意)/본심은 뭐지' 하는 식으로 우회하거나 직진하지 못하는 유형으로 , 객관화/단순화 능력에서 뒤진다. 논리적 사고 훈련에서 미흡한 편으로 업무 효율 면에서도 다소 떨어지거나 핵심과 무관한 일부터 먼저 하기도 한다. 대체로 인간적이며 따뜻한 사람인데, 타인 배려의 내용과 목표가 불명확할 때도 있다. 성과 중심의 조직에서는 중하위 그룹에 속한다.
한 문장 또는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급한 성격과 느긋한 성격, 유아/청소년 시절의 상처 유무, 가족/부모 관계... 등이 드러나는 식으로 여러 가지가 더 많이 있지만, 분량 관계로 줄인다. 전문적인 부분이어서 기본적인 심리 분석 지식도 필요하다.
글을 꾸미는 게 직업인 글쟁이들의 글도 분석이 가능하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그 작가의 통시적 언어와 공시적 언어를 각각 x축과 y축으로 하여 추이 함수를 만들고 그것을 표준형(일반인)이나 다른 작가들의 그것과 비교하거나, 그의 자전적 에세이 등과도 비교하는 방식인데, 내가 창안해 냈다. 우리나라에서는 내가 최초인데, 다른 나라에서도 이 방식은 내가 아직 대한 적이 없다.
참 한 가지.
설문 등을 통해서 심리 분석이나 진정성을 파악하려 할 때 머리를 굴려서 그걸 피해가려는 이들도 간혹 있다. 즉, 거짓을 감추려 드는 것. 하지만, 그럴 때도 거짓/진심을 알아보는 손쉬운 방법이 있다. 설문 내에 몇 가지 진실 체크용 문항을 슬쩍 삽입하는 것이 그것인데, 그중 간단한 한 가지 방법만 소개한다.
문항 표기에서 ‘하지 않았다/하지 못했다’와 ‘안 했다/못 했다’를 몇 군데 혼용한다.
결과를 보면 의미상으로는 사실 똑같은 것인데, 응답자들의 반응은 다르다. 후자의 경우는 좀 더 단정적/독단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서 그런 설문 앞에서는 꾀를 부린다. 부드럽거나 우회적인 답을 고른다. 그게 두어 번 되풀이되면 응답자는 자기 함정에 빠져서 내용보다는 표현의 수위에 관심하게 되고, 맨 처음 답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꼽게도 된다. 그런 이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거짓말 정도를 알아보는 설문도 숨겨 넣을 수 있다.
언어가 그 사람이다.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언어에 담기고, 숨겨지지 않는다. 언어는 그 사람의 뒷모습은 물론이고 안까지도 비춰주는 거울이다. 낱말 하나에서 그의 과거와 현재가 드러나기도 할 정도로. 손쉬운 예를 들자면, 시골 고향에 있는 집을 두고 각각 '고향 집/고향집/시골 집/시골집'이라 적는 것 하나에서도 그의 유년 시절의 행복도(화목/우애... 등)가 읽히고, 현재 그가 고향 나들이를 얼마나 하고 있는지, 그리고 평소의 지식 지향 정도가 엿보이는 식이다... 꾀를 부려도 모두를 숨기거나 속일 수는 없다. 글에서는 더욱 그렇다.
-溫草 [Apr.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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