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의 단골 맛집 4
허영만의 단골 식당 범생이포차의 두부찌개.
오두산 막국수
사실, 메밀국수는 날씨가 추울 때 먹어야 한다. 이유는 메밀 수확 시기와 관련이 있는데 10월 메밀을 수확하고 나면 10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가 메밀향과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날이 추울 땐 오두산막국수에서도 메밀 생소바를 추천한다. 갓 삶아서 촉촉한 메밀면은 오래 둬도 굳지 않을 만큼 탱탱한데 이 면을 특제 소스에 충분히 담갔다 먹는 맛은 시원하다 못해 짜릿하다. 너무 짜지 않으면서도 달큼한 특제 소스는 따로 포장해서 먹고 싶을 정도다. 허영만 화백은 자신의 만화 ‘식객’에서도 오두산막국수를 언급한 바 있는데 주인공은 메밀국수가 아닌 녹두전이다. 이집 녹두전은 고사리, 숙주나물, 돼지 목살, 절인 배추, 마늘 등으로 만든 소를 녹두 가루와 함께 치대서 동그란 쇠 틀에 가득 담고 바삭하게 굽고 어리굴젓과 함께 내주는 옛날 방식이다. 녹두전 역시 간이 세지 않은 것을 보면 오두산막국수는 각각 재료 본연의 맛을 중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생 녹두와 돼지고기의 고소한 맛, 배추와 숙주 나물의 식감을 느끼다가 짭조름한 어리굴젓을 녹두전에 올리면 입안에서는 이미 행복한 비명이 오간다.
범생이포차
범생이포차는 화곡역 7번 출구에서 신월동 방면으로 3분 정도 걸으면 양촌리(옛 까치산식당)가 보이는데 그 가게를 끼고 우측으로 꺾으면 보이는 곳에 있다. 범생이포차는 가게 상호 바로 아래 벌교, 고흥, 녹동 산지지송이라 써있는 것처럼, 남도의 제철 밥상과 술상을 차려주는 식당이다.(벌교와 고흥은 전라남도에서도 맛의 고장으로 유명하고 녹동은 고흥의 대표적인 항구다.) 식당 안 테이블 4개, 밖 테이블 2개. 이곳저곳 써 있는 손 글씨와 주방 천정 위에 켜 있는 노란 전등이 따뜻하고 정겹다. 앞서 말했듯 이곳은 제철 식재료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곳인데, 참꼬막, 여수생굴회, 녹동문어숙회, 매생이탕, 새꼬막무침 등 다른 음식점에선 쉽게 볼 수 없는 메뉴들이 가득하다. 허영만 화백 역시 가게 벽 한자리에 ‘계절의 맛을 느끼는 곳입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물론, 녹동 문어, 서대구이, 민어찜, 두부찌개, 김치전 등 사시사철 메뉴도 충분하다. 허영만 화백은 만화 ‘식객’에서도 범생이포차를 다룬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도 손님들을 모시고 잔치를 벌이고 싶은 곳으로 묘사했다. 매일이 잔치처럼 느껴지는 범생이포차인 셈이다.
추천 메뉴로는 언제라도 먹을 수 있는 민어찜과 두부찌개다. 민어찜은 녹동항에서 바로 올라오는 민어를 살짝 말려서 간을 한 다음, 잡내를 잡아줄 청양 고추를 올리고 찐다. 민어가 잘 익었을 때쯤 양파, 실파, 고추가루를 올린 다음, 채소의 차가운 기운이 빠질 정도로만 잠시 조리 후 손님 상에 내준다. 접시 위, 국물 하나 없이 깔끔히 익은 민어찜 살코기 한 점을 집어서 먹으니 비리지 않고 오히려 고소하면서 감칠 맛이 돈다. 짠 맛도 강하지 않아서 고추, 실파, 양파, 참기름과 함께 담근 간장 소스에 찍어먹어도 될 정도다. 사실, 간장 소스의 비율 또한 완벽해서 민어 그대로의 맛이 입맛에 잘 맞더라도 소스에 찍어먹는 방법도 추천한다. 설 익은 채소들의 식감과 채소 특유의 아릿한 맛은 온전히 익어 부드러운 민어와도 너무 잘 어울린다. 두부찌개는 새우젓국에 두부, 호박, 돼지고기 앞다리살, 각종 채소와 팽이 버섯을 넣고 한소끔 끓여서 손님 상에 내준다. 보통 두부와 호박, 새우젓을 넣고 끓인 찌개는 고추가루를 넣지 않고 맑게 끓이지만 범생이포차에선 고추가루를 넣어서 빨간 국물 형태다. 남도음식이 다소 간이 세다는 편견이 있다면 남도음식 전문 범생이포차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민어찜과 마찬가지로 두부찌개도 국물을 떠서 먹어보니 짜지 않았고 중간중간 호박 등 채수의 단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매운 맛 또한 미리 얘기하면 조절 가능하니, 찌개가 짜거나 매워서 먹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 취재를 갔을 때 두부찌개에 민어찜을 시키고 곁들여 나오는 열무김치와 갈치 속젓을 보니 술보다는 밥이 생각났다. 딱 그 때쯤 주인 아주머니가 “밥 하나 드릴까요?” 물어봤다. “네. 감사합니다!” 사양을 할 새도 없이 대답이 튀어나왔다.
잡어와묵은지
허영만 화백도 이집의 오랜 단골인데 잡어와묵은지 사장에 대해서 “국내 몇 안 되는 생선회의 달인”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아닌 게 아니라 11월 방문한 잡어와묵은지는 숙성회의 천국이었다. 런치 코스에도 놀래미, 방어, 도미, 광어 등 약 5~6가지의 잡어들이 나왔는데 잡어라는 호칭이 맞는 건가 싶을 만큼 훌륭한 구성이었다. 특히, 기름지면서도 씹을수록 꼬들꼬들한 놀래미는 따로 시켜서 먹고 싶을 만큼 훌륭했다. 묵은지 횟집의 원조답게 숟가락에 두툼히 썬 회 한 점, 그 위에 간장과 고추 냉이 소스를 머금은 초생강 하나 올리고, 묵은지로 숟가락 가득 감싸서 먹으니 조금이라도 남아있었던 비린내가 사라지고 짭짤한 묵은지는 숙성회에 중화돼, 맛의 균형이 완벽한 한입이었다. 회 한 접시와 함께 초밥, 무조림, 잡어회무침, 묵은지김밥, 알밥, 매운탕 등이 나오는 런치 코스의 구성 또한 훌륭하니 저녁보다 합리적인 가격의 점심 회 한 상이 어떨까.
참누렁소가든
하계동의 참누렁소가든은 서울 북동부 쪽에선 소고기 맛집으로 이미 정평이 난 곳이다. 허영만 화백도 만화 ‘식객’을 위해서 취재를 할 때 정형 자문을 자주 구했던 음식점이다. 허영만 화백은 “소를 정형하는 일은 생각보다도 훨씬 거칠어서 언론에 공개되지 않는데, 참누렁소에서 협조를 해줘서 취재를 마칠 수 있었다”며 참누렁소가든을 언급한 적이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참누렁소가든은 1974년 한우목장과 육가공회사로 시작해, 50년 가까이 소를 다루고 있고 지금처럼 소고기 부위가 나누게 된 것도 참누렁소가든의 역할이 컸다는 것을 안다면, 왜 허영만 화백이 이곳을 제대로 된 소고기 전문점으로 소개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사진 이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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