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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감삼동 甘三洞 유래

by dig it 2023. 1. 16.

감삼동 甘三洞
감삼동의 지명유래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1) 지금으로부터 약 300년전 고을 현감이 이 곳을 지나다 감이 탐스럽게 열린 걸
보고 매우 감탄하였다.
인사차 나온 마을의 대표가 감을 대접하면서 마을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하였다.
현감이 감을 먹었는데 매우 달고 맛이 있어 세 개나 먹었다 해서 감삼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2) 이 지역의 땅 모양을 보면 북쪽에서 남쪽으로 낮은 산줄기가 길게 뻗어 마을
한가운데서 끝나는데 바로 이곳의 땅 모양이 세 장군이 태어날 형상이었다.
이 말이 퍼지게 되면 도리어 마을 사람들이 해를 입게 될 것을 우려하여 이
이야기를 숨기기 위해 그 부군에 샘이 세 곳에서 솟아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 이야기가 있은지 얼마 안되어 실제로 이 마을에 샘이 세 곳에 생겨서 여름
가뭄에도 샘물이 마르지 않았다 하여 감삼동으로 부르게 되었다.

 

https://blog.naver.com/int9708/221273115372

 

대구 달서구 지명유래

달서구 지명유래 감삼동(甘三洞) 『경상도읍지』에는 ‘감삼못’이 달서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성당못...

blog.naver.com

 

- 본리동(本里洞)
이 일대 농가에 있는 뜸뒤주(쑥대나 싸리, 뜸 따위를 새끼로 엮어 땅위에 둥글게
치고 그 안에 곡식이나 감자 따위 곡물을 채워 쌓은 더미 위에 까치가 집을 지었다고 해서 작촌(鵲村)이라고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달성군 성서면 본리리가 되었다가 대구에 편입되어
 본리동이 되었다.

 

- 성당동(聖堂洞)
1) 1910년부터 성당동이라 불렀는데 그 유래는 두 가지가 전해오고 있다.
성당못을 중심으로 한 산의 모습이 용이 승천하는 모습으로 길지로서
인명의 피해가 없는 좋은 땅이란 뜻으로 성당으로 부르게 되었다.
2) 이곳에 일제시대 때 만들어진 성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곳 성당이 대구지역 독립운동 장소로 발각되어 일본경찰에 의해
강제철거, 폐쇄되었으나, 성당이 있던 곳이라 하여 성당동으로 불리어지게 되었다.
1910년부터 성당동으로 불렀다고 하니 근거없는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 죽전동(竹田洞)
이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농사를 짓고 살았는데 아주 가난하게 살았었다.
그래서 근처에 많이 나는 대나무로 갈퀴를 만들어 서문시장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판매하였다.
대나무 갈퀴를 많이 생산하는 곳이라 하여 죽박골, 죽전(竹田)으로 불리게 되었다.

 

- 장기동(長基洞)
이 지역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는 두 가지가 있는데
1) 예로부터 구씨와 장씨가 터를 가꾸고 이루어 구씨, 장씨의 터라고 구장터라고
하였다.
그후 구씨가 패망하고 장씨가 마을을 이끌어왔다고 하여 장씨터라는 뜻으로
장기(長基)라고 불렀다.


2) 이 지역에 옛 장터가 있던 지역으로서 구장터 또는 장기(場基)라 하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1914년 달성군 성서면에 편입되었다가 대구시로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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