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질딱 스럽다 생각했는데
보는 관점에 따라선 운치도 있다
건축에 있어 ‘한국적인 것’에 대한 반응으로 여전히 날렵한 처마선을 떠올리는 ‘근거 없이 진부한 사고’를 반복할 이유가 있을까. 전통에 대한 부정은 아니다. 단지 ‘한국의 것’과 ‘한국적인 것’의 미묘한 차이를 무시한다는 건 ‘근대화=서구화’의 관계를 성립, 유지시킨 채(특히 건축에 있어) 현대를 이룩한 이곳에선 다소 무리가 있다. 당장 창밖으로 보이는 ‘서양의 것들’로 매꿔진 풍경이 사실 이 순간엔 가장 한국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쩌면 ‘한국적인 것’에 대해 굳이 고건축을 얘기하는 것이 오히려 지금의 이 나라를 부정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한국적’이라는 단어에 처마선을 떠올리는 동안 프랑스의 한 지리학자는 한국을 보며 ‘아파트 공화국’ 이란 책을 써냈다. 쉽사리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성냥갑 도미노 마냥 들어선 모습이 탐탁지 않지만 말이다. 어찌됐건 건축은 시대를 담는 그릇이라 했다. 어쩌면 아파트는 주거공간으로서 시대와 생활을 가장 솔직하게 담는 곳이 아닐까.
이 시대의 우리에게 이 시대는 그저 일상일 뿐이다. 그저 당연하기만 한 지금을 ‘해석’하는 것은 참으로 녹록지 않다. 반면 이 시대의 우리에게 과거의 흔적은 지난 시간의 한국, 한국적인 것을 바라보기 위한 훌륭한 매개가 아닌가. 60~70년대, 아파트가 부지런히 사회와 소통하며 변신을 거듭한 시대를 조망해 보려한다.
충정아파트(1936)
여든이 다 되어가는 충정아파트. 한국적 디자인을 이야기하기에 어딘가 씁쓸한 건 식민지 당시 일본인의 손에 의해, 일본인들을 위해 지어진 아파트이기 때문이다. 억울한 감이 있지만 식민지 당시에 ‘한국적’이라함은 결국 ‘일본의 것’인 셈이다.
가장 큰 특징은 중앙의 중정이다. 후에 등장할 동대문 아파트의 것과 흡사한 모습으로 그 규모만 조금 작다. 굉장히 특이한 점은 공동화장실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굉장히 특이하다고 말을 하지만 당시엔 그저 당연한 생활이었을 것이다. 고작 5층짜리 건물 옥상에서 서울의 모습이 훤히 다 보였다고 하니 당시 서울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충정아파트는 그 화려한 역사로도 유명하다. 아파트에서 주점으로, 해방 후엔 해외에서 돌아온 동포들의 주택지구, 6.25당시 북한군에 의한 집단학살장소, 나중엔 호텔로도 운영되다가 1979년 일부가 철거되고 지금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가장 오래된 만큼 노익장을 과시하신다. 그 역사만 봐도 우리의 굴곡진 지난 시간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빠르고 시끄러운 외부에 비해 고요함을 유지하는 내부, 빼곡한 기둥과 중정으로 펼쳐지는 독특한 풍경을 보고 있으면 1930년대 최초로 등장한 아파트의 한 장면을 떠올릴 수 있을 것만 같다.
동대문 맨션(1966)
한때 ‘연예인아파트’라고도 불렸던 아파트. 그만큼 당시엔 고급아파트였다고 한다. 좌, 우측면을 보면 아파트라는 사실을 알 수 있지만 입면의 모습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갸우뚱 했던 고개를 위 아래로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동대문 아파트는 중정형 아파트로 중앙의 중정이 특징이다. 이런 디자인은 꽤 명쾌하게 시대를 얘기해 준다. 근대화의 모습과, 과거 마을단위로 이뤄지던 커뮤니티의 모습을 어느 정도 절묘하게 모두 담고 있다. 아파트 자체도 대규모 계획에 의해 지어진 것이 아니라 기존 도시구조에 얌전히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마당(중정)의 공간은 전통한옥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장독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마치 한 가족인 냥 구성원들이 마주치고 인사를 나눈다. 이 아파트를 두고 자생적으로 생겨난 아파트라고 한다. 그만큼 당시를 솔직하게 담고 기억하는 곳이다. 여전히 중정 위를 날아다니는 빨래들과 현관을 열자마자 마주하는 이웃들이 정겨운 곳이다.
