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허영만의 단골 맛집 4

by dig it 2021. 11. 13.

허영만의 단골 맛집 4

허영만의 단골 식당 범생이포차의 두부찌개.

 

오두산 막국수

오두산막국수는 파주에만 세 곳이 있는데 지금 소개하는 곳은 야동동에 위치한 본점이다. 이곳은 물 메밀국수, 메밀 생소바, 따뜻한 메밀국수처럼 다양한 메밀국수와 메밀전, 메밀만두와 같은 메밀을 주재료로 한 음식들을 내준다. 사시사철 질 좋은 메밀 국수를 맛볼 수 있는 오두산막국수는 허영만 화백도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대표적으로 만화 생활일기 ‘나의 밥투정’에서 “일본의 산골 농촌을 들렸다가 막 수확한 메일로 만든 메밀 소바에 반한 적이 있는데 그처럼 신선한 맛을 내는 곳이 오두산막국수”라고 말했다.  

사실, 메밀국수는 날씨가 추울 때 먹어야 한다. 이유는 메밀 수확 시기와 관련이 있는데 10월 메밀을 수확하고 나면 10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가 메밀향과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날이 추울 땐 오두산막국수에서도 메밀 생소바를 추천한다. 갓 삶아서 촉촉한 메밀면은 오래 둬도 굳지 않을 만큼 탱탱한데 이 면을 특제 소스에 충분히 담갔다 먹는 맛은 시원하다 못해 짜릿하다. 너무 짜지 않으면서도 달큼한 특제 소스는 따로 포장해서 먹고 싶을 정도다. 허영만 화백은 자신의 만화 ‘식객’에서도 오두산막국수를 언급한 바 있는데 주인공은 메밀국수가 아닌 녹두전이다. 이집 녹두전은 고사리, 숙주나물, 돼지 목살, 절인 배추, 마늘 등으로 만든 소를 녹두 가루와 함께 치대서 동그란 쇠 틀에 가득 담고 바삭하게 굽고 어리굴젓과 함께 내주는 옛날 방식이다. 녹두전 역시 간이 세지 않은 것을 보면 오두산막국수는 각각 재료 본연의 맛을 중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생 녹두와 돼지고기의 고소한 맛, 배추와 숙주 나물의 식감을 느끼다가 짭조름한 어리굴젓을 녹두전에 올리면 입안에서는 이미 행복한 비명이 오간다.
 

범생이포차

 

범생이포차는 화곡역 7번 출구에서 신월동 방면으로 3분 정도 걸으면 양촌리(옛 까치산식당)가 보이는데 그 가게를 끼고 우측으로 꺾으면 보이는 곳에 있다. 범생이포차는 가게 상호 바로 아래 벌교, 고흥, 녹동 산지지송이라 써있는 것처럼, 남도의 제철 밥상과 술상을 차려주는 식당이다.(벌교와 고흥은 전라남도에서도 맛의 고장으로 유명하고 녹동은 고흥의 대표적인 항구다.) 식당 안 테이블 4개, 밖 테이블 2개. 이곳저곳 써 있는 손 글씨와 주방 천정 위에 켜 있는 노란 전등이 따뜻하고 정겹다. 앞서 말했듯 이곳은 제철 식재료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곳인데, 참꼬막, 여수생굴회, 녹동문어숙회, 매생이탕, 새꼬막무침 등 다른 음식점에선 쉽게 볼 수 없는 메뉴들이 가득하다. 허영만 화백 역시 가게 벽 한자리에 ‘계절의 맛을 느끼는 곳입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물론, 녹동 문어, 서대구이, 민어찜, 두부찌개, 김치전 등 사시사철 메뉴도 충분하다. 허영만 화백은 만화 ‘식객’에서도 범생이포차를 다룬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도 손님들을 모시고 잔치를 벌이고 싶은 곳으로 묘사했다. 매일이 잔치처럼 느껴지는 범생이포차인 셈이다.  
추천 메뉴로는 언제라도 먹을 수 있는 민어찜과 두부찌개다. 민어찜은 녹동항에서 바로 올라오는 민어를 살짝 말려서 간을 한 다음, 잡내를 잡아줄 청양 고추를 올리고 찐다. 민어가 잘 익었을 때쯤 양파, 실파, 고추가루를 올린 다음, 채소의 차가운 기운이 빠질 정도로만 잠시 조리 후 손님 상에 내준다. 접시 위, 국물 하나 없이 깔끔히 익은 민어찜 살코기 한 점을 집어서 먹으니 비리지 않고 오히려 고소하면서 감칠 맛이 돈다. 짠 맛도 강하지 않아서 고추, 실파, 양파, 참기름과 함께 담근 간장 소스에 찍어먹어도 될 정도다. 사실, 간장 소스의 비율 또한 완벽해서 민어 그대로의 맛이 입맛에 잘 맞더라도 소스에 찍어먹는 방법도 추천한다. 설 익은 채소들의 식감과 채소 특유의 아릿한 맛은 온전히 익어 부드러운 민어와도 너무 잘 어울린다. 두부찌개는 새우젓국에 두부, 호박, 돼지고기 앞다리살, 각종 채소와 팽이 버섯을 넣고 한소끔 끓여서 손님 상에 내준다. 보통 두부와 호박, 새우젓을 넣고 끓인 찌개는 고추가루를 넣지 않고 맑게 끓이지만 범생이포차에선 고추가루를 넣어서 빨간 국물 형태다. 남도음식이 다소 간이 세다는 편견이 있다면 남도음식 전문 범생이포차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민어찜과 마찬가지로 두부찌개도 국물을 떠서 먹어보니 짜지 않았고 중간중간 호박 등 채수의 단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매운 맛 또한 미리 얘기하면 조절 가능하니, 찌개가 짜거나 매워서 먹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 취재를 갔을 때 두부찌개에 민어찜을 시키고 곁들여 나오는 열무김치와 갈치 속젓을 보니 술보다는 밥이 생각났다. 딱 그 때쯤 주인 아주머니가 “밥 하나 드릴까요?” 물어봤다. “네. 감사합니다!” 사양을 할 새도 없이 대답이 튀어나왔다.  
 