세운상가(1967)
서울 종묘에서 퇴계로까지 남북축을 따라, 1km에 이르는 거대한 항공모함과 같은 세운상가가 자리 잡고 있다. 1970년대 당시 서울에서 이뤄졌던 고속 도시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 세운 상가이다.
밖에서 봤을 때는 당시 ‘불도저’라고 불렸던 김현옥 서울시장의 개발 형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6층부터 시작되는 주거동에 들어가니, 외부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중정 공간이 있어 내부 공간이 조금은 풍요롭게 느껴진다.
세운상가는 공중데크나 공중정원과 같은 새로운 개념이 적용 되었는데 과거의 공중 데크는 여유로운 공간이었지만, 현재는 일부 철거된 세운상가에 있던 상인들이 가건물형식으로 점포를 운영하고 있어 분위기가 좀 삭막해져 있다.
세운상가는 종묘에서 남산에 이르는 녹지축을 가로막아 도시 경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그 일부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2015년 완공을 목표로 한 세운 초록띠 공원 공사가 진행 중이다.
공사가 완료되면 1967년과 2015년 약 50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신구의 서울을 함께 맛볼 수 있는 곳이 되지 않을까 기대된다.
회현동 시범아파트(1970)
6층으로 진입하는 입구 밑으로 거대한 옹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회현아파트는 당시 서울특별시의 골치였던 판자촌 주민들을 위한 임대아파트로 계획된 아파트들 중 하나였다. 가파른 경사에 6,7층에 입구를 내고 거대옹벽을 설치하며 아파트가 자리한 모습이 당시 서울특별시의 조급했던 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뭐 덕분에 10층높이 아파트에 엘리베이터가 없어도 불편함 없이 생활을 했다고 한다.
또 다른 특징 몇 가지로 세 동의 아파트 안에서 중정의 모습을 한 공간을 발견할 수 있다. 동대문 아파트의 것보다는 그 의미와 기능이 다소 축소된 느낌의 모습이다. 화장실이 개별 설치되었다는 것도 당시엔 큰 메리트가 있었다고 한다. 깔끔한 복도도 눈에 띈다. 내 집 물건을 내놓고 쓰진 않는 것 같아 보인다. 당시 생활상의 변화를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는 부분들이다. 복도가 깔끔하게 보인 다른 이유로는 보일러가 안 보이기 때문인 것도 있다. 중앙난방식의 보급이 시작된 것이다. 당시엔 획기적인 발전이었고. 그만큼 이 나라도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던 시대였다. 이제 슬슬 현대아파트의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듯싶었다.
성요셉 아파트(1971)
도시의 조직중, 길이란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 도시의 흔적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며 장소를 만들고 그 안에 다양한 켜를 만들어 낸다. 서울의 도시 구조에서 길이나 물길과 같은 선형적 요소는 강한 장소성을 갖는다.
중구 중림동에 위치한 성요셉 아파트는 그러한 가로의 지형적 특성을 잘 고려하여 골목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선형으로 배치된 한 예이며, 기존의 도시구조와 지형적 특징에 자연스럽게 순응 하는 모습, 그리고 그곳에 그들의 생활공간을 만들어 살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인 곳이다. 그러한 특징은 내부 곳곳에 사소한 부분에서 발견할 수 있다. 복도를 따라 거닐다 보면, 지형의 높이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계단을 따라 복도가 점층적으로 높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며, 복도는 기존의 길을 따라 지어진 만큼 꼬불꼬불하게 흘려, 마치 옛길을 걷는 듯 한 느낌을 준다.
길에서 바로 진입하는 방식, 상가를 지나 진입하는 방식, 긴 계단을 올라 진입하는 방식 등 지형의 높이 변화는 다양한 입구를 만들어 내었다. 아파트라기엔 지금의 성냥갑 아파트 단지와는 다른 모습이다. 과거의 ‘마을’이 그랬듯 아파트 역시 도시의 선을 따라 자연스레 놓였던 것이다. 낡고 오래되어 허름하지만 얌전하고 순박해 보인다. 마치 옛사람을 보는 것처럼.
한강맨션 아파트 (1970) / 반포 아파트(1973)
드디어 성냥갑스타일 아파트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즉, 남향이라는 개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한강맨션아파트는 외관에서도 확인 할 수 있듯이 큰 평수를 자랑한다. 최고 55평까지 있다고 한다. 아파트 대형화의 시작이다. 이는 반포지구로 이어진다. 반포지구의 아파트 단지는 복층형의 주거형태까지 등장한다. 이에 한강 조망권, 강남에 위치했다는 점 등을 이유로 부촌으로 이미지를 굳혀 온 것이다. 단지에 들어서면 흔히 말하는 고급외제차가 즐비하다. 상류층을 위한 아파트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말 그대로 살림살이 좀 나아진 시기라고 해석해도 좋겠다. 흔히 어른들이 얘기하는 힘들던 시기를 지나 이른바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룬 현대의 시작을 그대로 표현하는 곳들이다. 한강맨션은 특히 근린주구 개발방식이 처음으로 도입된 계획단지이다. 아파트단지 주변은 노선상가들이 들어서 있다. 주거와 편의시설을 고려하여 계획 된 것이다. 비록 성냥갑 같아 보여도 남향에 따른 배치, 대형화 된 주거평면, 근린주구 개발 방식과 노선상가계획. 물리적 뿐만 아니라 의식적으로도 얼마나 큰 발전인가. 그만큼 중상류층 아파트의 선구적 모델이 되고 있다.
앞서 살핀 아파트들과 비교하면 중정과 같은 공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모두 계단식으로 바뀌었다. 201호에서 203호사람이 뭘 하든 딱히 상관할 바가 아니다. 좋다, 나쁘다를 얘기하기보단 단지 짧은 시간 이 사회와 생활상이 분명히 변화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여의도 시범아파트(1971)
그 높이로나 모습으로나 제법 현대의 아파트를 닮았다. 12층 높이에 엘리베이터도 있다. 고층아파트 시대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지난시절의 아파트들을 접하고 보니 이것도 대단한 기술력의 발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로 와우아파트 붕괴사태로 인해 실추된 건설수준이 다시 신용을 얻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튼튼하게 지어진 아파트이다.
비슷비슷해 보여도 입면을 잘 살펴보면 다양한 평수가 존재한다. 15, 20, 30, 40평형이 있다고 한다. 어느 정도 폭넓은 계층이 공존하는 것이다. 1971년의 한국은 계층 간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시기였음을 알 수 있다.
이후에도 잠실 대단지 건설을 지나 아파트는 부지런히 변화해 왔다. 앞서 설명한 아파트들은 어느 정도 연도순에 따라 나열을 했다지만 사실 무의미한 일이다. 뚜렷하게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보이지 않으며 동시대라고 봐도 무관하다. 그만큼 역동적이고 격변하는 시대를 설명해준다. 세상에 동시대에 이렇게 다양한 아파트들이, 빠른 발전을 이룬 곳이 얼마나 있을까. 흔히 우리나라를 두고 ‘한강의 기적’이나 짧은 시간에 이른 고도성장을 얘기한다. 그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싶다.
아파트를 얘기하자는 것도, 지난시대를 얘기하자는 것도 아니다. 그저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아무 생각 없이 누르던 20층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 할 계기정도만 마련해 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에디터 : 이태준, 촬영 : 이태준, 교정 : 안우진, 아트 : 신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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