 

잡어와묵은지 

 
서초동에 위치한 잡어와 묵은지는 제철 생선의 숙성회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광어, 도미 등은 충남 태안 신진도에서 올라오고, 놀래미, 도다리, 방어 등은 전국 각 산지에서 올라온다. 사실 이집이 특별한 이유는 생선회와 함께 곁들일 음식으로 2년 숙성된 묵은지 한 포기를 내준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광어회와 묵은지를 함께 내주는 초밥집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잡어와묵은지는 지난 수십년 동안 숙성회와 묵은지를 함께 내줬다.  
허영만 화백도 이집의 오랜 단골인데 잡어와묵은지 사장에 대해서 “국내 몇 안 되는 생선회의 달인”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아닌 게 아니라 11월 방문한 잡어와묵은지는 숙성회의 천국이었다. 런치 코스에도 놀래미, 방어, 도미, 광어 등 약 5~6가지의 잡어들이 나왔는데 잡어라는 호칭이 맞는 건가 싶을 만큼 훌륭한 구성이었다. 특히, 기름지면서도 씹을수록 꼬들꼬들한 놀래미는 따로 시켜서 먹고 싶을 만큼 훌륭했다. 묵은지 횟집의 원조답게 숟가락에 두툼히 썬 회 한 점, 그 위에 간장과 고추 냉이 소스를 머금은 초생강 하나 올리고, 묵은지로 숟가락 가득 감싸서 먹으니 조금이라도 남아있었던 비린내가 사라지고 짭짤한 묵은지는 숙성회에 중화돼, 맛의 균형이 완벽한 한입이었다. 회 한 접시와 함께 초밥, 무조림, 잡어회무침, 묵은지김밥, 알밥, 매운탕 등이 나오는 런치 코스의 구성 또한 훌륭하니 저녁보다 합리적인 가격의 점심 회 한 상이 어떨까.

 

참누렁소가든

하계동의 참누렁소가든은 서울 북동부 쪽에선 소고기 맛집으로 이미 정평이 난 곳이다. 허영만 화백도 만화 ‘식객’을 위해서 취재를 할 때 정형 자문을 자주 구했던 음식점이다. 허영만 화백은 “소를 정형하는 일은 생각보다도 훨씬 거칠어서 언론에 공개되지 않는데, 참누렁소에서 협조를 해줘서 취재를 마칠 수 있었다”며 참누렁소가든을 언급한 적이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참누렁소가든은 1974년 한우목장과 육가공회사로 시작해, 50년 가까이 소를 다루고 있고 지금처럼 소고기 부위가 나누게 된 것도 참누렁소가든의 역할이 컸다는 것을 안다면, 왜 허영만 화백이 이곳을 제대로 된 소고기 전문점으로 소개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담백하면서도 씹는 맛이 좋은 고기를 선호한다면 소갈비를, 부드럽고 연하면서도 마블링을 경험하고 싶다면 살치살을 추천한다. 두 가지 부위를 고르게 즐기고 싶다면 눈꽃등심이 적당하다. 참누렁소가든을 처음 방문해서 음식의 가격을 봤을 때, 다소 오해가 생길 수 있다. 아마도 조금 비싼 가격이기 때문일 텐데, 우리 식탁의 소고기 문화를 이끌어 왔다는 사실과 함께 직접 상을 받으면 그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소고기의 맛이야 의심할 여지가 없고, 사실, 곁들여 나오는 찬의 수준을 본다면 이곳이 단순 고깃집은 아니구나란 생각이 든다. 비트를 올린 유자청 채소 샐러드부터 플레이팅부터 남다른 백김치, 고추가루를 적게 쓰고 갓 본연의 매운 맛만을 살려낸 갓김치에, 당귀 장아찌, 묵은지, 단호박 샐러드, 흑임자 연근무침, 그리고 솥밥에 누룽지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 없이 훌륭하다. 참누렁소 가든에 소고기 전문점이라는 수식어보다는 우리 음식을 제대로 구현하는 한국 음식 전문점이라 지칭하는 것이 더 맞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 이충섭

댓글

최신글 전체

이미지
제목
글쓴이
등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